내가 과연 언제부터 술을 마시게 되었을까? 저 먼 과거로 떠나보도록 하자. 고등학교 시절 명절엔 천안에 있는 시골로 친척들이 모두 모였다. 시골집 큰 마루에서 큰아빠들과 막내인 아빠는 오랜만에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계셨다. 어느 정도 거나하게 취하신 큰아빠가 옆에서 고기를 야무지게 뜯고 있는 나를 보며 물으셨다.
"OO이가 올해 몇 살이지?"
매년 나이를 물으시지만 매년 까먹으신다. 나는 익숙한 듯 답했다.
"18살요."
"아이고, 다 컸네! 큰아빠가 한 잔 줄게. 받아!"
큰아빠는 먼저 한 잔 들이켜시고는 본인의 술잔을 나에게 건네셨다. 나는 아빠 눈치를 보며 억지로 받았다. 평소에 술은 성인 되고 나서 마시는 거라고 말하시던 아빠는 재밌다는 듯 쳐다보고만 계셨다. 내가 받은 술잔에 투명한 소주가 가득 따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큰아빠가 말씀하셨다.
"어른이 주는 건 한 잔 마셔도 괜찮아. 자, 마셔봐!"
나는 아빠 눈치를 한 번 더 살피고는 눈을 질끈 감고 입 속으로 털어 넣었다. 목 넘김은 부드러웠는데 그 뒤에 몸속에서 올라오는 알코올의 기운이 내 코를 통해 공기로 쭉 퍼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땐 '이렇게 맛없는 걸 대체 왜 마시는 거지?'라는 의문만 남은 첫 술 경험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수시 1차로 수능을 보지 않고 이미 대학에 합격한 나는 친구들이 빨리 시험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수능이 모두 끝나고 우린 동네 삼겹살 집에 모였다. 친구들은 시험 후기를 내게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오늘 뭐 하고 놀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야, 오늘 같은 날 술 한잔 해야 하는 거 아냐?"
학창 시절 술 경험이 많은 이 친구는 술맛을 이미 아는 듯했다. 하지만 성인의 징표인 신분증이 아직 없는 우리는 삼겹살 집에서 술을 시킬 수는 없었다. 그중 다른 친구 하나가 말했다.
"우리 동네 슈퍼에서 가끔씩 아빠 심부름으로 술 사가는데, 거기서 술 사가지고 우리 집 옥상에서 마시자! 어때?"
우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술맛도 잘 몰랐던 우리는 수능이 끝난 날에는 왠지 술을 마셔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모두 동조했다. 빠르게 삼겹살을 입에 욱여넣고는 술을 사러 동네 슈퍼로 갔다. 자주 술을 사가던 친구 하나가 가게를 나오며 우리를 보고선 종이컵과 맥주 페트와 새우깡을 신나게 흔들었다. 우린 친구 집 옥상으로 살금살금 올라갔다. 날은 매우 추웠지만, 어른들 몰래 마시려면 어쩔 수 없었다. 맥주를 한 잔씩 따르고는 '짠'을 외치며 벌컥벌컥 마셨다. 여전히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술도 취한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친구들과 한동안 시험 걱정 없이 놀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을 뿐이었다.
누구나 술을 처음 접해 본 경험들은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처음 느끼는 낯선 맛이기도 하고, 취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점차 술이 익숙해지고 취하는 날들도 생기면서 술 마셨던 날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루쯤으로 남기도 한다. 나 또한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 대학생이 된 뒤 한참 동안 술을 이기려고 노력했었다. 내 주변 대학생 친구들이 거의 그랬다. 술에 취해 실수도 많이 했고, 민폐도 많이 끼쳤으며, 이불킥(?)도 여러 번 했다. 물론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그러다 사회생활을 하고 나선 내가 원해서든, 원하지 않아서든 술자리에 자연스레 앉아있고, 취하는 것 마저 익숙해졌다. 뭔가 왁자지껄했던 기억과 심각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섞여 있었지만, 지끈거리는 숙취로 인해 그저 하룻밤 꿈으로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술이란 뭘까? 술처럼 장, 단점이 뚜렷한 것도 없다. 술로 인해 사회적 문제도 많이 발생하지만, 술로 인해 쉽게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가 되기도 한다. 술로 인해 가정이 파탄 나기도 하지만, 술로 인해 가정이 생기기도 한다. 술로 인해 적이 생기지만, 술로 인해 친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술에 중독되어 건강을 해치기도 하지만, 술로 인해 행복해지기도 한다. 결국 내가 스스로 얼마나 조절하며 마실 수 있는지가 술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술을 즐기며 일상에서 행복을 더하는 모습을 이번 연재에 담아보고자 한다. 어쩌면 술을 절제하지 못한 자책이 될 때도 있을 것이고, 술에 대한 다짐이 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술을 마시며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앞으로 마실 술들도 그런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난 그 추억들을 글로 남겨 알코올처럼 쉬이 휘발되지 않고, 오랜 기간 내 인생에 머무르기를 바란다. 여러분들도 나와 온라인 술친구가 되어 보면 어떨까? 분명 나의 글을 읽으며 풀어헤친듯한 행복한 기운은 전달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