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새로운 인연을 쉽게 만들어준다.(학부모 편)
"아빠로서의 삶에 취하기"
아이가 네 살이 넘어가니 어린이집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아이들을 같은 공간에 놔둬도 따로 놀더니만, 드디어 친구와 함께 논다는 개념이 점차 생기는 듯했다. 우리 부부도 아이가 어린이집 친한 친구들 얘기를 하면 그 친구들의 부모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등, 하원할 때나, 하원하고 놀이터에서 마주치는 가족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 지난 어린이집 운동회에서 아이의 친한 친구들 가족들과 말문을 텄다.
"집에서 애가 똥이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저희도 그래요!"
부모들은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며 다음에 아이들과 함께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 이후로 주말에 몇 번은 엄마들과 아이들이 동네 키즈카페에서 모여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내심 아빠들도 함께 모임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아내에게 엄마들만 있는 채팅방에다가 1박 2일로 가족 모임을 제안하자고 말했다. 아내도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하고 즉각 카카오톡을 보내기 시작했다. 모두가 좋은 반응을 보여 우리는 빠르게 숙소부터 알아보았다. 날짜와 장소가 정해지자 상세한 일정들은 금방 완성되었다.
드디어 모임 당일. 아이는 그전부터 언제 놀러 가느냐고 보채고 있었다. 심지어 어린이집 선생님에게까지 우리의 모임 계획을 떠벌리고 다녔다. 우리 가족은 점심을 먹고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가기 전에 아이들과 견학을 할 수 있는 곳에서 다른 가족들과 합류했다. 세 가족 모두 아이가 한 명씩이라 총 9명이 모두 모였을 때, 엄마들과 아이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아빠들은 아주 어색하게 인사했다. 나와 한 아빠는 동갑이었지만, 다른 아빠는 나보다 7살이나 많았다. 아이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견학하며 미리 체력을 좀 빼놓을 생각이었지만 부모들만 점점 지쳐갔다.
다섯 시가 좀 넘어간 시각에 우린 숙소에 들어왔다. 한 가족이 미리 온라인에서 장을 봤고, 아이들 먹을 음식과 우리가 즐길 술안주들을 싸왔다. 근처 식당에서 족발과 치킨을 배달시켰고, 술은 숙소 안에 있는 마트에서 소주와 맥주를 샀다. 아이들은 숙소에서 본인들이 챙겨 온 장난감을 다른 아이들에게 자랑하며 함께 놀기 시작했다. 6명의 부모들은 한동안 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제 부모가 같이 놀아주지 않아도 친구들끼리 잘 노는 모습을 보니, 어느새 한 뼘 더 성장해 있는 듯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아이들끼리 모여 밥을 먹게 했다. 아이들이 실수를 하거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부모 6명이 자기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하나씩 챙겼다. 마치 어린이집에 아이는 셋인데, 선생님만 여섯이 있는 듯했다. 아이들끼리도 잘 놀고 챙겨줄 사람도 많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에 우리 부모들도 각각의 취향에 맞게 소주와 맥주를 따러 첫 짠을 외쳤다.
"모두 육아하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같은 나이의 아이를 키우는 육아 동지들과 함께 마시는 술은 아주 시원했다. 육아의 고단함과 피로가 싹 씻기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 아이를 키우면서 재밌었던 에피소드와 힘들었던 상황들 그리고 육아 꿀팁들을 자연스레 공유했다. 벌써 아이가 네 살이 되어 어렸을 때의 추억을 꺼낸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그만큼 아이와 함께 한 시간들이 너무나 쏜살같이 지나간 것이다. 이제는 조금 천천히 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이들이 서로 노는 게 지겨웠는지 우리 쪽으로 와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다른 아빠가 풍선을 몇 개 불어주어 아이들에게 건네주었더니, 다시 아이들끼리 쪼르르 달려가 풍선을 갖고 놀았다. 우리는 또 네 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이야기로 쉽게 돌아올 수 있었다.
술은 새로운 인연을 쉽게 만들어준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도 않고 공통점이라곤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가 있다는 것뿐이지만, 술의 힘을 빌리면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벽을 쉽게 허물 수 있는 것이었다. 한 아빠와는 동갑이라 친구처럼 말을 쉽게 놓게 되었고, 나이가 많은 아빠는 형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나와 형님은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한 아빠가 담배를 피우러 나가면 함께 나가서 아빠들끼리의 대화를 나누곤 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해서 아빠들의 육아 참여도와 아이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는 나, 개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나의 삶은 뒤로한 채 완전히 아빠로서의 삶만을 터놓고 얘기하고 있었다. 아빠, 엄마들의 개인의 삶을 얘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듯했다. 다음번 모임이 이어지면 차차 개인의 삶을 자연스레 알게 될 터였다.
10시가 넘어가는 시각. 아이들을 친구들과 밤까지도 함께 놀 수 있다는 사실에 아직도 눈이 말똥 말똥했다. 술이 어느 정도 취한 우리 부모들만 피곤해서 연신 하품을 했다. 애들을 먼저 재우고 나서 본격적으로 즐기자는 우리 부모들의 바람은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고, 이제 아이와 함께 잠을 자야만 했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씻겼고, 아빠들은 먹고 마신 것들을 정리했다. 아이들은 아쉬워했지만 내일 일어나서 아침부터 또 놀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니,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고분고분하게 잠자리에 누웠다. 부모들은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피곤한 취함으로 인해 등을 대자마자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7시. 아이들 중 한 명이 일어나 모두를 깨우기 시작했고, 우리 아이도 잠이 덜 깬 상태로 눈을 비비며 뛰어다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겐 숙취로 힘들어할 겨를이 없었다. 빠르게 이틀 째 육아 일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