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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애비 Jul 23. 2024

어린이집 친구 가족을 처음으로 집에 초대했다.

"아이는 한 뼘 더 성장했을 거야!"

  오늘은 토요일이지만, 매우 분주한 날이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친구네 가족이 집에 놀러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어린이집 친구는 우리 집 바로 위층에 살고 있지만, 오전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오후 4시에 오기로 했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오전부터 집을 치우고 쓰레기를 버리느라 분주다. 아이도 친구가 처음 놀러 온다는 사실에 들떠서 조그마한 손으로 쓸고 닦으며 우리를 도와주었다. 돼지우리였던 집이 그래도 마음먹고 치우니 누군가 방문해도 민폐가 되지 않을 만큼은 되었다. 집안을 정리하느라 오전을 다 보내고 점심을 먹었다. 아이는 이때부터 친구 언제 오냐며 우리를 보채다가, 밥을 다 먹고 먹은 비염약에 취해 잠들었다. 우리 부부는 한숨 돌리며 소파에 누워 잠시 쉴 수 있었다.

 

  아이가 세시쯤 잠에서 깼다. 본격적으로 친구네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차와 간식거리를 준비해 놓고, 함께 놀 장난감을 펼쳐 놓았다. 생각보다 집안 곳곳에 숨어있던 장난감들이 많아서 살짝 놀랐다. 무엇보다 준비해야 할 것은 아이의 마음가짐이었다. 아내가 아이에게 또다시 당부했다.


"똥이야, 우리가 친구 초대한 거니까 친구한테 장난감 양보하면서 놀아야 돼! 알았지?"


아이는 '응!'이라고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지만, 외동이고 집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아이가 정말로 그럴지는 미지수였다.



  4시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다. 드디어 어린이집 친구 가족이 온 것이다. 아이의 친구와 그의 부모 그리고 23개월 동생도 있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육아 끝판왕 아들 둘 가족이었다. 벌써 엄마, 아빠는 지친 표정이 역력했지만 우린 내색하지 않고 이들을 반겼다.


"어서 오세요. 여기 편하게 앉으세요!


친구 아빠 손에는 복숭아가 한 박스 들려 있었고, 그걸 내게 전해 주며 말했다.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가 하두 똥이네 놀러 가자고 보채서요."


"잘 오셨어요. 요새 아이들끼리 잘 노니까 좀 편하게 있을 수 있겠죠 뭐, 하하."


아이는 빠르게 친구 손을 잡고는 장난감이 펼쳐진 자기 방으로 끌고 갔다. 남자 아이라 과연 우리 아이 장난감을 좋아할지 의문이었지만, 처음 보는 장난감에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우린 소파에 앉아 준비해 놓은 간식과 과일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다행인 건 그들의 둘째 아들이 얌전했고, 이따금 아이들이 동생과 놀아주었기 때문에 어른들끼리도 쉬이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로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들과 아이의 성장 발달 과정, 부모의 역할 등 아이 위주의 얘기들이 오갔다. 어쩔 수 없이 부모는 부모였던 것이다. 그러다 이따금 개인적인 얘기를 듣고 말할 기회도 있었다. 친구 아빠는 야구를 즐겼다고 했고 동호회 활동도 10년 넘게 해 왔지만, 최근엔 아이 둘을 돌보느라 잠시 취미활동은 접었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자신을 포기하게 되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부모니까 어쩔 수 없다. 최우선적으로 아이를 사회에 안전하게 독립시키는 게 가장 큰 부모들이 공통된 목표니까 말이다. 그전까지는 나라는 존재보단 아이의 부모로서의 역할이 더 클 수 밖에는 없다.



  아이들이 조금씩 다투기 시작했다. 역시나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서로 놀고 싶은 장난감이 겹치면 어김없이 먼저 하겠다고 서로에게 떼를 쓰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이 중간에 껴서 다른 새로운 장난감을 들이밀어도 아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위를 새로이 환기시킬 게 필요했다. 우리는 친구 부모의 동의를 얻어 TV로 <겨울왕국> 애니메이션을 틀어주었다. 아이들은 다투다 말고 홀린 듯 TV 앞에 앉아 시청하였다. 이 맛에 아이에게 TV를 안 보여 줄 수가 없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우리는 이 틈에 저녁을 함께 하기 위해 족발을 배달시켰다. 놀다 보니 벌써 6시가 넘어간 것이다. 이들은 아이들끼리 먹을 수 있게 테이블을 깔고 족발을 잘게 잘라서 주먹밥과 함께 주었다. 아이들은 맛있게 먹으면서도 TV에 눈을 떼지 않았다. 우리는 여유롭게 맥주 한 캔씩 따서 짠을 하고 족발을 함께 먹었다. 부모들의 이야기는 맥주와 함께 좀 더 원활하게 돌았다. 연애 시절 얘기와 결혼한 과정들을 얘기했다. 나는 장난 삼아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친구 아빠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나도 아내분과 결혼하실 겁니까?"

"무, 물론이죠!"


잠시 당황한 모습을 포착한 나머지 어른들은 모두 깔깔 웃었고, 아이들은 이 상황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밤이 되어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고, 시간은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TV를 그만 보고 다시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장난감으로 다투기 시작했는데 서로 양보가 없었다. 우리 아이가 말했다.


"딱 두 번만 놀고 나 줘야 돼."

"싫어! 다섯 번 놀고 줄 거야."


아이는 친구의 반응에 떼를 쓰며 울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서로 본인들의 아이에게 양보하라며 타일렀지만, 결국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그들의 둘째 아들은 조용히 있다가 저녁을 잘 먹었는지 응가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고, 그 냄새를 포착한 그의 아빠가 기저귀를 확인했다.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졌고, 아이들의 울음엔 졸음이 섞여 있었다. 우리 부모들은 이제 헤어질 시간이라는 걸 서로 말하지 않아도 직감했다. 창문 밖엔 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바로 위층이라 걱정하진 않았다. 어른들은 서로 급하게 인사하고 엄마는 친구 손을 잡고 아빠는 둘째 아들을 들쳐 업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친구는 엄마 손에 끌려가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다시는 똥이 집에서 안 놀 거야!"


아이는 이에 질 세라 되받아쳤다.


"나도 너네 집에 안 놀러 갈 거야!!"


그렇게 아이들은 헤어졌다.



  아내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똥이야, 친구는 우리 집에 있는 장난감이 처음이고 어차피 집에 못 들고 가지? 똥이는 친구 가면 또 갖고 놀 수 있잖아. 처음에 잘하더니 왜 또 양보 안 해줬어?"


"싫어! 이제 나만 놀 거야!"


아이는 친구에게 단단히 삐진 듯했다. 아내는 이어서 말했다.


"월요일에 어린이집에서 친구 만나면 장난감 안 빌려줘서 미안했다고 얘기해야 돼. 알았지? 그리고 나중에 집에 놀러 가겠다고도 말해봐."


아이는 별 다른 대답이 없었지만, 받아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하나뿐인 외동딸에게 이 또한 좋은 교육이었다고 생각했다. 자주는 못하지만 이따금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도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이렇게 또 아이는 한 뼘 더 성장했으리라. 우리 부부는 어질러진 집을 빠르게 다시 원상복구 하고, 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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