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좋은 영향을 줘서 고맙다!"
아직 나만의 삶을 찾는 과정입니다만...
난 서른여섯이라는 나이에 내 삶을 찾기 위해 방황 중이다.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해왔고 세 살 딸도 있기에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내 삶이 살아있다고 느껴야 직장도 있고 가정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 스스로 살아있다고 느끼려면,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삶이 필요했다. 그래서 무작정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이 행위가 나에게 어떠한 답이라도 내어줄 것이다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책을 읽은 지는 10개월이 지났고, 글을 쓴 지는 6개월이 지났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한 지는 한 달이 지났다. 뭔가 내 인생의 흐릿한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부모님의 기대와 나의 성취를 위해 지금껏 살아왔던 내 삶이 어떠한 내적 동기로 인해 앞으로의 내 삶을 개척해나가야 할지가 그려지는 것이었다. 뚜렷하진 않고 희미했다. 아직 방황과 수련을 더 해야 했다.
한 달 전 친구의 결혼식이 끝나고 함께 간 친구와 부부 모임을 했다. 우리는 결혼 생활 6년 차, 그들은 5년 차였다. 결혼식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부부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는 카페에서 각자의 연애 때부터 결혼하고 지금까지 살아간 이야기들을 나눴다. 이미 그전부터 함께 커플로 만나던 사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추억에 젖어서 하는 이야기인 것을 서로 알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들어주었다. 그러다 우리 부부의 최근 근황을 얘기하는 중에 새로운 소식이 들리자 그들은 호기심을 보였다. 아내가 내가 요즘 책에 푹 빠져 사느라 TV도 안 보고 넷플릭스 구독도 취소했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무슨 재밌는 책을 읽길래 TV도 안 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 친구가 물었다. 책을 읽은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책을 읽기 시작한 동기가 내 삶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가 뭔가 쑥스러웠다. 그래서 "그냥 이것저것 읽기 시작했어." 라며 대답을 얼버무렸지만, 친구 부부는 여전히 관심이 많은 눈치였다. "너, 애도 키우고 있는데 책 읽을 시간이 있어? 언제부터 읽은 건데? 베스트셀러 같은 거 읽는 거야?" 갑자기 들어온 폭풍 질문에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이 순간 이들이 왜 이렇게 답을 요구하는지를 깨달았다. 이들도 타의에 의한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앞서 고민했던 것들이 그들 삶에도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천천히 내가 독서를 시작한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직장 생활만 10년째 하니까 갑자기 현타가 오더라... 이제라도 남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내 삶을 위해 일해보고 싶어 졌어. 그런데 내 삶이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내 삶을 살아가는 건지부터 막막했어. 게다가 아이까지 있으니, 그냥 아빠로서 내 인생이 끝나는 건가라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어. 뭐 좋은 아빠로서 내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아이에게 그저 그 정도의 아빠이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된다고 해도 아이에 대한 집착만 남게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결심했어. 나를 위해 그리고 가정을 위해 내 삶을 찾는 방황을 시작하기로...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어. 책에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인생 선배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들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했어. 자기 계발서, 경제 서적, 역사책, 소설책, 심리학 서적 등을 가리지는 않았어. 그 분야마다 치열한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정말 틈틈이 읽었어. 내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과정이었으니까. 출퇴근하면서 읽고, 회사 화장실에서도 읽고,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읽었어. 아이가 낮잠을 잘 때, 고맙게도 혼자 놀아줄 때도 여전히 책을 읽었어. 그리고 내가 평생을 거쳐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삶의 윤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니까 더 치열하게 읽게 되더라."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내가 최근 깨달은 모든 것을 친구 부부에게 털어놓았다.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건지, 잘하고 있다는 격려가 필요했던 건지 아니면 그들의 고민도 나와 같아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 부부도 그 순간 뭔가 한방 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본인들이 알던 나는 술 마시고 시답잖은 농담만 하며 깔깔대던 놈팽이었는데, 그 자리에선 좀 다르게 보였나 보다. 마지막으로 친구가 물었다. "그럼 책은 서점에서 사서 항상 들고 다닌 거야?" 이 질문으로 나는 알았다. 그가 나처럼 실천해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아니, 밀리의 서재라는 어플이 있는데, 구독료 만원 정도면 웬만한 책은 모바일로 다 읽어볼 수 있어. 나는 이걸로 봐." 하며 내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내가 읽은 책들과 감명 깊은 문구를 하이라이트 해놓은 목록들, 미리 표시해둔 관심 서적들 리스트를 차례로 확인시켜주었다. 그들은 한 번 더 황당한 표정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남을 놀라게 하는 재미로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모임이 있고 얼마 지난 후 회사에서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사실 그 친구는 회사 동기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단 둘이 커피를 마시면서 그가 자랑스럽게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야, 나도 밀리의 서재 어플 깔아서 구독했어. 네가 말한 대로 눈길이 가고 재밌을 만한 책을 먼저 찾아서 읽고 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한참 뜸 들인 후에 이렇게 얘기했다.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줘서 고맙다." 이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드디어 윤곽만 보이던 앞으로의 삶의 방향이 뚜렷해진 것을 느꼈다. 나는 오히려 친구에게 내 얘기가 정답이 아닌데도, 긍정적으로 들어주고 행동까지 실천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표현했다. 아직 친구에게는 글 쓰고 있는 것 까지는 얘기는 안 했지만, 언젠가는 얘기할 날이 분명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내 삶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맞다. '내가 가지고 있거나 깨달은 것을 남들에게 기여하는 삶. 그리고 이를 통해 스스로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는 삶.' 이게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원하는 삶이었다. 이 삶은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지만, 남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삶이었다. 나의 인정 욕구를 채우면서도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이었다. 내가 가진 것을 남들과 공유하면서 스스로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삶이었다. 친구의 한마디로 인해 드디어 앞으로 살아야 할 나만의 삶에 대한 해답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방황하고 있는 삶의 과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도 함께 왔다. 앞으로 내 삶은 또 다른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해 더욱 방황할 것이고 처절한 고민 속에 있을 것이지만 이를 통해 깨달은 바가 생긴다면, 나만의 삶은 더욱 단단해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를 모두에게 공유하여 나와 같은 고민에 빠지신 분들에게 공감과 격려를 해주고 싶다. 친구에게서 우연히 들은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줘서 고마워"라는 이 말을 나는 더욱 듣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