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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망심리 Jul 23. 2023

패션쇼와 바바리 맨

마망심리 사례14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런웨이(run way)를 걸어 나온다. 좁고 기다란 런웨이 주위를 관객들이 둘러싸고 앉아서 패션쇼를 즐긴다. 모델들은 현란한 복장을 한 채 휘청거리며 몸을 좌우로 흔들며 관객들을 향해 걸어 나온다. 모델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무대 앞으로 나왔다가 아주 잠깐만 관람객 앞에 머물고 급히 돌아서서 무대 뒤로 사라진다. 한 모델을 자세히 보려 하면 이미 벌써 뒤돌아서 가버리고 새로운 모델이 그 뒤를 줄지어 나온다. 도대체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 그렇다면 관람객이 패션쇼에서 얻을 수 있는 쾌락은 어디서 오는가? 

패션쇼의 한 장면

패션쇼의 쾌락은 의상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의상 뒤에 감추어진 육체에 있는가? 그러나 옷을 벗어 던졌을 때 육체는 그저 한갓된 육체일 뿐이며 아무런 매력이 없다. 그 순간 우리는 패션의 눈속임에 속아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패션에서도 아니며 그 뒤에 숨겨진 육체에서도 아니라면 쾌락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패션 복장들 사이사이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육체를 가리는 동시에 가리키는 양가성과 그것의 간극에서 나오고, 모델들이 관람객 눈앞에 찰나처럼 지나갔다가 다시 나타나는 반복 사이의 번쩍임에서 온다. 패션쇼의 쾌락은 패션 그 자체가 아니라 패션쇼의 현란한 틈들을 상상하며 즐기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그 간격들 뒤에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하게 만드는 의상이 만들어 내는 ‘베일’의 효과이다. 


이런 패션의 베일 효과를 노리는 것이 일명 바바리 맨이다. 그는 소녀들이 많이 있는 여자고등학교 앞에 가서 여고생들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며 ‘향락’을 즐기는 자이다. 바바리 맨은 이름 그대로 언제나 바바리를 걸치고 나타나지, 벗은 채로 등장하지 않는다. 바바리라는 그의 의상이 몸을 가리고 있다. 바바리는 몸을 가리기보다는 자신의 몸을 드러내기 위해 일시적으로 감싸고 있다. 그래서 그의 향락은 성기의 노출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향락은 일회성의 노출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노출의 쾌락보다는 바바리를 펼치고 닫는 그 사이의 간격, 즉 분열의 공간에서 향락을 얻는다. 

바바리 맨


열고 닫는 분열의 공간이 왜 향락을 발생시키는 것일까? 열고 닫음이 반복되면서 열림의 씨실과 닫힘의 날실의 반복이 베일을 직조하기 때문이다. 바바리를 열고 닫는 반복이 만드는 그 베일이 그의 해부학적인 페니스(penis)를 남근적 가치를 갖게 하면서 그의 향락을 생산한다. 여기서 남근(phallus)이란 기호형식(significant)으로서의 남근이며, 어떤 의미작용, 즉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향락을 만들어내는 어떤 것이다. 


이것을 패션쇼에 적용해보자.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흔들거리며 나타났다 사라지고, 보여줄 듯 말 듯 얇은 천들을 하늘거리며 등장한다. 반복과 틈을 보여주는 모델들의 등장과 사라짐, 보일 듯 말듯 한 의상의 하늘거림은 그 뒤에 뭔가 있을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관객을 유혹하고, 관객은 호흡을 멈춘 채 패션쇼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하늘거림과 흔들거림이 만드는 베일이 환상을 만들고 동시에 베일 뒤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 무엇인가가 기호형식으로서의 남근이다. 사실, 베일을 걷어버리면 날것으로의 육체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그 무엇인가는 베일이 있을 때만 생겨나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 베일 뒤의 그 무엇인가는 잡을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을 보는 이로 하여금 애태우게 만드는 대상이다. 이 애태움이 바로 향락(jouissance, enjoyment)이다. 향락은 쾌락과 다르게 고통 속에서 느끼는 쾌락이다. 


마찬가지로 바바리 맨은 바바리를 열고 닫으며 베일을 창조하며 그 속에서 향락을 느낀다. 왜냐하면 열고 닫는 베일이 남근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바바리 맨은 자신의 해부학적 페니스를 보여줌으로써 향락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바바리를 열고 닫는 틈이 창조하는 베일 뒤에 신기루처럼 탄생하는 남근의 향락을 즐기는 자이다. 향락에는 쾌락과 다르게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에 바바 리 맨은 쾌락의 원칙 너머에 있는 고통 속의 쾌락, 즉 향락을 즐기는, 크게 즐기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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