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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망심리 Nov 12. 2023

데자뷔를 정신분석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마망심리 사례22

어떤 장소가 처음으로 방문한 곳인데도 낯설지 않고 친숙하게 느껴지며 언젠가 와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현상을 데자뷔(déjà vu)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는 기시감(旣視感)으로 번역한다. 이것을 정신분석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데자뷔와 달리, 친숙하던 것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프로이트는 그것을 엔트프렘둥(Entfremdung)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우리말로는 ‘낯섦’으로 번역되고, 영어로는 ‘strangeness’, 프랑스어로는 ‘étrangement’이다. 


프로이트는 낯섦이라는 현상을 ‘격리(억압)’된 것이 회귀하는 표시라고 본다. 말하자면, 자아가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표상을 격리(억압)하게 되는데 그것이 되돌아올 때 낯섦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나, ‘거리’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올 때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를 것 같은 상태가 되거나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현상이 낯섦이다. 그것은 자아가 어떤 것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리하려는 현상이다. 반면, 데자뷔는 어떤 것을 자아 속으로 받아들이려는 현상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격리(억압)된 것이 회귀할 때 그것을 자아 속으로 받아들이려 할 때 데자뷔 현상이 나타나고, 그것을 멀리하려 할 때 낯섦을 경험한다.


프로이트는 데자뷔 현상을 경험한 자신의 환자의 예를 제시하는데 그 사례는 격리(억압)된 것의 정체를 짐작하게 도와준다. 37살인 여인이 12살 때 친구의 집을 찾아갔을 때 일어난 이야기를 프로이트에게 들려주었다.

 


그녀는 친구 집 뜰에 들어서며 전에도 한 번 와본 적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응접실에 들어서는 순간, 와본 적이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지고, 다른 방이 어떻게 생겼다는 것까지 예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곳이 낯설지 않고 친숙하다는 느낌은 자신이 친구의 집에 와봤기 때문일 것이라는 가능성은 곧 지워야 했다. 친구 부모에게 물어보았더니 방문한 적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데자뷔를 체험한 것이 무언가를 예언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그것을 무의식적 환상에 불과하다고 그녀에게 일러주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환상은 어떤 것일까?


당시 그녀가 친구 집에 갔을 때 친구에게는 굉장히 아픈 남동생이 있었다. 친구 집에 있는 동안 그녀는 내내 이상하게도 그 남동생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굉장히 아픈 얼굴을 보고는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즈음, 그녀의 동생은 몇 달 전에 걸린 디프테리아로 무척 아팠다. 남동생이 병에 걸려 누워 있는 동안 그녀는 전염의 우려로 집을 떠나 몇 주 동안 혼자 친척 집에 보내졌다. 여기서 친구의 남동생과 자신의 동생이 아프다는 공통성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자기 동생과 같이 갔다고 기억했으며 심지어 동생이 병에 걸린 이후 처음 먼 길을 여행한 것이라고 기억하고, 자신의 옷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이 났다. 그러나 정작 같이 갔던 동생과 동생의 옷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없다. 전혀 기억이 없다는 것은 망각이며 세세한 부분이 기억나는 것은 강조점이 이동한 증거이다.  


그 상황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쉽게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가 있을 것이다. 자기 동생이 곧 죽을 거라는 그녀의 예감이, 당시 그녀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예감이 의식화되지 않았든, 아니면 동생의 병이 치유되고 난 뒤에 격리(억압)시켰든 말이다. 만일 상황이 정반대로 전개되었다면, 즉 동생이 회복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도 다른 옷, 그러니까 상복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옷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이 난 이유가 이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동생은 아팠다가 회복되었고, 그런 후에, 그녀는 친구의 집에서 비슷한 상황을 보게 되었고, 친구의 남동생은 며칠 후에 숨을 거두게 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그녀는 친구의 집을 방문하여 친구의 동생이 아픈 것을 보게 되자 몇 달 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고 의식적으로 기억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해내는 대신(아마, 격리[억압]에 의해 제지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기억의 느낌을 당시 그녀의 주변 상황, 즉 그 친구의 집과 뜰 등으로 이동시켰던 것이고, 그 결과 이 모든 상황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 빠졌던 것이다. 격리(억압)이 일어났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자기 동생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예감이 그녀의 소원 환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 포함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정말 외동딸로 남게 된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덧붙인다. 실제로 신경증에 걸린 그녀는 부모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남동생에 대해서도 똑 같은 무의식적 소원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 데자뷔에 관한 이 글은 프로이트의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1902)의 354~8쪽에 나오는 내용을 정리하여 적은 것이다. 

* 격리(억압) : 프로이트가 사용한 ‘ Verdrängung’ 을 억압이라고 번역하지만 사실은 그것의 의미는 ‘따로 떼어 보관하다’는 뜻이므로 ‘격리’로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억압’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격리’로 번역하고 ‘억압’을 괄호로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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