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망심리 사례 8
어느 젊은 여성이 <잘못듣기>를 한 사례이다.
그녀는 작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직원 한 명이 더 채용되어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녀는 채용된 동료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는데 동료의 대답을 듣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 동료가 <화냥년>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속으로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지?’ 하고 의아해했다.
그리고는 다음 날 그 동료를 다시 만났을 때 물어보았다. “이름이 이하얀이라고 했지요?” 왜냐하면 전날 그녀는 동료가 <화냥년>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듣고 놀라며 다시 물어보았을 때 동료가 자신을 <이하얀>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저는 김하얀인데요?”
그녀는 왜 이렇게 두 번이나 잘못듣기를 한 것일까?
사실, 그녀는 외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자신을 애써 외면하며 격리(억압)하고 있었다. 그러나 격리(억압)된 것은 회귀한다. 외도하는 그녀는 자신을 화냥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은 격리(억압)된 <화냥>이 <하얀>과의 발음의 유사성을 따라 돌아오면서 <화냥년>으로 잘못듣기를 한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잘못듣기, 즉 <김하얀>을 <이하얀>으로 잘못들은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우리가 외도하는 어떤 여자를 비난하며 부른다면 이렇게 부를 것이다. <이 화냥년아!> 외도하는 그녀도 자신을 스스로 질책하며 <이 화냥년아>라고 불렀을 것이다. 자신을 <이 화냥년아>라고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 때문에 <이 화냥년아>가 <이화얀(년아)>를 거쳐 <이하얀>으로 잘못들은 것이다.
심리 내면은 비난하는 초자아와 비난받는 자아로 나누어져 있다. 자아를 비난하는 초자아의 목소리가 현실로 투사되어 현실에서 들려온다. 이것이 심해지면 진짜로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욕한다는 망상이 생긴다. 그래서 프로이트가 <자리는 바뀌었는데 내용은 그대로다> 라고 말했다. 프로이트는 『일상생활과 정신분석』에서 무수한 잘못듣기와 잘못 말하기, 잘못 쓰기와 같은 실수를 예로 들면서 격리(억압)된 것이 어떻게 되돌아오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