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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Oct 27. 2023

곁에 있어준다는 것

시간강사를 하다 만난 00 이는 이전에 편식지도를 하느라 무척 애를 썼던 아이를 떠올리게 했다.

김과 흰 밥만 먹다가 가끔은 식단표에 올라와있는 메뉴들 중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는 날엔 그것을 받아와서 먹는, 5일만 만나면 되는 아이.

편식지도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냥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내일은 치즈돈가스가 나오는 날이네. 치즈돈가스는 먹을 수 있어?"

"네. 치즈돈가스는 먹어요."

"그럼, 고기는 먹을 수 있는 거네?"

"아니요, 고기는 소고기만 먹어요."

"아, 치즈돈가스는 치즈가 있으니까 먹을 수 있는 거구나!"

"네..."

웃어주고 주어진 시간을 함께 보내주고 5일이 지났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한다는 작가의 글이 추천으로 들어왔다.

브런치를 비롯한 글쓰기 플랫폼에 남아있는 나의 읽기 취향으로 분류된 추천일 것이었다.

SNS를 찾아다니며 글을 읽고 '좋아요'를 몇 번 누르다가 멈춘 지 제법 오래되었다.

브런치의 구독과 라이킷도 몇 번 누르다가 별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서 그것도 멈추고 있다.

내가 구독하고 있는 작가들의 글을 하루 한 두 편 이상 읽는 일은 내게는 불가능하다. 구독 작가수를 늘리는 일을 멈추고 내 글에 라이킷을 누르는 작가들의 글을 찾아가며 예의상 '라이킷'을 누르는 일도 멈추기 시작한 지 조금 오래되었다.

굳이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올리면서 타인의 글을 적극적으로 찾아 읽지도 않고 내 글이 적극적으로 읽히기를 원하지도 않는 약간의 모순된 포지션이지만 그저 이대로의 프리스타일이 나는 제법 마음에 든다.

아무튼 그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작가님의 글은 내 포지션과 약간 다른 지점에 있는 탓에 세심한 모순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백 명 이상의 친구들이 결혼식에 찾아와 축하를 해 주었고 아내보다 정도 많은 금액의 축의금을 받았다는, 미니멀한 인간관계를 지향하고 있는 작가의 글. 나와는 다른 미니멀의 스케일이 눈길을 끌었다. 결혼 축하해요.

그냥 읽어주고 그 작가분에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미소 한 번 지어주고 추천글 페이지를 나왔다.


"하 참! 1박 5식에 5만 원이면 된다는 민박집이 있으니 거길 예약하라고 하시네.."

갑자기 퇴직 후 취업프로그램에 당첨되어서 다니던 직장에 최저임금 계약직 직원으로 재취업하게 된 남편이 평소 자주 연락하던 선배님과 1박 여행을 준비하다가 난처해했다.

그분이 알려준 정보를 찾기 위해서 그분이 알려주신 그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기로 했다. 빈 시간을 기호에 맞는 채널을 찾아보며 알고리즘의 안내를 받아 정착하게 된 그 70대 연배 어르신의 눈높이를 맞추어가다 알게 된 유튜브채널은 낯설고 생소했는데 거의 가짜뉴스 수준의 정보를 알려주는 여행 채널, 시사 채널들이 나타났기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정보를 정성스럽게 다루는 채널들을 하나하나 스캔하면서 어쩌면 내가 아는 현실이 현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살짝 스쳐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한 두 개 흐리게 처리된 단어들에 집중해서 보면 그 채널들이 거짓된 정보만을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게 된다. 일단 기본은 1박 2식 5만 원으로 시작한다. 자막 행간에 정확하게 작고 흐린 폰트로 함께 흐르고 있는 단어들을 모아보면 '4인 이상 예약 가능하며(실제로 예약하려던 사람들은 예약이 불가능했다는 호소 댓글) 저녁과 아침을 1인 5만 원에 제공하고 (그러니까 1박에 20만 원) 요청하면 특식으로 보양식을 별도 금액으로 제공하니 간식과 요청식까지 합해 5식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팩트였다. 장소는 산넘고 물건너 때로는 바다를 건널 수도 있으며 자세한 주소는 전화로 문의해라 정도...

남편이 선배에게 그 내용을 차근차근 알려주는 동안 그분은 당신이 선호하는 유튜브 채널의 오류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사정 때문에 여행을 함께 가지 못하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상황을 종료하셨다.

남편은 서둘러 선배를 찾아가 식사 한 끼니 대접해 드리고 좋아하시는 탁구 한 게임을 함께 하겠다며 모처럼 갖게 된 비정규직의 연차 1일을 보냈다.


곁에 있어준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일인지도 몰랐다.

생각과 표현의 오류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되물어보고 깨닫게 해 주는 일보다 그저 상대의 표현을 그냥 읽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기다려주다가 불시에 찾아오는 각성의 순간, '아하!'의 시간을 함께 하며 웃어주는 일.

그 '아하!'의 시간이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면서.

그러다 보면 불쑥 고개 밀고 나타나는 내 속에 자리하고 있던 나만의 오류도 상대의 오류처럼 그냥 가벼운 농담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는 일.


아마도 그런 것이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어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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