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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Jan 21. 2024

아라비아 사막의 석양

사막의 시간이었던 인생의 한 때가 있었다.

"있잖아, 엄마.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정말로 눈물이 났어?"


사막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딸이 물었다.


최근 유명한 요리연구가의 가정 불화 사연을 인터넷뉴스로 보고 있었는데 대략 나의 사정과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다른 것 하나가 있다면 나는 좀 더 일찍 시어머니와의 관계 종료 선언을 했다는 것이었다. 별로 어려울 것은 없었다. 돌아오는 모든 말들에 대해 귀를 닫고 찾아가서 뵙는 모든 일을 멈추면 되었다.


"돌아가셨는데 그럼... 이것 밖엔 달리 길이 없었을까? 이렇게 돌아가실 것을 그리도 식구들을 아프게 하셨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한 말을 하는 법을 배울 수가 있었다면 우리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이었다면 차려드린 음식마다 투정을 부리시면 '저는 이것밖에 못 차려드리겠어요. 마음에 들지 않으셔도 시장하실 때 드셔보셔요. 혹시 드시고 싶은 것이 생각나면 말씀해 주세요.' 하고 말한 다음 내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닫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그걸 몰라서 꾹꾹 참고 지내다가 그만 '가족'이라는 형태의 문을 닫아버렸던 거였지... 장례식장에서 눈물은 났지만 후회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어."


지난해 마지막 날 딸과 나는 아주 즉흥적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두바이, 아테네, 산토리니 5박 8일의 일정을 여행사에 의뢰했었다. 연휴가 끝난 다음날 여행사에서 답이 왔고 여행코디네이터는 내가 일정을 검색할 필요도 없이 항공권과 숙소와 일정을 빠르게 예약해 주었다.


코로나 전에는 여행사에 에어텔을 예약하면 내가 같은 항공편과 숙소를 개별 예약 하는 것에 대략 15퍼센트 정도의 비용을 추가로 지불했었는데 이번 일정은 비수기임에도 성수기 기준으로 계산된 비용이 청구가 된 것 같았다. 여행사에서 보내 준 여정으로 항공편과 숙소를 개별적으로 예약해서 간다면 나는 내가 여행사에 지불할 금액의 상당히 많은 비용을 줄일 수가 있었다. 아주 잠깐동안 여행사가 보내 준 메일 속의 여정과 숙소를 참고로 개별 예약을 해서 다녀올까 하는 유혹이 스쳐갔지만 얼른 마음을 붙잡았다. 급하게 여행을 가고 싶었고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 없이 여행사의 전문 지식을 빌리기 위해 일정을 의뢰한 입장에서 약삭빠르게 여행 스케줄만 훔쳐오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그렇더래도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다 찾아볼 수 있는 이 시기에 이런 금액을 청구한 것은 너무한 일이었으므로 딸과 나는 이번 여행을 마지막으로 여행사를 통한 여행은 절대로 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어떤 일의 마지막 선언에는 이런 계기가 필요할 때가 가끔 있는 법이기도 하다.


작년 11월 말에 갑자기 병가를 낸 기간제교사의 대체 기간제교사 요청이 들어왔다. 재작년 겨울에도 비슷한 사연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곳이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일이 생긴 것이었다. 나는 단번에 거절을 하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한 달 열흘 남은 학기를 마무리하지 못할 만큼 힘들게 버텨 온 그 젊은 기간제교사의 마무리를 도와줄 정도의 힘은 아직 내게 남아있었으므로. 그래서 딸에게 '그 기간제 선생님이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해 주고 오겠다'라고 말하고 기간제교사를 대체하는 기간제교사라는 기묘한 타이틀로 한 달 열흘을 채워주고 온 다음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것이 취업 서류를 넣고 연락을 기다리고 면접을 보는 여러 번의 반복에 지친 딸에게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젊은 너희들에게는 실수할 기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종종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학기 마무리 직전에 퇴직금을 받는 데 지장이 없는 병가 일수를 계산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던 사람도, 갑작스러운 여행 의뢰자에게 많은 익을 남기며 여행 일정을 짜 준 여행사 직원도 지금은 본인들이 약삭빠르고 영리하게 행동을 해서 이익을 보았다고 만족해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떻든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제각각의 사막을 여행하면서 어느 날 홀연히 명백했던 '그때의 실수'에 대해 깨닫게 될 날이 오게 될 테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몫이니까 우리는 천천히 이렇게 '알면서도 속아주는' 여행자가 되어 우리의 시간을 여행하면 되는 일이었다.


내가 계획을 세우고 내가 짠 일정대로 가는 여행도 괜찮았지만 이렇게 아무 정보 없이 다른 사람이 권해주는 일정을 따르는 것도 괜찮은 여행이었다.


거대한 사막 위에 세워진 인공의 도시.

동트기 전 두바이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메트로를 탔다. 여행가이드북에서 추천한 대로 전철 진행 방향의 차창 풍경을 볼 수 있는 골드존에서 바깥 전망을 보면서. 빠르게 달리는 어스름 새벽의 차창 밖으로 화려한 조명들이 빛을 뿜어내듯이 가까워지면 높디높은 건물들이 누워있다가 일어서는 것처럼 커다랗게 나타나 가까이 다가왔다 사라져 갔다.


그 여행 전문가가 이른 아침에 도착해서 비는 시간을 이용해 잠시 사막투어를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해서 그 또한 개별 예약보다 세 배 정도가 되는 비용으로 예약을 했었는데 그만 펑크가 나버렸다. 호텔 로비에서 약속시간이 지나도록 픽업기사가 나타나지 않았기에 나는 호텔 컨시어지에게 부탁을 해서 현지여행사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그는 내가 알아듣기 쉬운 영어로 내 투어가 예약은 되어있으나 이해 못 할 이유로 확정된 상태가 아니어서 오늘의 투어는 진행이 불가능해졌다고 설명을 했다.


나는 곧 한국의 여행코디네이터에게 연락을 해서 '짧지만 내실 있는 여행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왔는데 첫 단계부터 아주 당황스럽고 불쾌한 상황을 만났다. 귀사에서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를 해 주시는지 유의 깊게 기다려보겠다'라고  약간 냉정한 목소리로 경고를 날렸다.


예약 확정 바우처까지 받았는데 절대로 그럴 일이 없다던 담당자가 현지 여행사와 연락을 해 보고는 허둥지둥 다시 사과전화를 걸어와서 오전 4시간 투어 예약이 현지여행사의 오류로 착오가 생겼노라며 석식이 포함된 저녁 7시간 투어 프로그램으로 진행을 해 주고, 스케줄 오류 때문에 발생한 비용은 보상을 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잠깐의 소동이 지나가고 오후가 되어 딸과 단 둘만의 프라이빗 사막투어를 득템 했다.


닛산의 4륜구동 랜드크루즈를 타고 사막의 일몰을 찾아가는 사막사파리.

여러 대의 차가 사막 입구의 주차구역에 모여서 차바퀴의 공기압을 조절하고 순서를 정해 조를 짜서 차례차례 사막을 달렸다. 어떤 사람들은 멀미를 하기도 한다는 오르락내리락 휙휙 드리프트를 하다 내리면 사막의 언덕에서 긴 그림자를 만나기도 하고 광활한 석양의 사막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해가 진 어스름의 붉은 모래산자락 아래로 제법 큰 캠프가 보이는 곳까지 가면 낙타를 탈 수 있고 샌드보드를 탈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수술을 한 사람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은 낙타를 타지 말 것, 낙타 등에 올라가면 낙타가 일어설 때와 앉을  때 줄을 잡고 몸을 뒤로 기울이라는 안내가 있었는데 일단 앉아있는 낙타의 등에 오르는 일부터가 쉽지가 않아서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앉아있던 낙타가 일어설 때 줄을 잡은 몸을 최대한 뒤로 기울이려고 힘을 좀 써야 할 때의 그 불균형감이란... 우리를 등에 태운 낙타가 10미터 정도 걸을 때, 다시 우리를 내려주기 위해 낙타가 앉을 때에도 똑같이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제법 많은 힘을 써야 했다.


샌드보드를 타려면 5미터 정도 위로 보드판을 들고 올라가야 했는데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언덕을 오르는 일이 엄두가 나지 않아서 가뿐하게 포기하면서 나는 딸에게 고백했다.

 "나, 이런 여행 이제 이번이 마지막일 거 같아. 다음에 오게 되면 낙타는 못 타는 체력이 될 거 같다."


이틀 후 산토리니 해안가의 계단을 걸으면서도 똑같은 말을 해야 했다.

"이제 앞으로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런 계단을 오르는 일은 못할 거 같다."




'베두인'은 사막의 유목민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베두인캠프장 안에 불을 지핀 부뚜막에서 우리가 먹을 음식이 준비되고 있었다.

커다란 항아리가 놓인 뜨락을 지나 양탄자가 깔려있는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가지고 와서 먹으면서 우리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들 이야기를 했다.


어디를 가나 모래뿐인 사막을 낙타를 타고 가다 보면 물이 있는 오아시스 주변에 풀과 나무가 자라고, 마을이 생기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길 것이었다. 모래바람으로 흩어졌다 나타났다 하는,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마을의 이야기들. 하늘을 는 양탄자를 타고 다닌다는 사람들이 전해주었다는 어딘가 모를 이곳저곳의 이야기를 나누며 적막한 사막의 삶을 이어갔을 사람들. 하루하루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 모래 벌판에서 느끼는 공포와 적막감을 이겨내기 위해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삶의 중심으로 하나님을 맞아들일 수밖에 없었겠다. 그리하여 충분히 강한 사람들이 살아남아서 밤하늘의 별만큼 많은 언약들을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짚으로 만든 가마니가 있다면 사막엔 양털로 만든 양탄자가 있었다. 운동화를 신은 채로는 걷기가 조금 힘든 모래밭 위에 크고 넓은 양탄자가 깔리니 폭신폭신하고 안정적인 바닥이 되어 걷기에 무척 좋았다.

레드카펫은 이런 모래밭 위에 세운 성에 사는 지위 높은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을지...

아랍의 전통 공연을 보면서 숯불 향이 벤 연한 양고기, 닭고기, 쇠고기와 야채들의 풍미가 더할 수 없이 좋은 식사를 했다.


돌아오는 길 어두운 사막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 빛났다.


중학교 1학년때 전교생 학급 합창대회가 있었다.

욕심이 많으셨던 담임선생님은 음악선생님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며 고민을 한 끝에 "페르시아의 시장"이라는 곡을 선곡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연습을 시키셨다. 


Ketelbey(케텔비)라는 작곡가의 관현악곡에 가사를 입혀 합창곡으로 편곡된 곡이었다.


 In a Persian Market(페르시아 시장)


어두운 밤 가고 날은 밝아

찬란한 아침 찾아오니

우리 가슴은 설레이

희망 가득 찼네


지난밤에 이룬 꿈 한없이 아름다워

슬기로운 꿈길 따라 발걸음을 옮기리

아득한 허허벌판 사막은 고달파라

낙타등에 해가 지니 보금자리 찾는다


검은 하늘에 별이 졸고

고요한 사막 밤은 깊어

온누리 모두 잠이 들어

꿈나라 찾는다


동무들아 모여라 모닥불을 밝혀라

적막한 이 사막에 꽃을 피우자

너는 노래 불러라 나는 춤을 추리라

젊은이의 한 시절 즐겨보잔다



낯설지만 생기 넘치고 흥미로웠던 음률과 가사였다. 중학교 입학 직후 한두 달 동안 틈만 나면 부르던 노래, 젊은이의 시절에 불렀던 그 노래를 사막의 지는 해를 기록하며 떠올려본다.


여행이 끝난 뒤 여행사에서 스케줄 오류 때문에 발생한 비용 보상을 해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호텔 얼리체크인을 해서 추가된 금액은 만원을 넘지 않았고 사막의 선셋투어도 괜찮았던 나는 더 이상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 테니 이 클레임에 대해서는 마무리를 하시라고 답을 보내며 여행사를 이용한  마지막 여행의 마무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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