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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Mar 14. 2024

아리가또데...(...고마워서요...)

삿포로 가는 열차 안에서 아가의 인사를 통역받았다

삿포로는 눈축제기간이라고 했다.

오타루 시장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서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골목을 거닐 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오타루역에서 삿포로행 직행 열차 대기라인에 맞추어서 줄을 섰다. 우리 앞에 세 명의 사람이 있었으니 빈 열차가 들어와서 타게  우리가 앉아서 가기에 충분한 대기순이었다.


기차가 들어올 시간이 가까워지며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승강장은 차츰 복잡해져 갔다. 대가족으로 보이는 한국인 여행객 일행이 한 줄로 그려진 대기라인에 서 있는 우리 옆으로 와서 서성이기 시작했다.

기차가 들어왔고, 대기줄의 앞 순서인 우리를 제치며 그들이 내 앞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나는 힐끗 그들을 바라보았고 그들은 주춤하며 말없이 나에게 승차 순서를 양보(...?.) 해 주었다. 그러나  객차 안에 발을 디디기 무섭게 나를 제치며 자리에 앉기 위해 애를 썼다.

한국 지하철과 다름없는 탑승장이었다.


열차 안에서 그 가족이 내 옆으로 따라오면서 계속해서 나를 밀며 그들의 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딸과 나는 겨우 자리를 잡고 앉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가 울었다. 할머니인듯한 분이 아이를 확인하시고는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조금 언짢아졌지만 그냥 말없이 앞쪽에 둘러 선 승객들이 서서 갈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로 여기서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일만큼은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아이는 울음을 멈추었고 사람이 많이 탄 열차 안에서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내 앞에 내 나이 또래의 여성이 섰다.

내 옆에 앉은 딸아이의 앞에는 그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이 섰고, 옆에 딸의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백일이 조금 지났을 것으로 보이는 여자아가를 안고 섰다.

아가를 안고 있는 아기엄마의 등에는 커다란 짐 가방이 메어있었다.


세 사람은 아마 가족인 듯했고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시 뒤 서로의 핸드폰을 보다가 창밖을 보다가 하면서 말을 멈추었다.

몇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들, 특히나 아가를 안고 서 있는 아기엄마가 마음에 걸린 나는 그들을 자꾸만 바라보다가 왠지 모를 낯섦을 작게 느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의 커다란 등짐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짐이 없는 초로의 부부. 그 세 명이 나란히 서서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는 열차 안의 풍경....

그건 정말 낯설었다.


그러나 또 그것도 그저 안 보이는 듯한 표정을 만들면서 나는 옆으로 움직이는 지하철의 바닥 풍경만을 바라보려고 애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커다란 짐가방을 둘러멘 엄마에게 안겨있던 아가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옆에 서 있는 두 분의 어른들과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엄마가 대화를 마치고 나서 휴대폰을 열어서 보고 있는 동안 아가의 몸을 감싸주던 손이 사라져 아기띠에만 의지하게 된 아가의 작은 몸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아가는 칭얼거리다 짧은 간격으로 몇 번을 울었다. 열차가 움직이는 큰 소리에 아이의 작고 짧은 울음소리가 조금씩 섞였다가 사라지고 그러는 동안 열차 안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 당사자들까지도 그런 것 정도는 그냥 풍경처럼 여기고 조용히 넘기려 보이지 않는 애를 쓰는 것 같았다.


나는.... 도무지 그것이 풍경처럼 여겨지지가 않아서 앉아있던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아기 엄마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핸드폰만 바라보던 그 엄마가 잠시 아가에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낮게 든 손을 적극적으로 흔들면서 나를 바라보기를 청하는 손짓과 눈짓을 그를 향해 보냈다.

아기엄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손짓으로 내 무릎을 가리키며 윗몸을 일으키는 시늉을 했다.  

그가 의아한 눈빛으로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으므로 나는 얼른 내 무릎에 있던 가방과 옷가지를 옆에 있는 딸의 무릎에 옮겨가며 일어섰다. 아기엄마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딸 앞에 서 있던 남자어른과 내 앞에 서 있던 여자어른을 거쳐서 내 앞으로 왔고 나는 얼른 자리를 딸 앞으로 옮겨 서면서 아기엄마가 자리에 앉는 것을 완료하기를 기다렸다. 그것을 바라보던 남자어른과 여자어른이 차례차례 옆으로 한 칸씩 자리를 옮겨서 내가 딸 앞에 제대로 서 있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내가 자리를 비워 준 것에 대해 표정으로라도 인사를 받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딸과도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얼른 휴대폰을 열어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가의 엄마도 말이 없었다. 옆으로 자리를 비껴 준 두 명의 어른도 말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가 다 그렇게 휴대폰을 열어 보며 잠깐동안의 조용한 어색함을 마무리하고는 곧 애초에 그랬던 것처럼 자리를 잡아갔다.


그런데....

엄마에게 안겨있었으니 등만 볼 수 있을 뿐이었던 그 아기가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빤~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쳐다보는 것이었다.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 그리고 조금 전 그 엄마가 내게 보여주었던 눈빛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눈빛으로 아가는 나를 쳐다보았다.

내 옆에 서 있던 여자 어른이 조용히 일본어로 말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본어 중의 하나였다.


"아리가또데....."

(고마워서요...)


나는 여전히 그 어른들과는 시선을 맞추지 않으면서 '노노노노! '하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얼굴의 모든 근육을 다 풀고 온 눈과 온 입술로 미소를 만들어 지으며 아가의 눈을 마주 보았다.

아가는 한참을 그렇게 내 얼굴을 보다가 엄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번 더...

또 한 번 더...

아가는 무려 세 번을 똑같이 반복해서 고개를 돌려 나를 큰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도 똑같이 세 번을 반복해서 눈을 맞추며 웃어 보였다.


도착지까지는 삼십여분이 걸렸고, 그동안 아가는 엄마품에 안겨 잠이 들었고, 열차 소리와 안내방송 말고는 주변의 모두가 조용했다.



시간이 제법 흘렀음에도 나는 그날 열차 안에서 낯선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받는 엄마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지어 보이던 눈빛과 표정을 조용히, 한편으로는 강렬하게 여러 번 따라 하면서 사회적 표정 한 가지를 익히던 그 아가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소란스럽게 가족들의 자리를 만들어 앉히는 한국의 끈끈한 가족애에 길들여 살던 나에게 그렇듯 조용한 가운데 강렬하게 상대방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도 끝까지 그 조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이 돌도 되기 전부터 몸에 쌓인 깊은 뿌리를 가진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 그것은 여행지에서 종종 깨닫게 되는, 다른 나라 사람들뿌리와는 사뭇 다른 뿌리를 가진 나를 보는 강렬한 경험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 시간에 나도 그처럼 커다랗게 뜬 눈으로 아가의 엄마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고 있었으니,  그러니 또한 내가 모르던 나의 사회적 뿌리 하나보게 , 커다랗게 눈으로 나를 보던 아가의 그 눈이 역시나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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