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이 없던 토요일.
마당에 풀어놓은 소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어서 재미있었다. 빨래가 널린 햇빛 바른 마당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소라니... 여긴 잔디깎이가 필요 없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바깥 산책 후 돌아왔을 때 송아지가 태어나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마당에서 소가 혼자 새끼를 낳고 있었다.
잠시 저렇게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서툴게 일어나 엄마에게 다가가 젖을 물려하고, 엄마소는 하염없이 그 아가를 핥아주고 있었다. 제 배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잠시 후 소는 송아지와 함께 뒷 산에 있던 그의 축사로 돌아갔다. 아침에 혼자서 축사에서 나와 마당으로 안내되었다가 아기 송아지와 함께 둘이서 귀가를 했다.
내가 가기 사나흘 전 태어났을 강아지 네 마리가 있었다. 한 달이 지난 뒤 제 엄마와 똑 닮은 한 아이만 남고 다들 이곳저곳 분양되어 집을 떠났다. 젖떼기 직전의 어린 강아지들은 이가 나오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젖을 물다 제 엄마를 아프게 해서 화들짝 놀라 일어난 어미개는 바깥을 몇 시간씩 돌아다니다 돌아와서 또다시 웅크리고 누워 새끼들에게 아픈 젖을 물리곤 했다.
오종종 귀엽게 마당을 돌아다니는 강아지들을 쓰다듬어주고 싶어서 눈을 맞추어가며 몸을 숙이면 반갑게 달려와 내 발가락을 핥는 듯 깨물던 아기 강아지들의 여린 이빨은 제법 아팠다.
글래디스는 이 주방에서 하염없이 불을 지피며 하루 세 번 스무 명이 넘는 식구들의 식사 준비를 했다. 고양이가 조는 부뚜막. 밀크티와 우갈리, 케일 볶음, 우갈리를 만들며 틈틈이 내 밥과 계란 볶음을 따로 만들고 짬이 나면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는 그녀에겐 한두 시간의 낮잠이 유일한 휴식이었다. 19개월 딸아이 따샤의 응석을 능숙하게 받아내던 스물네 살의 대학생 엄마는 나를 만난 3주가 지난 8월의 마지막 날, 내일이 개학이라며 나이로비로 떠났다.
글래디스가 맡아주다 떠난 주방의 빈자리는 아주아주 컸다. 나와 동갑내기인 죠슈아의 부인이 만든 음식은 글래디스의 것과 맛이 달랐다. 따샤를 돌보기 위해 도우미로 오게 된 젊은 여성이 만들어주는 음식도 글래디스의 음식맛을 따라가지 못했다.
물과 옥수수가루 단 두 가지 재료로 똑같은 부뚜막에서 똑같은 조리기구들로 만들어지는 우갈리 맛이 그렇게 다를 수도 있었다니... 타고난 손 맛을 가진 주방의 마술사들은 어디에든 그렇게 숨어있었다.
전통 주방 말고 거실과 연결된 부엌에 가스를 사용하는 오븐레인지가 있었다. 성냥으로 불을 붙여야 하는 레인지였는데 글래디스는 40실링(400원) 정도 하는 성냥을 한 번 쓰고 바닥에 그냥 내려놓아서 바닥의 습기에 성냥이 젖어버려 더 이상 쓸 수가 없게 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가스레인지를 쓸 일이 생길 때면 종종 나에게 성냥을 사야 한다며 40실링을 빌려(보로우) 가곤 했다.
아침식사는 주로 식빵과 밀크티 한 잔이었는데 나는 마켓에서 가루 커피를 사다 놓고 따로 물을 끓여서 모닝커피를 함께 마셨다.
마을 산책을 혼자 다니고 식료품을 파는 마켓을 찾은 다음부터는 감자와 호박 등의 야채와 밀가루, 계란, 아보카도 같은 것들을 내 몫으로 구입해서 내 방에 보관해 두고 필요할 때 조금씩 챙겨서 먹었다.
감자와 양파를 썰어서 전을 부치면 따샤와 샤샤가 제법 맛있게 먹어주었다.
샤샤, 나리샤와 함께 마켓에 가서 밀가루와 계란, 마가린으로 보이는 식물성 유지 한통과 설탕을 사 와서 쿠키를 만들기도 했다. 함께 반죽하고 손으로 동그랗게 모양을 내어 프라이팬에 올려서 약하게 굽는 기본 쿠키 만들기 과정을 보여주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인 샤샤는 아주 눈썰미가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로 쿠키 만들기를 하던 날에는 내가 별로 도와줄 것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쿠키를 만들어냈다.
죠슈아와 죠수아의 부인은 처음에 내가 만든 쿠키를 맛있게 맛보다가 두 번째 반죽을 할 때 그 반죽에 들어가는 엄청난 설탕의 양에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더 이상 쿠키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아이들은 프라이팬에서 막 꺼내서 뜨거움이 채 가시지 않은 쿠키를 순식간에 나누어 먹었다.
어느 토요일, 농장 일을 하시던 분이 닭 한 마리를 가져와서 잡기 시작했다.
닭의 머리를 칼로 뚝 잘라내고 깃털 손질을 하는 장면을 나는 내 방 창을 통해서 보고 있었고, 나리샤와 샤샤 두 아이는 아저씨 곁에 딱 붙어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두 아이에게 싹둑 자른 닭의 머리를 건네주었고, 두 여자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닭의 머리를 맨손으로 받아서는 재래식 화장실로 가져가 던져서 버렸다.
잠시 후 죠슈아가 내 방 앞에서 '양~'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문을 여니 그는 의기양양한 눈빛과 목소리로 '우리 오늘 점심은 치킨을 먹을 거야' 하며 씨익 웃었다. 나도 웃어주었다.
한참을 기다려서 나온 건 치킨을 곁들인 우갈리였다.
치킨 한 마리를 스무 명의 식구들이 먹어야 하는데, 내 몫의 접시에는 제법 큰 조각이 올려져 있었다. 윙 정도의 크기....
그들은 그렇게 항상 그들이 가진 것 중 가장 크고 좋은 것을 나에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