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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아트

어렸던 나와 어른이 될 너희들의 한 때

by 미 지


우모자 고아원에서의 랜드아트 수업 시간.


노트북 컴퓨터로 풀, 꽃, 돌, 나뭇가지들을 모아 만든 앤디 골즈워디의 랜드아트 작품을 보여주고 바깥뜰에 나가서 예술작품 만들기를 했다.


사진 찍(히)기 좋아하는 이 아이들은 돌조각, 풀 조각 하나를 마당에 던져놓고 "양! 미~" 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여기저기서 나를 불렀다.





진지하게 작품 활동 중인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벌써 여러 차례 내가 시선을 주는 아이가 있으면 그에게로 우루루 달려가서 작품을 망가뜨리던 아이들에게 '킵 히즈 워킹 플리즈!'하고 말했더니 그 아이들이 모두 순식간에 얌전해져서는 그의 작품 활동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자기가 만드는 작품에 더욱더 몰입하는 아이와 그것을 조용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들.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침묵의 격려를 해 주는 순간이었다.


사진을 찍어주고, 풍선을 나눠주고, 내일 또 오겠다고 말한 뒤 수업을 마치려는데 한 아이가 심각하게 물었다.

"당신 뭐야? 뭐 하는 사람이야? 의사야? 사업가야?"


그 아이는 그저 놀아주러 온 내가 이해가 가지 않았나 보다.


"내가 어떤 사람 같아? 맞춰볼래?"

나는 그렇게 되물으며 웃어주었다.


글쎄... 내가 누굴까? 뭐 하러 여기에 와서 이러고 있는 걸까?




케냐 시골마을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 지역은 빈곤 문제도 심각한 편이 아니었고, 안전 문제도 없는 지역이었다.

재래식 화장실, 물이 안 나와 머리를 감을 수 없는 불편함 같은 것은 나 어릴 때 지내 온 시골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육봉사활동으로 랜드아트를 고른 것은 그 어릴 적의 내 경험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방학 때만 내려가는 할머니 댁에 친구나 장난감이 있을 리 없었다. 시골의 아침은 새벽과 함께 시작되기에 논일, 밭일에서 제외된 도시의 어린아이가 긴 하루를 보내는 건 지루할 법도 할 텐데 난 한 번도 그 시골생활이 지루하게 여겨진 적이 없었다.

마당의 닭과 병아리, 토끼, 염소, 송아지, 개와 고양이를 지켜보는 일.

양지바른 풀밭에 기대어 앉아 해가 지기 전까지 구름이 흘러가는 모양을 보는 일.

풀잎과 꽃들을 엮어 팔찌랑 목걸이랑 만드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 틈에 할머니가 준비해 주신 저녁밥을 먹고 어둑어둑 해 진 하늘을 보며 싸리문을 닫고 잠이 들 때까지 한시도 심심하단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그 흙과 풀과 자갈과 동물들의 흔적에 대한 향수.


오랜 세월이 흘러

동양 어느 나라에서 왔던 한 아줌마와

마당 풀 밭에서 꽃잎, 나뭇잎, 나뭇가지, 자갈, 옥수숫대로 그림 그리며 놀던 기억이

어쩌면, 푸근한 기억으로 남아주기를.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너희를 차갑게 만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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