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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Jul 09. 2021

엄마의 이름

제법 오래 전부터 엄마는 차츰차츰 기억을 놓으셨다.

좋은 기억, 행복했던 기억들부터 하나 둘 놓으시면서 밭일을 제대로 못한다며, 돈을 제대로 벌어오지 못한다며 야단을 치시고 섭섭한 것들은 오래 전 것부터 바로 직전의 일까지 낱낱이 기억해 말하고 또 말하는 일이 멈추질 않아 안그래도 화급한 불같은 성격의 아버지와는 한 집에 살 수 없게 된지도 오래.

언니 집은 답답해서, 우리 집은 둘째사위가 어려워서 못계신다 하시고

외동아들 집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를 어찌나 안달가워하시는지 우리가 함께 사는 일을 말려야 할 지경이었다.

엄마가 그토록 원하시는 시골 작은 집에 텃밭 일구며 동네 친구분들과 재미나게 지내시는 일이 제일 좋은 선택이었다고, 봄이 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한학기에 한두번 내려가 뵙는 일이 전부였던 나는 퇴직을 하고 이제 제법 시간을 자유롭게 낼 수 있어졌기에 이제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엄마에게 내려가서 살펴드리겠다고 했다.

평일에 엄마를 모시고 핸드폰을 새로 사러 다니는 일, 보건소 진료를 다니는 일, 재난지원금 수령을 위해 공공기관에 다니는 일, 병원 진료를 받으러 다니는 일을 하면서 기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엄마 일상 속에 커다란 구멍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커져가는 구멍이 아니라, 우리 남매가 각자의 직장일과 집안일에 바빠 엄마에게 전화 걸 시간 내기도 빠듯했을 시간들 속에 떡~하고 뚫려있는 구멍.


눈이 온 아침 집 앞 뜨락의 눈을 치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도대체 엄마는 이런 날 어떻게 눈을 치웠을까?

다리 아프고 허리 아파서 지팡이가 없으면 걷는 일도 힘든 분이시기에 넌지시 물으면

근처에 사시는 외삼촌, 마을 이장님, 옆집 아줌마, 누군지 모르는 사람 등이 등장했다.


옆집 아줌마가 엄마 치매가 너무 심하다고 자식들한테 연락을 하겠다고 하면 펄펄 뛰시며 못하게 하셨다는 말을 듣기는 했었다. 읍사무소에서 나왔다는 젊은 사람 두 명이 자식들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했는데 안가르쳐주셨다기에, 이제 내가 평일에는 언제든 내려올 수 있으니 전화번호를 알려주라고 말했더니

'나 병원보낼라 그러지? 싫다!' 하시며 말도 못꺼내게 하셨다.


엄마와 보건소에 다녀온 날 오후, 올케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병원에 검진하러 가야 하니 아침에 식사를 하지 마시라는 연락이었다. 엄마에게 설명을 하고 종이에 커다란 글씨로 '아침 금식! 00엄마랑 병원 진료 가야함' 이라고 써서 TV 모니터 앞에 붙여두고 돌아와서 다음날 아침 일찍 전화로 '엄마, 오늘 병원가야한다고 금식하라 했는데 잘 지키고 계시지요?' 하고 물었더니 잘 지키고 있다고 답을 하셨다. 곧 올케가 올거라고 말하고 인사차 '지금 뭐하고 계셔요?' 하고 물었더니 '나? 지금 배고파서 밥먹고 있어' 하고 대답을 하실 때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금식'이 어려운 말이었나? 그랬을지도 몰라..


동생댁이 약 달력을 만들어 하루에 한 봉씩만 꺼내 먹을 수 있게 만들어두었는데, 가서 볼때마다 약 달력의 날짜가 맞지 않았다. 핸드폰에 적힌 날짜와 달력 날짜를 맞춰보는 법을 설명하는데 도무지 모르겠다 하셨다.

보건소에서 타 온 3개월분의 혈압약과 치매예방약의 날짜를 계산해보니, 분명 하루 두 번 이상 드시는 날도 있었다.

요양보호사의 방문 요양 신청을 하겠다 했더니 낯선 사람이 집에 드나드는 게 싫으시다고 하셨다.

옆집 아줌마가 돌보러 드나드는데, 가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 아줌마가 물건을 가져갔다, 돈을 가져갔다 하시는 날이 많았다. 엄마의 물건이나 돈을 가져가는 사람 중에는 나도 있었다. 동생이 처음 몇 번은 옆집 아줌마가 정말 그런가? 생각하다가 내가 무슨 물건인가를 가져갔다는 말을 하셨을 때,  옆집 아줌마를 공연히 오해 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고, 우린 그 분께 너무나 미안했다..


어지럼증이 심하고 토하고 계신다는 전화를 받고 내려가서 응급실 진료를 받던 날, 나는 엄마에게 병원 입원을 권했다.

'엄마 혼자서는 이제 여기 시골에서 살지 못하실 것 같아. 혈압약을 하루에 두번 이상 드시는 날도 있는데, 그렇게 약을 드시면 오늘처럼 아파요. 밭일 하다가 진드기에 물려서 몸도 가렵다고 하시고, 덥고 자는 이불 밑에서도 진드기가 나오잖아. 진드기한테 물려서 이럴 수 도 있대. 엄마 3남매 두셨는데 어느 집에 들어가 사셔도  못견뎌하시니 동생이 엄마 편하라고 시골에 집을 사 드렸는데, 동네 사람들한테도 자꾸 물건 가져갔다고 하시는 바람에 이제 집에 드나드는 사람도 없고, 엄마는 아들이 내려와서 마당 일 하는 거 힘들다고 동네 이장님이랑 외삼촌한테 부탁해서 눈도 치워주고 풀도 베어주고 하시는데, 동네사람들이 보기엔 자식들이 엄마를 혼자 버려둔 걸로 보일 것 같아. 엄마, 한동안 병원에 좀 다녀오시자 응?'


평상시에는 말도 못꺼내게 하던 병원 입원이었지만 당신 생각에도 어쩔 수 없는 날이 왔다는 생각이셨는지 그럼 꼭 한달만 다녀오겠다 허락을 하셨다.

가족회의를 거쳐 그 중 평이 좋다는 병원을 골라 입원을 추진하는 동안, 동생네는 아침에는 '니들 왜 나를 병원에 처박아두려 하느냐' 야단치는 전화를, 저녁에는 '내가 무슨 힘있냐, 자식들 하라는대로 해야지'하는 전화를 매일 받았다고 했다.

코로나 예방 접종을 하고, 입원 의뢰를 위한 병원 검진을 하고, 코로나 검사를 하고, 키우던 개 두마리 거처를 옆집에 부탁하고.. 제법 긴 시간 준비를 거쳐 드디어 병원에 입원하신 후 일주일이 지났다.


비가 많이 오던 날, 당신이 심어 놓은 약초가 다 떠내려간다며 나에게 내려가 보라고 전화를 두통 하셨다.

집에 내려가서 밭과 강아지를 확인하고 아무 일 없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날 옆집 아줌마에게도 수없이 전화를 하셨고, 언니에게는 동생과 내가 그 답답한 곳에 당신을 가둬두었으니 니가 얼른 와서 나를 데리고 나가라고 여러번 전화를 하셨고, 동생댁에게도 두시간 간격으로 전화를 걸어서 답답하니 집에 갈 거다 호통을 치고 계시는 중이라고 했다.


한달에 두번 허락된 대면면회를 준비하면서 어제 엄마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는가 물었더니

'답답한 거야 말할 것도 없지만, 여기 사람들이 너무 잘 해줘. 밥도 잘 먹고 있다. 몸에 가려움증이 생겼으니 속옷하고 면티를 좀 사와라'하고 차분하게 말씀을 하셨다.


속옷과 양말, 면티셔츠와 수건을 열개씩 사 와서 세탁기에 돌려 말리고, 붙어있는 라벨 위에 네임펜으로 이름을 쓰고, 간혹 이름을 쓸 수 없는 부분에는 색실로 이름을 수놓기 하면서 엄마 면회를 준비하고 있다.


네임펜으로 는, 서른 번이 넘는 엄마의 이름.


어린 시절 고추장 비빔밥을 맛있게 만들어주던 엄마.

아이스크림 행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남은 콘에 아이스크림을 듬뿍 담아 활짝 웃는 얼굴로 우리에게 전해주던 엄마.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주던 엄마.

대학생 딸 책값을 빌리러 이웃집에 다녀오던 엄마.

술 취한 아버지 고함에 주눅들지 않고 받아치다 쓰러지던 엄마.

뽕짝 노래가 너무 좋다면서 볼펜 한자루와 종이 한장을 주며 노래 가사를 적어달라 부탁하던 엄마.

날이갈수록 머리가 하얗게 새어져가던 엄마.

허리가 점점 굽어가던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의 이름을 쓰고 또 쓰고 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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