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D-3
지난 주말 스카에서 돌아온 딸아이에게 저녁으로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물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시험에 보양식이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서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닭고기도 좋고 소고기도 좋고 먹고 싶은 걸 이야기하면 해주고 사 먹고 싶은 게 있음 나가보자고 하려던 참이었는데 아이의 대답은 의외다.
고민도 없이 아이의 입에서 나온 메뉴는 할머니 잔치국수
잔치국수였다.
잔치국수? 다시 한번 물었다.
그렇단다.
할머니의 잔치국수가 당긴다는 말에 너의 할머니 그러니까 나의 엄마의 레시피를 되뇌어봤다.
삶아서 차가운 물에 헹궈 탄력이 느껴지는 적당한 국수의 질감과 그리고 고명으로 올려지는 재료의 단맛이 느껴지는 담백한 호박볶음까지
멸치로 우려낸 맑은 육수도 한몫하는 그 담백한 잔치국수
고기를 먹고 국수를 시켜달라도 아니고 너무 간소한대? 하며
친정엄마에게 전화해서 레시피를 물어봐서 해주려는 찰나 머릿속에서 아이가 먹고 싶은 게 잔치국수가 맞나 싶었다.
아이는 어렸을 때 할머니손에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개월 차이로 둘째가 태어나서 아가가 동생을 봤으니 엄마, 그러니까 나는 너무 바빴다.
아이의 우주이자 아이의 친구는 그 당시 할머니였다.
동네의 놀이터라는 놀이터는 모두 할머니가 앞장서서 손 붙잡고 다녔다. 매일이 새롭고 신기한 아이에게 엄마랑 함께 하는 세상은 너무 작았고 작았다.
다 자라서 그러니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서도 아이에게 할머니는 무형이자 유형의 세상이다.
먹고 싶은걸 속시원히 내놓는 것도 할머니였고 목마르고 배고픈 마음의 허기를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채워주는 것도 할머니였다.
이제 나도 요리라는 걸 좀 할 줄 알아서 아이가 먹고 싶다는 것도 척척은 아니어도 레시피를 더듬더듬 찾아서 해줄 줄도 알게 되었고 어느 건 우리 엄마보다 더 나은 그런 요즘 음식도 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던 거다. 아이에게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그런데 잔치국수는 정말 생각 못했던 메뉴였다.
엄마에게
그리고
마지막 주말, 못다 한 공부를 뒤로 두고 아이에게 할머니집에 가서 직접 잔치국수를 먹자고 했다.
시간이 없다고 할만했지만 아이는 가겠다고 했다.
가서 먹고 싶다고..
맞다 아이가 먹고 싶은 건 그냥 국수가 아니었던 게 맞았나 보다.
어서 오라고 당장 오라며 그까짓 거 못해주냐며 반갑게 맞아주는 전화 그리고 넉넉한 할머니의 품
아이는 일생일대 가장 두근거리는 날을 앞두고 파이팅이나 잘할 거야라는 그런 다부진 말보다는 그런 위로가 필요했던 거 같다.
나의 친정엄마를 보며
저렇게 넉넉한 어른으로 늙어가려면 난 얼마나 깊어져야 하는지.. 파이팅 넘치는 과한 말들만 가득 쏟아내던 내가 부끄러웠다.
아이가 수능을 앞두고 일부로 손꼽아 먹은 음식은 할머니의 잔치국수
너의 앞길이 잔치가 열리는 것처럼 흥겹고 기대되는 꽃길이기를 19살... 잔치는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니 염려 말라고
오늘은 수능 D-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