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돌려본 영상을 꼽으라면 「멜로가 체질」에서 은정과 상수가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들고 싶다. 좋게 말해 '이야기'지 서로 쌍욕을 주고받는 난장판이다.
잘 나가는 CF 감독 상수는 사람들에게 반말로 상처주기 일쑤여서 '야감독'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배우 소민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은정은 촬영감독 병삼과 CF촬영장을 찾는다. 촬영 도중 상수는 병삼을 보고 개새끼가 왜 남의 촬영장에 카메라를 들이대냐며 쌍욕을 퍼붓는다. 그 장면을 보던 은정은 한 번은 참고 두 번은 못 참아 말한다. "적당히 해라" 그리고 얻다 대고 남의 귀한 자식을 개로 만드냐며, 개가 아니라 귀한 사람이라며 상수를 무지막지하게 혼내고, 결국 K.O. 시킨다.
난 이 장면에서 "귀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덜컥하고 멎는 느낌이 든다. "귀한 사람"이라는 단어는 매번 생경하다. 권위자의 말은 틀려도 맞는 것으로 당연시해온 세월이 길어서일까. 아니면 사람의 존귀 여부는 모르겠고 이해관계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타산적인 성격이 돼서일까. 난 이제 사람은 귀하다는 말이 낯설어져 버렸다.
남들만이 아니라 나 스스로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으니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체력과 감정을 아끼지 않고 소진해온 탓에, 병에 걸려 입원이라도 해야 한 숨 돌리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정말 병원에 입원한 지금은 금식 전 맛있는 걸 먹어두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비틀즈를 냠냠 먹고 있다. 어릴 적 큰삼촌은 비틀즈를 너무 많이 먹으면 비틀즈 포장지에 그려진 초록괴물처럼 변한다며 누나와 날 겁주곤 했다. 조카들에게 똑같이 겁을 주면 그 말을 믿을까? 퇴원하고 해 봐야겠다.
수술이 인생의 대단한 전환점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퇴원 후에도 난 기존과 같은 속도로 빡세게 살아갈 거고, 더 빠르지 못한 것에 미안해할 거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이전보다 훨씬 마음 편하리란 확신이 든다. 나는 나를 귀하게 여기지 못했지만, 대신 나의 아내가 나를 귀하게 여겨줬고, 나는 은정처럼 모든 타인을 귀하게 대해진 못했지만,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듣는 순간 충격을 느끼는 대신 소식을 듣고 충격받을 아내의 얼굴만 떠올라 괴로웠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서로를 귀하게 여긴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
그러니 수술 후에 누구보다 빠르게 회복할 계획이다. 원래 진했던 목주름이 조금 더 진해지는 건 아무 문제 없다. 규칙적으로 사는 건 내 주특기니 매일 아침 약을 먹는 것도 별거 아니다. 다만, 다신 병원에 오는 일이 없도록 치열하게 건강을 챙기려 한다. 아 비틀즈 다 먹었다.
이제 목을 빡빡 씻고 이쁘게 절개해주기만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