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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도 May 08. 2023

"미안합니다. 그저 그런 동네 관장인 줄 알았어요"

사람 쉽게 판단하지 말자 

"아휴 회원님, 후회해요. 그때 같이 운동하던 걔들은 지금 다 네임드에 잘 나가는데... 

나는 하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그가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태산 같이 커 보이고 초인처럼 느껴지던 그 관장님이 그냥 동네의 오래된 격투기 도장을 힘겹게 운영하는 아저씨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저씨가 다시 초인처럼 느껴지고 거인처럼 커 보이는 데에는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 이야기를 위해 스무 살 무렵을 회상해야 한다. 나는 수능이 끝난 뒤에 내가 꽤 살이 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전까지는 딱히 찔 것도, 빠질 것도 없이 일정 수준의 몸무게를 유지했으니 딱히 알 일이 없었다. 


수능을 준비하는 고3 시절 동안 내 상상 이상으로 살은 빠르게, 많이 쪄있었고 수능이 끝난 뒤에 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합기도 체육관을 다니면서 감량했다.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또래들이 많이 다니던 도장이었기에 상상 이상의 강도로 운동했고 덕분에 금세 감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 오랜만에 접한 도장에서 나름의 흥미를 느꼈고 잦은 약속과 술자리로 몸이 무거워졌다고 느껴질 때마다 체육관을 등록했다. 


뭔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 옛날 복싱 체육관은 이렇게 생겨야 한다'는 문장을 그대로 표현한 듯한 몇십 년 된 권투 체육관의 매력에 빠져 계단을 오르고 나무 마룻바닥 위를 뛰며 1년 반 정도를 내 인생에 이런 적이 있었나 싶게 성실하게 살아보기도 했다. 


다큐3일에 나왔던 대전 한밭복싱체육관 

그러다가 군대 가기 몇 달 전에 그 체육관을 마주했다. 집에서 가까운 역 근처 3층에 있던 합기도 도장이었다. 동네 체육관치고 제법 많은 성인이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뭔가 열정 넘쳐 보이는 이미지가 좋았다. 


육군이라는 것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보직을 받을지, 2년 동안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는 점이 무척 두려웠다. 그래서 매일매일 술 마시기에 바빴지만, 10시 조금 넘은 시간에 성인반을 운영하는 그곳에 친한 형과 함께 시간을 쪼개 다니면서 두려움을 극복했다. 

지금처럼 종합격투기, MMA, 주짓수 체육관을 곳곳에서 찾기 쉬운 시절도 아니었고 한국 최초의 종합격투기 단체가 설립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때였다. 

한국에 종합격투기라는 것이 태동하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다른 도장 관장님들과 모임을 운영하며 UFC, 프라이드 초창기 영상을 보고 기술을 공부하고 훈련하며 연대 농구장에서 주짓수를 배우던 경험을 살린 관장님의 수업은 그래서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매일 다른 기술을 배운 뒤 요일별로 다른 스타일의  스파링을 진행했다. 월요일은 종합격투기 룰로, 화요일은 복싱룰로, 수요일은 킥복싱룰로, 목요일은 게임 느낌으로 가볍게 이런 방식으로 수업이 이뤄졌기에 동네의 오래된 합기도 체육관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성인들이 신나게 수련했다. 

그렇게 군대 가기 전까지 몇 달 동안 수업을 즐겼고 이때 쌓인 경험과 자신감이 이후의 삶에도 꽤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그래서 전역 후에도 다른 것에 몰두하느라 정작 체육관에서 운동은 못 하더라도 한 번씩은 체육관에 들러 관장님과 사는 이야기를 나눴고 그 시간이 소중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였을까, 체육관에는 성인들이 보이지 않았고 체육관도 뭔가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무렵부터 동네와 다니던 대학 근처에도 종합격투기, 주짓수, MMA 체육관들이 들어섰고 도장의 위기는 더 심화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즈음에 체육관을 찾아가서 관장님의 후회를 들었다. 


2000년대 초반 또는 내가 체육관을 다니던 때부터 진득하게 주짓수와 MMA를 수련했던 동료들은 주짓수 블랙벨트나 종합격투기 선수 또는 지도자로 성장했는데 본인은 그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약간 경험해 보는 식으로 종합격투기를 접했다가 거기서 멈춰서 동네 체육관 관장으로 머물고 있다는 한이 담긴 소리였다. 


그때부터 나도 결혼, 취업, 육아 등의 이슈로 바빠졌고 본가에서 멀리 이사를 가면서 한 번씩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는 것도 쉽지 않아 졌고 아예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내가 급격하게 살이 찌자 그 체육관이 다시 떠올랐다. 


깜짝 놀랐다. 관장님은 40대 중반의 나이로 5~6년 전부터 주짓수를 다시 체계적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낮에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합기도 수업을 하면서 저녁에는 복싱 클래스까지 제대로 운영하면서 동네에 잘 나가는 격투기 체육관으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사실 어떤 종목이건 간에 어릴 때부터 배웠고 그것으로 체육관을 차려서 20년 정도 본인의 체육관이라는 사업체를 운영했던 사람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종목을 바꿔서 다시 체육관을 운영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어려운 일을 지금은 50대인 그 관장님은 아주 완벽하게 제대로 해내고 있다. 


나는 그 모습에 반해 작년 말부터 그 체육관을 다시 다니고 있고 심야에 주짓수 스파링 또는 복싱 스파링으로 호되게 가르침을 얻으며 고맙게 다니고 있다. 


그가 지금은 다시 거인처럼, 태산처럼 보인다. 


그가 중년에 보여준 도전과 성공이 내 삶에 큰 자극제가 되었다. 


미안합니다. 그저 그런 동네 관장이 되었다고 실망한 거... 그리고 어릴 때 주제넘게 동네 관장으로 체육관을 운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몰랐던 점도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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