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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지동 주민센터

시원하고 섭섭하지 않기

by 이세미

원지동에서 복귀한 사무실에서도 인사를 온 발령자들이 보인다. 총 인원 20명 미만의 동사무소와 구청 사무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넓고 낡은 커다란 공간에 각 팀의 안내 푯말이 천장 위에 매달려 있다. 청소지원팀, 청소민원팀, 환경관리팀, 위생민원팀, 위생지도팀. 어느 팀도 만만치 않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청소위생과는 절대 안 돼!!! 가 한결같은 당주시 직원들의 반응이다. 공무원들을 제일 힘들게 하는 건 민원인데 그 싫은 민원과 청소가 결합된 청소민원팀은 그야말로 극강의 난이도로 평판이 자자하다. 그 팀에 포함된 현장기동대는 민원이 들어오는 곳에 가서 청소를 해 주는 업무를 맡고 있다. 내 집 앞에 혹은 마을 공유지에 누군가 자꾸 쓰레기를 버린다는 게 민원의 주된 취지이다. 때론 그게 동물의 사체이기도 하고 때론 사후 처리가 덜 된 교통사고 현장이기도 하다.


그것만도 벅찬데 이번 연도에는 더한 게 얹혔다. 그 이전까지는 음식물, 일반, 재활용 등 성상별로 업체를 지정해서 쓰레기를 치우던 당주시는 지난 연도 구역별 업체 지정으로 수거 방식의 큰 틀을 바꿨다. 그때의 혼란은 한 달 반 동안 쏟아지는 민원이 팀을 넘어 과 전체를 혼수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북새통을 겪은 지 일 년 만에 업체 재지정을 한다는 결정이 났다. 성상별 수거의 경우 약간 판별이 애매한 쓰레기를 어느 업체가 그 책임을 떠안느냐의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지난 연도의 경우 그럴만한 명분은 충분했지만 제대로 된 준비가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업체 간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쓰레기가 방치됐고 골목길을 미처 파악하지 못해서 여러 날 쓰레기 수거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7월 무더위 한복판이다 보니 음식물 쓰레기가 제일 문제였다.


지난해의 악몽이 재현되는가 아니면 전년도의 경험으로 이번엔 제대로 준비했을까. 지연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지나간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올바른 결정이 내려진다면 행정이 오늘날 이처럼 굼뜨거나 비효율적 일리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결정권자들은 지난 연도의 그 아수라장에는 발끝 하나 담가본 적 없는 이들이다. 현장 담당자가 느끼는 걸 그들이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역시나 민간 업쳬에게 넘어간 몇몇 동은 작년과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그러나 직영으로 관리하기로 한 다른 동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시 소속 직영 청소 담당자들이 업무를 거부한 것이다. "당신들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는 거야?" "너희 세금 받아 처먹으면서 왜 일을 안 해!!!" "내가 음식물 쓰레기통 가지고 가서 너희들 사무실에 엎어볼까!!!" 다양한 원성과 협박의 소리가 전화로 방문으로 아수라장을 이룬다. 아무 생각 없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들을 이 창구 앞에 앉혀 놓고 싶다. 이 분노한 이들을 그들의 사무실로 안내하고 싶다. 서무를 담당하는 지연은 이런 민원 전화를 직접 대응하는 업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옥체험 그 자체였다. 그 고통으로 사그라들 것만 같은 직원들 옆에화가 치밀어 오른 민원인들 앞에서 숨쉬기도 어려운 나날이었다. 다들 하나의 마무리를 할 때는 시원섭섭하다고 말하지만 지연은 섭섭하다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가 않았다.


"주사님은 드디어 탈출하시네요." "어휴 어떡해요. 주사님. 이번에 주사님도 갔어야 했는데." 구청 중에서도 이 극한의 과로 신규 발령 난 서진이는 아직도 학생티가 나는 앳된 모습을 하고 있다. 지원의 옆자리에서 하필이면 음식물 쓰레기 담당을 맡게 되어 6개월간 갖은 고생을 다했지만 이번에 인사발령 난 곳은 같은 과 내 대형폐기물 담당 자리였다. 여리고 어린 서진이는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이렇게 힘든 과인 걸 모두가 알 텐데 적어도 6개월마다 순환이라도 시켜줘야 하는 건 아닌지. "이번에 인사과에 메일 쓴 거 아니었어요?" "쓰면 뭐해요. 어차피 들어주지도 않는데." "저 이번에 휴직할 거예요. 이렇게는 도저히 못해요." "나도 휴직 내려고요." "안 받아주면 난 퇴사할 거야." 너도나도 남겨진 사람들의 울분이 쏟아진다.


"어려운 때 이렇게 오게 돼서 힘들겠지만 이런 것도 다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발령받고 인사드리러 온 사람들에게 덕담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말을 던지는 거겠지만 받는 쪽은 공포 그 자체이다. "지금 잠시 교체기라 그런 거고 조금 지나면 크게 힘들 일은 없어요." 누구도 믿지 못할 이런 거짓말을 과장님은 태연한 얼굴을 하고 날려대고 있다. "과가 힘들다 보니 직원들 간에 아무래도 더 끈끈한 정이 있지." 이런 정신 승리가 없다.


"한 번 이 사이클에 들어서면 윤회의 시작이에요. 저는 청소지원과로 발령 났잖아요." "한번 줄을 잘 서야지. 행지과 가는 얘들은 계속해서 총무과에 자치과로 들어가고." "구에서 제일 기피하는 과에서 이렇게 지긋지긋했는데, 시로 올리면서 청소지원과를 보낸다는 건 정말 양심 없는 거지." "그러니까 한번 줄 잘 서면 그 인맥으로 계속 편한 자리만 가고." "근데 그 편한 자리가 승진도 잘되고." 그 말들이 모두 사실인

건 아니지만 허탈한 직원들이 푸념을 계속하고 있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이 과에 발령받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직원들을 짓누르고 있다. 이 조직에서 버려진 듯한 당혹감, 이 조직에서 중요하지 않은 위치라는 모멸감, 앞으로 이 조직은 나를 챙겨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


인수인계를 위해서 그간의 업무들을 정리해 놓아야 한다. 지난해에 쓰레기 수거 차량 구매 등 굵직굵직한 일들이 마무리 됐기 때문에 후임자의 일이 수월해질 것이다. 초과 근무와 출장 여비 그리고 기간제 임금 지급도 모두 완료된 상태여서 지금이 그래도 인수인계하기 나름 괜찮은 시점이다. 그럼에도 서무자리이다 보니 자질구레한 일이 많다. 경력자라면 무리 없이 금방 익숙해지겠지만 신규자이기라도 한다면 인수인계가 밑도 끝도 없을 것이다. 제발 신규가 아니길. 구로3동에서 올라온 행정 8급이 가장 적합할 거 같긴 한데 어차피 과장님과 팀장님이 결정하실 일이다. 일주일 전에 발령 나서 오신 과장님은 사실 부서원들을 아실 리 없고 반년 내내 함께 한 팀장님도 어차피 부서원들에게 별 관심이 없다. 난리 치는 민원 한번 막아준 적 없고 억울하게 욕먹고 멘붕 온 직원 한번 다독여 준 적 없었다. 성품도 성품이지만 그 자리가 또 누구 챙길 여유가 없기도 했다. 원래부터 당수치가 높았던 팀장님은 이 과에 발령받고는 빼박 당뇨와 고혈압 판정을 받고 약을 드시기 시작했다. 그래서 직원들은 어떠한 바람막이도 없이 윗선의 막돼먹은 결정과 민원인들의 쌍욕 속에서 걷을 때를 한참 지난 빨래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원지동 세무 담당 주사님에게서 메신저가 왔다. 세무 담당으로 배정되었으니 인수인계를 하러 내일 오전 중에 와야 한다고 한다. 본인은 세무과로 발령 나서 오후에 떠나면 다시 동에 오지 않을 거라 인수인계가 어렵다고 한다. 인수인계 시간 맞추기가 좀 애매한 일이긴 한데 좀 독단적인 말투이다.


지연 후임으로는 예상대로 구로3동의 8급 신주아 주사님이 배정되었다. 지연이 원지동으로 가지 전에 아침 일찍 와도 좋겠지만 동 민원창구는 주로 오전이 바쁘기 때문에 오늘 퇴근 후에 인수인계를 하기로 했다. 너무 늦지 않게 6시 반쯤 신주아 주사님이 도착했다. "피곤하시겠어요. 주사님" "아니에요. 주사님도 피곤하실 텐데 더 일찍 못 와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식사도 아직 못하신 거 아니에요?" "간단히 먹고 와서 괜찮아요. 주사님 저녁식사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도 간단히 먹었어요. 전에 서무는 해 보셨어요?" "네, 전에 맑은 물 사업소에서 잠깐 했었어요." "그럼 뭐 인수인계 할 거는 없겠네요." "아니에요. 다 까먹었어요. 그리고 그때는 국서무가 예산까지 하고 있어서 저는 일반 서무만 했었어요. 이 자리는 예산도 함께죠?" "네, 그럼 예산만 잠깐 보면 되겠네요." 차분하고 영민해 보이는 인상의 주사님은 일도 똑 부러지게 하실 거 같아 안심이 된다. 일 년 내내 지긋지긋해서 뒤도 돌아보고 싶지 않던 이 부서에서 예상도 못한 훈훈한 마무리가 전개되고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했던가. 그건 아닌 거 같다. 끝에 잠깐 찾아온 이 행운이 일 년의 악몽을 지우진 못할 거 같다.


발령일이 하루 지났기 때문에 권한이 모두 빠져 전산작업을 할 수 없다. 캐비닛의 파일들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자리 정리를 한다. 전기장판부터 카디건, 머그잔, 파스텔 톤 형광펜, 슬리퍼까지 개인용품들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깜박한 내 물건을 가지러 한번 떠난 사무실을 다시 들르는 건 어색한 일이다. 게다가 이 부서는 다시는 발도 디디고 싶지 않은 곳이다.


구에서는 오후 2시경 출발 예정이었는데 원지동에서는 2시 전에 도착해야 한다고 한다. 그 이유가 이해하기 어려운 게 오후 2시에 통장회의를 하기 때문에 와서 통장님들께 인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전에도 동에 있었지만 이런 일은 없었기 때문에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인수인계를 받으러 9시 반경 사무실을 나섰다. 원지동의 발령자들은 11시 정도에 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역시 오후에는 통장회의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무 경험이 있다는 말에 담당자는 반색을 하고 인수인계는 기타의 업무에 집중했다. 다들 권한이 빠져서 전산으로 업무처리를 보여 줄 수가 없다. 무엇보다 권한을 받는 게 제일 시급하다. 전임자의 권한은 빠지고 후임자의 권한은 아직 승인 나지 않아서 민원업무를 볼 수 없다. 업무 처리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취지는 절대 공감하지만 업무처리의 공백이 생기는 보완책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행자동에서는 세무가 주민전산도 겸하고 있었는데 원지동은 세무 자리에서 복지 업무와 겹치는 업무를 겸하고 있다. 해 본 일도 있고 처음인 것도 있는 이런 경우가 가장 최선인 것 같다. 많이 헤매지 않으면서 또 다른 것도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11시가 되기 전에 원지동에서 발령자들이 동장님, 행정민원팀장님, 복지팀장님 그리고 다른 전송자들과 함께 출발했다. 원지동에서는 이번에 총 4명의 발령자가 있다. 점심시간을 고려하면 너무 빠듯하다 생각했지만 이번 발령자 4명이 모두 동구청으로 발령이 나서 이 스켸줄이 가능했던 것이다. 모두 함께 이동하면서 차례차례 발령자의 발령지에 일행이 함께 들어서고 과장님들끼리 인사를 나누고는 발령자를 새 부서에 넘겨주는 일을 한다. 여러 곳으로 발령지가 흩어져 있으면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동 창구를 비우기도 애매하기만 대직자에게 모두 몰아 놓고 지연도 다시 구청으로 복귀해야 했다. 사실 발령받은 누구라고 인사하러 들르고 인수인계받으러 들르지만 전 소속과의 과장님이 인계하기 전까지는 나 혼자 타 부서로 옮겨 갈 수 없다. 이게 무엇으로 비롯된 전통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사람을 굉장히 상급자의 소유인 듯 여기는 것 같아 지연은 처음부터 퍽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거의 편도 40분 걸리는 거리를 왔다 갔다 다시 와야 하는 것이다. 2시에 출발 예정이었던 청위과는 원지동의 요청으로 1시쯤 출발했다. 동선 상 행자동, 복자동, 수로 2동 등 타 발령자들을 먼저 내려주고 원지동을 제일 끝에 오려했는데 그 2시 통장회의에 맞추느라 원지동을 제 일 도착지로 동선을 변경했다. 이런 수선이 본인 발령지에 의한 것이라는 게 지원은 좀 부끄러웠지만 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동장님." "안녕하세요. 과장님. 전에 녹지과에 계실 때 한번 뵀었죠." "아, 그럼요. 기억하죠. 그때 김선하 과장님 하고 계셨잖아요." "네, 지금 건축과에 계세요. 저번 인사 때 한번 뵀었어요." "원지동은 저번 인사 때 오신 거죠? 여긴 농지가 넓어서 농수로가 골치 아플 텐데. 건축과에서 주로 내려오지 않았어요?" "계속 건축과에서 내려왔었는데 저번 인사 때 제가 오게 됐어요." "다음 인사 때 움직이시겠네요." "그걸 인사를 알 수가 있어야죠. 과장님은 이번에 가신 거죠? 지금 한창 난린데 애쓰시겠어요." "그러니까 청소팀에서 세를 불리려고 직영으로 들어오겠다고 직원만 더 고용하게 하고 지금 와서 못하겠다고 하는 거니까" "계약 때문에 지금 민간으로 전환할 수도 없잖아요." "이도 저도 못하게 됐지." "금자동 일대도 직영으로 들어갔다면서요." "거기가 핵심이죠. 식당가가 밀집해 있으니까 시에서도 처음엔 넘기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기들이 맡겠다고 나서더니" "앞으로 협상에서 시가 을이 되겠네요"


공직이라는 게 30년 근무한 사람은 차고 넘치게 많을 만큼 평생 가는 직장이고 계속 순환을 하다 보니 모두가 아는 사이가 되어 버리는 곳이다. 그것이 오해든 사실이든 한번 찍힌 낙인은 이 사람 저 사람 입에서 입으로 옮겨져 평생의 꼬리표가 되는 곳이다. 마흔도 늦은데 쉰이 다 돼 가는 나이에 들어온 지연은 그들에게 스쳐가는 일 인일뿐 그들 중 하나일 수는 없는 처지이다. "강지연 주사님은 민원인 때문에 울기도 하고 고생을 많이 했지." 아무리 일주일 전에 발령받았다고 해도 어떻게 배웅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하는 건지. 사무실에 많은 직원들이 겪는 일이다 보니 이 사람 저 사람 상관없어 모두를 일괄적으로 기억하기로 했는가 보다. 본인 편리하게 모두가 미란다가 되어야 하는 거처럼. 하나하나 개인에 일말의 관심도 쏟을 노력조차 할 마음이 없는 거라면 입이라도 다물고 있는 게 예의가 아닐까. "저요? 저 아닌 거 같은데요. 전 운 적 없어요." 울면 어떻고 안 울었으면 그게 또 뭐가 대수일까. 어차피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은 지연이 아니고 지연의 눈물 따위는 그 누구의 관심사도 아니다. 그걸 아는 지연이지만 턱도 없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과장님의 무신경함에 짜증이 났다. 역시 오늘도 지원은 지원을 해버리며 원지동에서의 첫인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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