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생각

모든 인간은 잘못이 없다

by JHS

직장 생활을 하는 지인이 얼마 전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한 일이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인데, 기존 직원이 상사에게 자신에 대해 잘못 이야기해서 나쁜 이미지가 박힌 것 같아 억울하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렇게 이십 분 가량 열변을 토했고, 나는 전말을 알지 못하는 일을 접할 때 항상 그렇듯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로 듣고만 있었다. 더구나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무어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다만 그 지인과 헤어진 후로 혼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편이라, 이전부터 이따금 그 까닭을 궁금해하는 질문을 받곤 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성격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인간관계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잘못은 무지에서 비롯되며, 이는 귀책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형법에서 고의(故意)는 범죄 성립의 핵심 요건이다. 고의란 자신의 행위가 범법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의욕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무지, 즉 사실의 착오나 법률에 대한 착오로 인해 그 인식이 결여된 경우에는 고의가 부정된다. 이는 인간의 악한 행위까지도 인지의 결핍이나 가치판단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형법적으로 완전한 책임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형법 이야기를 꺼낸 것은 고의에 대한 이 법적 해석이 단지 형법의 테두리 안에서 뿐 아니라 인간 행위 전반에 걸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감정이나 상태를 헤아리지 못하고 행동한다. 이는 단순히 그 사람이 가진 악의적인 의도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악행의 의도가 없다고 본다. 악행은 이를 행하는 주체가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 대한 인지가 없기 때문에, 즉 무지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나는 살인범이 그 피해자와 주변인들의 고통을 헤아릴 지각이 있다면 세상에 살인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비속성' 개념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때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거의 언제나 터무니없이 무지하다.


언행마다 인종차별을 일삼는 이는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자신한다.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성차별을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이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어떤 행동이 성차별적이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아마 자기가 꽤나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곁에 두고 싶은 유형의 사람은 아니지만 똑똑한 사람이다. 그런 똑똑한 사람도 자신의 잘못을 이해하지 못한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 그것이 잘못임이 명약관화할 때에도 말이다. 이는 흔히 IQ라고 표현하는 지능이 무지의 반의어는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를 현명함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현명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따라서, 그동안 자각하지 못한 채로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을지 헤아리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남이 나에게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한들, 그것에 대해 분노하거나 성낼 이유는 없다고 본다. 나 자신이나 잘하고 볼 일이니까.


다시 지인의 직장 생활로 돌아가보자. 기존에 있던 직원은 미숙한 신입사원이 들어와 자기 일이 늘었다고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래서 상사와 담소를 나눌 때 부정적인 시선을 여과 없이 토로했을 것이다. 그 상사도 악의 없이, 그저 부하직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을지 모른다. 내 지인은 상사에게 실컷 잔소리를 듣고 억울했을 것이다. 그리고 기존 직원에 대한 험담을 내게 잔뜩 늘어놓았다. 결과적으로 이들 세 사람은 큰 이유나 필요가 없이 스스로를 부정적인 감정에 노출시켜 괴롭힐 뿐이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자신의 언행을 한번 더 돌아보았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최재천 교수는 '이해하면 사랑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사랑할 것까지는 없고. 이해하려는 시도 한 번으로도 큰 차이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생각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 모를 정도로 무지하다.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학명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지혜롭고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럴 자격이 있나? 내가 생각하기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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