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 점프를 하다 "그 밀씨가 바늘 위에 꽂힐 확률"

번지 점프를 하다 (2001) - 김대승 감독

by SBOOI

교실 앞에 선 이병헌의 눈동자는 잔잔한 호숫가의 물결처럼 부드럽다. 그는 나직이 운명의 본질을 풀어낸다. “이 줄은 세상인데, 이 세상 아무 곳에다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꽂힐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만나는 게 인연이다.” 이 한 문장은 우연과 필연의 모호한 경계선 위를 걷는 두 연인의 운명을 상징한다.

1991년 21살 이병헌 배우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신예 작가 고은님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녀는 운명론적 서사를 택해, 사랑과 이별을 거듭하는 인물을 통해 한 세대의 감성을 대변했다. 김대승 감독은 촬영 전 이 장면을 두고 “우아하게 추락하라”라고 주문했다. 그 주문에 따라 배우들은 벼랑 끝에서 자유롭게 몸을 맡겼고, 벼랑 아래로 뛰어내린 뒤에도 편집을 통해 마치 새가 난 듯한 희망을 남겼다.


완벽하게 짜인 극 중 타이밍과 카메라 워크, 그리고 절벽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이 모두 어우러져, “인연”이라는 단어가 관객의 가슴에 서린다. 사랑이란 감정이 얼마나 기적 같은 확률 위에 선밀히 얹혀 있는지, 그리고 그 기적이 한 번 깨졌을 때 다시 붙잡기 위해 우리는 어떤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이 한마디가 여실히 보여 준다. 그렇게 “이 줄이 세상인데… 인연이다.”는 세대를 넘어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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