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이 생긴 자리에서,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들

AI 시대 사무직이 체념을 배우는 법

by 손지훈

사무직의 업무에 균열이 날 조짐이 보이는 요즘입니다.


누군가는 생성형 AI로 숏폼 영상을 만들어 부업으로 돈을 법니다. 대단한 기술 없이도, 아이디어 하나와 프롬프트 몇 줄로 콘텐츠가 완성됩니다.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 순간 당연해졌고, 그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무직이 해오던 일들도 AI 에이전트로 조용히 대체되고 있습니다.


고용주 입장에서 계산은 단순합니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에이전트가 인간보다 비용이 적게 듭니다. 불평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복지도 필요 없습니다.


인간이 AI와 싸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한동안 이 질문 앞에서 무거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포기와 다릅니다. 포기는 싸우다 지쳐 내려놓는 것입니다. 체념은 다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체념입니다. 체념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발을 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상하게도 무언가가 선명해집니다.


더 이상 남에게 보여지기 위해, 평가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자리.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합니다. 오래 흐릿하던 것들이 또렷해집니다. 어쩌면 우리는 오랫동안 너무 바빠서, 그 질문을 할 틈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유용성을 어필하며 쓰임 받는 시대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함께할 회사를 고르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회사가 인간을 선택하는 시대가 끝나고, 인간이 회사를 선택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균열은 끝이 아닙니다. 선명함의 시작입니다.


손지훈 | 《감정적 보상》 저자AI 시대 인간을 붙잡는 HR 전략, 그리고 일과 감정에 대한 글을 씁니다.링크드인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 linkedin.com/in/jihoonson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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