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버텨야죠'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요즘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일단 버텨야죠."
예전엔 이 말이 어디서 오는지 알 것 같았다. 임원이 될 때까지, 정년이 가까워질 때까지,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버팀에는 늘 기한이 있었고, 그 기한이 견디는 이유가 됐다.
그런데 요즘 들려오는 '버텨야죠'는 결이 다르다. 나이가 아니라 직무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사무직 전체가, 어쩌면 나의 자리 하나가, 조직 안에서 왜 필요한지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버팀의 상대가 시간에서 기술로 바뀌었다.
AI가 그 속도를 당기고 있다.
낯설어도 괜찮다
에이전트 AI, 피지컬 AI.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10년 후엔 인간이 필요에 의해 일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일하게 된다."
화폐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노동의 의무는 옅어지고, 인간은 비로소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는 이야기다.
솔직히, 들을 때마다 낯설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고, 지금 이 순간의 불안이 너무 선명해서 그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낯설다는 건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슬로우는 오래전에 이미 말했다. 생존이 해결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속과 인정, 그리고 자아실현을 향해 움직인다고. 우리가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던 건 원래부터 인간의 본능이었다. 다만 생존의 압박이 그 본능을 가려왔을 뿐이다.
그 압박이 걷힌 자리에 무엇이 남을까.
압박이 걷힌 자리에 남는 것
돈이 아니다. 안정도 아니다.
아마도 온기일 것이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사람들과 왜 함께 있는지. 이 조직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인간은 그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감정으로 자신이 할 일을 결정하고, 감정으로 속할 조직을 고른다.
몇 해 전, 나는 저출산과 인재 부족의 시대를 보며 이 질문을 처음 꺼냈다. 금전적 보상만으로는 사람을 붙잡을 수 없다면, 무엇이 남는가. 그 질문이 지금 AI의 시대에 다시, 훨씬 더 크게 돌아왔다. 이제는 저출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더 이상 돈만을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기 때문에, 감정적 보상은 선택이 아니라 고용의 언어 그 자체가 된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버팀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일하는 것. 그 전환의 한가운데를, 우리는 지금 지나고 있다. AI는 차갑지만, 그것이 걷어낸 자리에서 인간의 온기는 오히려 더 선명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질문을 들고 출근한다.
나는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오늘 당신이 버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이유 안에 온기가 있나요?
-------------------
이 질문들은 제가 몇 해 전부터 붙들고 있는 것들입니다. 저출산 시대의 채용 문제에서 시작해, 지금은 AI 시대의 고용 언어로 이어지고 있어요. 그 탐색의 첫 기록이 궁금하신 분들께 《감정적 보상》을 권합니다.
이 주제로 더 이야기 나누고 싶으시다면, 링크드인에서 편하게 연결해 주세요.
→ 링크드인: linkedin.com/in/jihoonson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