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가기 충분한 높이의 벽

by 한씨

핸드폰 케이스를 단 한 개도 팔지 못한 채, 스스로를 돌아봤다. ‘나는 브랜딩과 판매에는 소질이 없나 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순간, 내 앞에는 거대한 벽이 세워졌다. 높은 벽, 두꺼운 벽, 그 너머가 보이지 않는 벽.


그런데 문득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 벽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만 같았는데,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였다. 설령 넘지 못한다 해도 방법은 있었다. 벽을 부수거나, 돌아가거나. 그러니 여기서 멈춰설 이유는 없었다.


벽을 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나는 1600명의 팔로워를 가진 인스타그래머다. 하지만 그 숫자가 곧 브랜드의 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씨를 좋아하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브랜드 스토리를 이해하고 관심을 두는 사람은 더더욱 적었다. 건축학도로서의 자부심이 소비로 직결되지는 않았고, 기꺼이 지갑을 열 만큼의 강한 팬층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제품 자체만으로도 구매 욕구를 자극할 만한 매력적인 디자인이 부족했다.


내가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문제의 본질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문제를 알게 되자, 해결책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첫째, 가격을 낮춘다.

내가 만드는 제품은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니었다. 생산 단가가 정해져 있기에 판매 가격을 낮출 수는 없으니, 그렇다면 처음부터 가격 부담이 덜한 제품을 기획하면 된다.

둘째, 매력적인 디자인을 한다.

별도의 설명이나 스토리가 없어도, 보는 순간 사고 싶어지는 디자인. 그것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이건 꼭 갖고 싶어!’라고 느낄 만한 제품을 만들어야만 선택받을 수 있다.

셋째,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내가 어떤 브랜드를 운영하는지, 어떤 제품을 만드는지 직접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만든 제품을 최대한 시끄럽게 홍보하면 된다. 애정을 쏟아 만든 브랜드를 세상에 자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생각해 보니, 문제 해결 방법은 지극히 단순했다.

현실을 외면하며 자책만 했던 지난날이 떠올라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이제 다시 시작할 때다. 성과가 따라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쩌면, 당장 변화가 없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곧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벽을 만났다고 멈출 필요는 없다.

넘으면 되고, 부수면 되고, 돌아가면 된다.

중요한 건 계속 나아가는 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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