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
계획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혼과 임신 그리고, 출산. 경단에서 다시 취업까지.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어렸을 적부터 무엇 하나 내 의지대로 계획하거나 실행하고 마무리되는 게 없었기 때문에. 서른을 앞두고 있는 현재에 와서는 더 이상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이대로 괜찮은가.’ 하고 의문점을 가지게 된 건 어느 날 저녁이었다. 감기에 걸려 힘들어하는 아이를 겨우 재우고서 소파에 누웠을 때, 주변의 모습은 처참했다. 너저분한 집 안. 쌓여버린 빨래, 발 디딜 틈 없는 공간. 단순히 나만의 문제면 괜찮았을 거다. 어쩌면, 나를 좋아해 주는 남편도 괜찮다며, 이해해줄 거라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 위로를 해도 허용되지 않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내 아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무계획적이고 나태한 나의 삶에 강제로 끌려와야만 하는 사람. 깊은 밤. 무엇이 문젠지 깨달았고,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면 해결될 부분이었다. 분명한 문제점과 해결방법을 알겠음에도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알면서도 해내지 못한다는 우울감과 무기력이 더해져 스스로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감정들. 살아오며 몇 번이고 느껴왔던 좌절감. 나태한 삶의 태도는 이미 나의 어딘가에 깊숙이 자리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ADHD였다.
이미 30년 정도를 살아왔는데 이제야 알게 된 내 문제. 잘못 됐음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한 내면의 본질적인 문제. 여태껏 가져왔던 의문점들에 대한 답이 이제야 들어맞기 시작했다. 남들에 비해 왜 그렇게 더딜 수밖에 없었는지, 덜렁대며 잃어버린 물건은 왜 많은지, 스스로 인정하기 싫었던 못난 모습들 전부. 병원을 나서면서 작은 알약 하나를 받았다. 정말 작은 이 알약 하나로 내가 얼마나 달라졌고, 여태 얼마나 억울한 삶을 살아왔는가에 대해 얘기하자면 아마 날밤을 샐지도 모르는 일이다. 특히나 첫 주엔 부작용에 가까운 고양감에 취해 이제라도 부지런하게 살아볼 거라 다짐했었다. 이제 와서 그렇게 되었냐 물어보면 안타깝게도 전혀 아니다. 그래도 약효의 도움으로 정상인의 범주에 들고자 노력했다. 흔히들 말하는 ‘갓생’까지는 아니지만 좀 덜렁대는 일반인 수준으로 나아졌고, 나는 육아휴직에 들어서게 됐다.
이제라도 현실감을 가지고 상황을 바라봐야 했다.
6살. ”12월생이라 좀 느려요.“ 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나이라 생각되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들은 당시에 1부터 10까지 겨우 셀 수 있었고, 글을 읽고, 쓰기는커녕 선하나 긋는 것도 힘겨워 집에서 연필을 잡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발음도 어눌하게 느껴지는 건 나의 죄책감으로부터 오는 착각에 불가할까. 이 모든 게 일 핑계로 신경 쓰지 못한 내 잘못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문제였을까. 내가 ADHD인걸 미리 알았더라면, 그래서 치료를 일찍 했더라면, 아이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내가 노력하면 괜찮아질까. 과연, 휴직동안 취학 준비를 마칠 수 있을까.
경단에서 다시 취업길로 뛰어들 때보다 더 무거운 마음이었다. 약을 먹고 있는 이상 ADHD란 변명에 숨을 수도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문제가 내 아이의 문제가 되지 않길 바라면서. 이전보다 나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생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