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카(はるか, Haruka)와 최 의생(崔醫生)
하루카(はるか, Haruka)와 최 의생(崔醫生)
이 글은 사실을 토대로 하였으나, 등장하는 모든 지명과 인명은 소설의 전개를 위해 재구성된 허구임을 밝힙니다.
옛 추억에 깊이 잠겨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어머니가 간절히 그리워집니다.
이 글을 어머니께 바칩니다.
하루카(はるか, Haruka)와 최 의생(崔醫生)
하루카가 피투성이가 된 채 죽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사람 목숨이 얼마나 질긴 것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아무도 하루카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대감 부인의 절망스러운 횡포, 피투성이의 갓난아기, 그리고 무당 청아를 구타하는 장면 등 구경거리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하루카의 시신이 어디로 옮겨졌는지 묻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죽은 것처럼 보이던 하루카의 몸을 최준 의생이 열쇠를 가지고 있던 폐쇄된 원산 노동병원으로 옮겼다.
강원도 원산 노동병원은 이미 1929년에 폐쇄되었지만, 건물 안에는 신식 의료 기구들과 진료대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최 의생은 1928년, 이 강원도 노동자들을 위해 세워진 노동병원에서 가끔 봉사 활동을 하며 무료로 노동자들을 진료해 왔다.
동경 제국대학에서 최신식 의학 교육을 받은 최준 의생은, 일본 고급 관리나 장군들을 진료하는 주치의로 원산에 파견되었지만 노동자들을 무상으로 돌보았기 때문에 노동병원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1929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쇄된 이 건물은 서류와 가구들이 뒤섞여 엉망이었지만 필요한 의료 기구들은 여전히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
최 의생은 죽은 것처럼 축 늘어진 하루카의 몸을 진료대 위에 눕혔다.
먼지가 쌓인 수술대 위에서 등잔불 하나에 의지한 채 하루카의 절개된 부분을 소독하고 수술실에서 꿰맸다.
일개 산파가 절개한 것이라곤 믿기 어려울 만큼, 동맥을 피해 아주 깨끗하게 절개되어 있어 마치 의사가 집도한 흔적처럼 보였다.
피가 멎고 시간이 지나자 죽은 듯했던 하루카의 몸에 서서히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미세하게 몸을 움직였다.
최 의생은 깃털처럼 가벼운 하루카의 몸을 양손으로 들어 밖에 세워둔 수레에 실은 뒤,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집 서재로 데려갔다.
서재 한구석에 이불을 깔고 하루카를 눕혔다.
최 의생은 시국이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본군이 점점 더 광기 어린 모습을 보이던 그 시기, 항구였던 원산은 군사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엄격한 감시 체계가 시작되었고, 위안부 모집이라는 명목으로 어린 소녀들까지 끌려가던 때였다.
최 의생은 이 위험한 시대를 피해 고향 청주로 내려가 산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숨어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하루카의 열은 급격히 오르며 몸 전체가 불덩이처럼 뜨거워지고 있었다.
산욕열이 오르고 있었다.
아직 항생제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이 시기… 출산으로 목숨을 잃는 여성은 수도 없이 많았다.
동경에서 양의학을 공부하던 시절, 서양에서 ‘페니실린’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학술지 내용을 읽었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페니실린만 있다면 열을 내리고 염증을 잡을 수 있을 텐데.”
그는 죽은 듯 누워 있는 하루카 옆에 앉아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각상처럼 또렷한 이목구비와 길고 가녀린 목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이렇게 어린 소녀가 엄마가 되다니.”
최 의생은 하루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정상적 판단 능력을 잃은 대감 부인이 반드시 하루카를 죽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무당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한 이후, 고 대감 부인은 남편에게 하루카와 3개월 넘게 매일 동침하라고 강요해 왔다.
그녀는 질투, 시기, 야망, 집착이 뒤엉킨 조선의 유명한 양반가 출신 여인이었다.
양반가 딸로 태어나 이루지 못한 야망과 여성으로서 받지 못한 대접을 ‘아들을 낳는 것’으로 대리 만족하려는 여인들이 많다는 걸 최 의생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한국 여성이 일본 여성보다 열등하게 취급되던 왜곡된 시대였다.
그런 시절, 고 대감 부인은 하루카를 이용해 남편의‘아들’을 얻으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고, 그 심리에는 복잡한 열등감·남편에 대한 증오·사랑받고 싶은 욕망 등이 뒤섞여 있었다.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순간, 집 안의 절대 권력을 쥐고 있던 고 대감 부인이 하루카를 죽이려 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최 의생은 이불 위에서 죽은 듯 잠들어 있는 하루카를 보며,
“이 소녀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
는 강렬한 사명감이 가슴에서 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인간의 생명은 파리 목숨보다도 가벼웠다.
세상에 보호자 하나 없는 이 소녀를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던 하루카.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잃고, 열 살에 아버지마저 잃은 뒤, 낯선 나라의 양반집 식모로 들어와 그렇게 밝게 살아가는 것은 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일본 제국이 한국을 지배하며 악랄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었지만, 사실 가난하고 연약한 일반인들에게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오늘 먹을 것, 잘 곳, 따뜻한 옷이었다.
하루카가 열여섯 살이던 해 동경으로 건너가 의학 공부를 시작했던 최 의생은, 인간의 비극은 국적 차이가 아니라 야망이 만들어낸 정치적 권력 다툼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루카는 일본인이기 전에, 부모를 잃고 타지에서 고아가 돼버린 한 소녀였다.
그런 아이가 얼마나 쉽게 다칠 수 있는 존재인지, 길바닥에서 피를 토하고 죽는다 해도 시신 하나 거들떠보는 이조차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일본이든 한국이든, 열 살 고아 소녀는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살아가야 했다.
최 의생은 그럼에도 하루카가 밝게 부엌일을 하고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인간이 가진 진정한 힘이구나.”
라고 생각하곤 했다.
처음 고 대감의 집에서 하루카가 밥상을 준비하던 날, 그는 그녀를 한국 소녀라고만 생각했다.
한국 소녀보다 더 능숙한 한국어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루카가 고 대감 부인과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일본 소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하루카가 장독 뒤에 숨어 장작에 소녀들의 얼굴을 새기는 것도 유심히 보아 왔다.
손재주가 좋았던 하루카는 만나는 모든 사람, 특히 여인의 얼굴을 장작에 새기곤 했는데, 그것은 마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찾기 위해 신에게 기도하는 행위처럼 보였다.
최 의생은 전근 신청서를 작성해 접은 뒤 큰 봉투에 넣었다.
의생들이 사용하던 가죽 가방에 봉투를 넣고는, 하루카가 누워 있는 이불 옆에 피곤한 몸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새벽 네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침 기운이 떠오르며 서늘한 공기가 방 안을 스치던 그 시간,
최 의생은 눈을 감고 이런저런 미래를 생각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