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1935년
1932년, 경성의 기생 조합에 들어간 무당 청아의 나이는 열네 살이었다. 이제 막 소녀에서 여인이 되는 이 나이, 청아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이 생겨났다. 워낙에 노래와 춤을 잘 추고 말을 잘했지만, 기생 조합에 들어가 권번 주인의 특혜를 받기 시작하면서 청아는 점점 더 자신이 가진 초자연적인 매력과 마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청아는 예전부터 알던 사람 같았지만 또다시 처음 만나는 사람 같기도 한 이상한 여인이었다. 기생 조합에 오는 많은 일본 관리들과 친일파 한국 고위 관리들 모두 청아를 보기를 원했고, 청아와 잠자리를 하고 싶어 하는 고위 관리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권번 주인은 청아를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 없는 보물”**로 만들어 점점 더 많은 남자들을 기생 조합의 고객으로 만들고 있었다.
청아가 모든 것을 다 단념한 듯한 얼굴과 마치 천사와 같은 미소로 남자들의 혼을 다 빼놓고 있다는 것을 권번 주인은 알고 있었고, 이런 청아는 마치 요즘 시대의 아이돌처럼 많은 돈을 만들 수 있는 예술가였기 때문이었다. 청아는 원래 자신의 비참한 인생에서 벗어나 기생 조합의 슈퍼스타가 되어가고 있었다.
특히 청아의 몸에서는 향긋한 복숭아 향기가 항상 났다. 신비롭게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것 같은 이 향수가 도대체 어디서 나온 향수일까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했지만, 청아는 자신의 원래 체취라고만 대답했다. 모든 남자들을 취하게 만드는 이 복숭아 향기와 청아의 부드러운 목소리, 심장에 꽂히는 것 같은 연약한 숨소리, 그리고 심리가 아닌 영혼까지 꿰뚫어 보는 것 같은 강하면서도 연약한 눈빛은 기생 조합에 오는 모든 국적의 남자들의 혼을 완전히 빼놓았다.
청아가 가야금을 치면서 부드럽게 부르는 노랫소리에 눈물을 펑펑 흘리는 일본 장군들도 있었다. 청아가 한풀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술자리에 있던 남자들은 모두 마법에 걸린 것처럼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다 쓰고 가곤 했다. 모든 남자들은 청아를 먼발치에서라도 잠깐 보고 가기를 원했고, 청아와 한마디 주고받은 것을 자랑하며 다닐 정도가 되었다.
청아에 대한 신비한 소문은 끊일 줄 몰랐다. 청아의 최면에 한번 걸려보고 싶어 하는 고위 관리들이 기생 조합에 끊이지 않았다. 마치 물체의 온도를 조절하는 능력을 남자들의 심장에 쓰고 있듯이, 청아 앞에만 서면 남자들은 심장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이 이상한 능력을 가진 청아는 점점 경성의 신화적인 기생이 되어가고 있었다.
만 열일곱 살이 된 청아의 미모와 신비로움은 극에 달했다. 십 미터가 떨어진 곳에서도 청아의 복숭아 향기를 느낄 수 있었으며, 청아의 몸동작과 발걸음은 보는 사람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청아를 보고 있으면 전쟁도 잔인한 현실도 아픈 기억도 모두 다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특히 청아를 안고 청아가 나직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떠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로 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모든 일본의 고위 관리들과 한국 골수 친일파들이 청아만을 찾았다. 특히 중요한 회의나 정치적 모임에는 반드시 청아를 불렀고, 청아는 모든 정계와 경제계 인물들을 이어주는 황금 다리같이 되었다. 항상 청아를 돌보고 모든 것을 감싸주던 미산 부인은 이런 청아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청아는 어디를 가도 반드시 미산 부인을 동행했고, 이런 모습은 마치 조선의 대귀족의 행차를 연상시켰다. 많은 일본 고위 관리들은 모든 모임엔 항상 청아와 미산 부인을 함께 부르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버렸다.
일본어를 마치 귀족 부인들같이 유창하게 하고, 부드럽게 한국 옛 노래를 부르는 청아를 일본 고위 관리들은 모두 탐냈다. 하지만 권번 주인으로 실질적인 기생 조합의 경제 스폰서였던 켄타로(健太郎)와 마담 아이코(愛子)는 청아의 절대적 신변 보호에 전심을 다 했으며, 절대로 고급 관리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지 않고 전통적인 기생의 맥락을 이으려 어떤 가격에도 동침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청아는 경성의 최고 스타 기생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청아가 스타 기생이 되자 동료 기생들의 시기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모두 청아의 화장법을 흉내 내었고, 청아의 발걸음 그리고 목소리를 흉내 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흉내 낼 수 없는 것은 청아의 몸에서 나는 신비로운 상쾌한 복숭아 향기였다. 모두 청아에게 아부를 하며 이 향수를 어디서 누구에게 사는 것인지 물었지만, 청아는 항상 “나의 원래 체취이다”라고만 대답했다. 아무도 청아가 향수를 사용하는 것을 본 사람이 없었고, 어디다 숨겨두고 언제 쓰는지 모두 의문이었다.
항상 청아를 시기하던 일본 기생 츠바키(椿)는 청아에게 계속 아첨과 협박을 하며 이 향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항상 **“나의 원래 체취다”**라는 대답에, 하루는 츠바키가 **“요시(여우) 같은 조선 계집, 어디 두고 보자”**라고 하고, 청아가 고위 관리와의 술자리로 장시간 기생 조합을 비운 사이 청아의 숙소를 모두 뒤져 청아의 물건을 모두 방바닥에 엉망으로 던져 놓았다.
오랜 접대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청아는 자신의 방이 엉망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미산 부인이 이것을 보고 달려갔다. “아니, 아이고 나쁜 년… 어떻게 남의 방에 들어와 이 난리를 쳐 놨대?” 츠바키가 마치 미친 여자아이처럼 청아에게 달려들어 뺨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미산 부인은 청아가 고 대감 집에서 미희의 출산일에 받았던 수모가 다시 생각나 가슴이 덜컹했다. “이 요시 같은 조선년, 네 년이 쓰는 향수가 어디 있느냐. 세상의 남정네를 모두 홀려놓는 그 향수를 어서 내놓아라!” 점점 더 미친 여인처럼 달려들어 청아의 옷을 찢고 머리를 잡아당기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네 년이 요괴인지 모를 줄 아느냐… 어떤 독약을 몸에 바르고 남정네들을 홀리는지 어서 썩 내놓아라!”
청아가 비웃듯이 차갑게 웃으며 완벽한 일본말로 대답했다. “아름다운 생각을 하는 여인은 아름다운 체취가 나는 것이고, 더러운 생각을 하는 여인은 더러운 냄새가 나지요.”
그 순간 갑자기 이상한 썩은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미산 부인이 말했다. “이게 무슨 고기 썩는 냄새야… 아이고!” 코를 막으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 고약한 냄새가 츠바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이고 구린내… 웩 웩 비위 상해서 여기 못 있겠네…” 청아의 한마디 저주로 츠바키의 몸에서는 쥐 썩는 냄새 같은 것이 나기 시작했다. “썩은 생각을 하는 여인의 몸에서는 썩는 냄새가 나오지요… 생각을 바꾸시오.”
이렇게 부드럽게 일본말로 말하고는 천천히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미산 부인은 넋이 나가 가만히 코를 막고 서 있었고, 츠바키는 킁킁거리며 자신의 체취를 맡기 시작했다. 역한 것을 참으며 츠바키가 소리를 질렀다. “이 천하의 요시 같은 조선 쌍년,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어서 이 주문을 풀지 못해?” “내가 건 주문이 아니고 스스로 건 주문이오…”
츠바키가 다시 달려들어 미친 짐승처럼 청아의 팔을 물어뜯으려 했다. 이때 권번 마담 **아이코(愛子)**가 이 광경을 보고 급하게 뛰어왔다. 그리고 장정들을 불러 츠바키를 떼어 내었다. “이게 무슨 소란이야… 우웩, 그리고 이건 또 무슨 똥 냄새냐?” 마담 아이코가 역겨움을 겨우 참으며 코를 막고 말했다. “누가 똥을 쌌느냐?” 미산 부인이 갑자기 웃음이 터져 막고 있던 코를 놓았다. “저는 아닙니다, 마담.” “누구냐? 츠바키 네가 똥을 쌌느냐?” “마담, 청아가 저에게 마녀 주문을 걸어 그런 겁니다.” “그리고 이 물건들은 다 뭐냐? 누가 이렇게 청아 물건을 던져 놓았느냐?” “그건 청아 년이…”
상황을 대충 짐작한 마담이 호통을 쳤다. “입 닥쳐라. 츠바키는 어서 가서 몸을 청결하게 씻고 내 방으로 오너라. 그리고 청아는 물건을 정리하고 다시 접대 나갈 준비 하거라.” 마담은 미산 부인을 보며 말했다. “미산 부인, 청아를 좀 쉬게 하고 다시 몸단장시키시오. 일본 순사부장 이시마루(石丸)가 진급하셔서 잔치를 여는데 청아를 꼭 오라고 하시니 예쁘게 몸단장시켜 나에게 보내시오.” “네, 마담.”
미산 부인은 분노와 질투로 광기를 억누르지 못하는 츠바키를 보며 도망쳐 나온 원산의 고 대감 부인을 생각했다. 이 세상엔 노력으로도 권력으로도 돈으로도 안 되는 것이 있다. 마치 마법처럼 그냥 자연스럽게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쉽게 되고, 어떤 사람은 노력과 돈과 갖은 수를 다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청아가 타고난 매력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요상한 신의 아름다움은 그 누구도 어떤 노력과 권력과 돈으로도 성취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뭐든지 자신이 노력하고 돈과 권력을 이용하고 심지어는 폭력을 사용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미산 부인은 속으로 말했다. ‘청아는 아수라 왕이 딱 붙어 있어서… 아무도 함부로 못 해….’
미산 부인은 청아의 물건을 정리하며 청아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청아의 눈이 빛났다. “미산 부인… 나는 인생을 오기와 증오로만 사는 여인인 것 같소.” “청아, 그게 무슨 말이야… 청아를 보면서 인생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남자들이 경성에 쫙 깔렸는데….” “다른 사람들의 인생은 아름답게 하지만 나의 마음엔 세상에 대한 저주와 증오만 있는 것 같소. 이 커다란 증오와 미움들이 나에게 이런 특별한 능력이 나오게 하는지도 모르겠소.” “청아, 그런 말 하지 마. 청아는 나에게 그 누구보다도 중요한 사람이야. 나는 청아가 없었으면 벌써 강원도 구만산에서 얼어 죽었거나 호랑이 밥이 됐거나 굶어 죽었거나 아니면 도적을 만나 맞아 죽었거나… 나 같은 사람이 어디 경성의 이런 대궐 같은 권번에서 살 수 있겠어….” “미산 부인, 정말 고맙소. 나도 이 세상에 의지할 사람은 미산 부인 하나뿐이라오.”
미산 부인은 청아가 항상 너무 안쓰러웠다. 청아가 만약 고 대감 집의 양녀로 클 수 있었다면, 청아는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배울 능력이 있는 여아였다. 하지만 청아가 고 대감 집에 들어간 것은 청아의 알 수 없는 신이 내린 능력 때문이었고, 그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것 같자 그 즉시 쫓아내 버렸다. 아이가 없는 미산 부인은 항상 청아가 딸 같기도 하고 어린 여동생 같기도 했다. 그리고 혼자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청아가 너무나 신기하고 대견했다.
갑자기 청아가 눈물을 쏟으며 울기 시작했다. 미산 부인은 단 한 번도 청아가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청아야, 무슨 일 있어?” “저를 버린 어미가 아직도 꿈에 나타난답니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미가 어떻게 그립고 원망스러울 수 있을까요?” “청아야, 그건 네 어미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아니라 네 인생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야. 네가 살고 싶었던 행복한 어머니와의 삶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런 삶을 살 수 없는 너의 인생 팔자에 대한 원망….” 청아가 미산 어미를 꼭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다. 미산 부인도 청아를 다독이며 울었다. 그러고는 행경을 꺼내 자신의 눈물도 닦고 청아의 눈물도 닦으며 말했다. “그런데 청아야… 츠바키 똥 냄새는 네가 그렇게 한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저에게 너무 미운 마음이 강하게 들면, 그건 상대방의 온갖 어두운 생각들을 더 깨우게 되고 제가 그것들을 말로 바꾸는 순간 그렇게 되어버립니다. ‘더러운 생각이 악취를 만들 것’이라고 말한 저주가 먹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게이샤 몸에서 똥내가 나면 그 게이샤는 이제 끝이지… 너무 심한 저주 아니야?” “츠바키가 저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조절하고 자신의 아름다운 삶을 만들기 시작한다면 그 저주가 풀릴 것입니다. 하지만 츠바키가 저에 대한 시기, 질투를 하는 이상 그 악취는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 저주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츠바키뿐입니다.”
미산 부인은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저주를 걸면서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츠바키는 귀엽고 예쁜 미소를 가진 일본 여자로 아주 인기가 많은 게이샤는 아니었지만, 그냥저냥 먹고살며 자신의 경력을 쌓아나가다가 누군가의 후처로 들어가 가정을 만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청아에 대한 시기, 질투, 집착이 츠바키의 인생을 완전히 망치는 저주가 되어 버렸다.
미산 부인은 청아를 도와 방을 다시 깨끗이 치우고 청아의 몸단장을 도왔다. 처음 인연이 되어 이곳에 들어오게 해준 순사부장 **이시마루(石丸)**는 그 이후 계속 진급해서 경부보(警部補)가 되었고, 이번에 또다시 진급해 경부(警部)가 되었다. 지금의 경찰서 과장급이 되는 중요한 직책이었다. 처음 만나 청아에게 마음을 완전히 빼앗긴 이 일본 순사부장은 자신이 이렇게 빨리 진급이 되는 것은 청아의 축복과 사랑 그리고 마법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청아에게 두둑이 돈을 주었고, 또한 어떤 행사든 중요한 자리에는 반드시 청아를 불렀다. 청아는 많은 남자들에게 살아가는 희망이고 기쁨이 되었다.
이시마루는 젊은 나이에 일본 여자와 혼인하여 조선에서 경관이 되어 계속 진급하고 있는 유능한 일본 청년이었다. 하지만 이시마루의 결혼 생활은 완전히 빈 껍데기 같은 생활이었다. 사실 부인과 같이 오래 있는 것이 싫어서 죽도록 나가서 일만 하다 보니 진급이 빨리 된 것일 수도 있다. 잔소리가 많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는 부인과 이시마루를 돈주머니로 보는 아이들은 이시마루를 항상 집 밖으로 나돌게 했고, 이시마루는 조선 기생 청아가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하나밖에 없는 여인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이시마루의 진급 연회에서 청아는 모든 사람들의 심장을 얼렸다 녹였다 하는 노래로 다시 모든 참석객을 꿈같은 최면에 빠뜨렸다. 이시마루가 연회가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청아를 홀로 방으로 불렀다. “청아야. 너는 어떻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지느냐?” 청아가 이시마루를 오랜 친구를 보는 듯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저를 아름답게 보아 주시는 덕에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원산에서 서울로 온 그날 이시마루 님이 저를 기생 조합 권번 주인에게 소개시켜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죽었을 것입니다. 계속 살아남으려면 저를 아름답게 보아 주시게 제가 노력해야지요.” 이시마루가 청아의 팔을 잡아 끌어당겨 무릎에 앉혔다. 청아가 이시마루의 목을 껴안고 귓불 가까이에 입술을 대고 말했다. “이시마루 님이 죽으라고 하면 저는 죽을 것입니다. 저는 이시마루 님에게 생명을 빚진 여인입니다. 이시마루 님의 손에 제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저는 이시마루 님의 여인입니다. 저를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시마루는 반짝이는 눈으로 부드럽게 귓불에 속삭이는 청아의 목소리에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청아의 옷을 마구 벗기기 시작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산 부인은 권번 주인에게 청아가 절대로 그 어떤 손님과도 정사를 하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청아를 불렀다. “청아, 이제 연회가 끝났으니 다른 기생들과 함께 권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청아의 숨찬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미산 부인, 오늘은 혼자 돌아가시오. 나는 오늘 이곳에서 자고 가겠소.” 미산 부인은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애라도 생기면 어쩌나….” 그랬다가 다시 생각했다. ‘천하의 청아가 애 들어서는 날을 모르겠어… 다 계산하고 있을 거야… 그럼, 우리 청아는 다 알고 있지… 언제 애가 들어서고 언제 안 들어서고….’ 미산 부인은 기침을 크게 두 번 하고는 권번으로 돌아왔다.
청아와 이시마루는 그렇게 그날 이후 서로 마음과 몸을 나누는 뗄 수 없는 친구가 되었다. 이시마루는 청아와 잠자리를 하고 나면 마치 자신이 천황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가능한 것 같았다. 청아의 부드러운 피부와 목소리, 숨소리 그리고 청아의 체취와 섞인 향긋한 복숭아 향기는 이제 이시마루에게는 매일 먹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은 마약이 되었다.
두 사람은 시간만 나면 비밀 장소를 찾아 사랑을 나누었다. 서로 사랑을 나누면 나눌수록 두 사람의 우정은 깊어졌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과 몸을 완전히 이해하는 두 사람은 이 미친 혼돈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진정한 유희였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올 때처럼 알몸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전하는 방 안에서 두 사람은 그곳이 유일한 천국이라고 느꼈다. 이 밀회의 사랑을 나누는 방 안에는 일본 제국주의도 없었고 식민지도 없었고 억눌리는 자도 없고 억누르는 자도 없었다. 일본어도 없고 한국어도 없었다. 아무런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완벽한 쾌락과 유희, 사랑 그리고 이해와 깊은 감사만이 존재하는 천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