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카와 최의생

충청북도 청주, 1935년

by Siesta

하루카와 최의생 (충청북도 청주, 1935년)

일제의 통치하에 있던 조선은 당시 전통적인 조선의 정서와 일본의 새로운 질서가 섞여 이중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1930년대 청주는 충청북도의 행정 중심지로서 빠르게 근대적인 외형을 갖춰가고 있었다.

중앙로(당시 본정통, 本町通)에는 일본식 상점, 은행, 우체국 등 서양식 건축물이 늘어서 활기가 넘쳤고, 이 거리는 일본 상인과 부유한 친일 조선인이 주로 활동하며 세련되고 이국적인 분주함이 감도는 공간이었다. 이 거리에는 커피를 파는 다방이 생겼고 주유소와 양장점도 들어섰다. 도청 근처나 주요 관공서 주변에는 일본식 문화주택이 밀집되어 있었고, 이곳은 조선인들과는 구별되는 깨끗하고 정돈된 질서를 상징했다. 최의생이 부모님과 사는 집은 이 도청 근처였고, 일하고 있던 병원은 중앙로에 있었다.

반면, 성 밖이나 구도심 외곽의 조선인 거주지에서는 여전히 낡은 초가집과 기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가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거리에서는 일본 순사(巡査)와 제복을 입은 관리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 순사들의 구둣발 소리는 조선인들에게 무언의 감시와 억압감을 주었고, 모든 공공장소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관공서와 학교, 심지어 상점 간판에서도 일본어가 모두 우선시되었다.

충북선 등 철도 건설과 미곡 수탈로 인해 도시는 기능적으로 변했으나, 대부분의 조선인 농민들에게는 수탈과 고통이 가중되는 결과를 가져와 암울한 생활상이 깔려 있었다. 최의생의 집안은 경제적으로는 몰락했으나 조선 양반의 피를 이어받은 집안으로, 최의생의 아버지는 자존심과 권위의식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최의생의 남동생은 중앙로에 생긴 은행에 근무하고 있었고 이미 혼인하여 딸을 하나 두고 있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일찍 도쿄제국대학으로 유학을 가고 그 이후 고향을 떠나 원산으로 발령이 나는 등 혼기를 놓친 최의생이 항상 걱정이었던 아버지는 최의생에게 선을 볼 것을 명령했다.

“송 진사(宋 進士)의 셋째 딸 알지? 그 아이와 선을 보기로 했다. 그 여식도 이제 스무 살이 넘어 혼기를 놓치면 안 되니 이번엔 꼭 혼인을 성사시켜라.”

이미 서른이 되어가고 있는 최의생을 이번에는 꼭 혼인시켜 후사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최의생 아버지의 결단은 확고했다.

“아버지, 저는 별로 지금 혼인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요.”

최의생의 아버지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배울 건 평생 많은 거야! 그리고 너 맨날 그 간호사 하루카랑 붙어 있으니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둘이 사귄다고 소문 다 났어.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 난 일본 며느리 절대로 못 본다. 게다가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도 모르는 출신이 불분명한 일본 계집을 집안에 들여놓을 수는 없어!”

“아버지, 저희는 그냥 같이 일하는 사이입니다.”

“저희? 너하고 간호사가 저희야? 안 되겠다. 내가 이번 주말에 선 약속 잡아놨으니 선 보고 상견례 하고 혼인 올리자.”

“아버지…… 저는…….”

“긴말 말고 내년 봄에 혼인식 올려. 아이도 곱고 참하고 집안도 그만하면 괜찮아.”

이 시대 조선에서는 부모가 혼인을 결정하면 그냥 따라야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결혼은 집안의 권력이나 재산을 유지하기 위한 협약 같은 것이었다.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로맨틱한 생각이 조선 땅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신여성들이 등장한 1920년대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모두 중매결혼을 했었다.

1910년대 후반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과 함께 자유연애 및 연애결혼 개념이 신문, 잡지, 신소설 등을 통해 소개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중매혼(매매혼)에 대한 비판과 개인의 자유 의지, 그리고 개인의 감정을 중요시하는 사상이었지만 아직 중매결혼이 대부분의 조선에서 관행되는 결혼 형태였다. 특히 신여성이라고 불리던 여성 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연애결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으며, 일부 지식인층 사이에서 실제로 연애결혼이 이루어지며 유행하기 시작했으나 경성 같은 대도시권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충청북도 청주는 교육의 도시, 양반의 도시, 철학의 도시로 조선 안에서도 보수적이며 예의와 전통을 중시하기로 유명한 도시다. 이런 도시에 연애결혼이라는 것은 상스럽고 저속한 신문화로 받아들여졌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는 절대 조건으로 ‘사랑’이라는 서구적 개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때 조선에서 두 사람의 ‘사랑하는 마음’은 결혼을 하기 위한 아무런 이유가 되지 않았다.

최의생은 집을 나와 진료소로 향했다. 진료소에서 하루카를 매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최의생이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인 것 같았다. 하루카는 진료소의 창고를 침실로 만들어 그곳에서 숙식하며 살고 있었다. 최의생은 일터가 하루카와 있을 수 있는 곳이라는 행복감으로 항상 출근했었다. 하지만 이제 중매가 들어와 결혼 이야기가 오가게 되면 사람들의 말이 더 많아질 것이고, 하루카와는 더 이상 청주의 거리를 산책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항상 진료가 끝나면 둘은 중앙로에 새로 생긴 카페 아리아케(カフェ 曙)에 가서 차 한 잔을 마시며 그날의 진료 이야기, 새로 들어온 의학 서적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자 그날을 마무리하면서 내일의 밝은 미래를 확인하는 잔치와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공식적인 중매가 들어온 이상 최의생과 하루카가 단둘이 카페 아리아케(カフェ 曙)에서 만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최의생의 마음은 마치 천국의 문이 닫혀버리고 홀로 문 밖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최의생의 마음에 하루카는 삶의 이유이고 기쁨이며 매일매일을 연회처럼 살 수 있는 조명 같은 것이었다. 하루카가 없는 삶을 생각하자 어두운 진료실과 성 밖 가난한 사람들의 절규와 비명이 더욱 크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만 같았다.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Ready-made Life)을 읽은 것이 생각났다. 순수한 연애 감정보다는 사랑마저도 자본과 사회 계급에 의해 결정되는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성을 비판하는 도구로 ‘연애의 좌절’을 사용한 이 소설에 크게 감명받았던 것을 떠올렸다.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감정 속에서 자신도 알지 못하던 감정의 정의를 찾았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최의생이 하루카에게 가지고 있던 이 기쁨과 희망, 알 수 없는 매일매일의 설렘은 사랑이란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령을 어기고 어떤 집안의 내력도 알지 못하는 고아인 일본 여자 하루카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최의생이 병원 진료실로 들어왔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진료실에 들어와 가운을 입었다. 하루카가 최의생이 가운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어깨가 축 처져 출근한 최의생을 보며 하루카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최의생이 하루카를 물끄러미 보았다.

“중매가 들어왔소. 양쪽 부모님이 모두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인 것 같소.”

하루카는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 네, 축하드립니다.”

“하루카, 내가 느끼는 감정을 하루카도 느끼고 있습니까?”

하루카가 고개를 숙였다. 하루카에게 유일한 보호자는 최의생이었다. 최의생은 하루카에게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고 선생님이고 의사이고 친구이고, 그리고 연인이었다. “축하드립니다.” 하루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최의생이 뒤로 가서 하루카를 꼭 감싸 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혼인을 해도 내 옆에 있어 줄 수 있겠소? 지금처럼만이라도 내 옆에 있고 도망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루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선생님, 저는 도망갈 곳도 없고 이 천지에 아무 숨을 곳도 없는, 아무도, 그 아무도 없는 사람입니다. 저를 계속 이곳에 있게 해 주신다면 그것으로 저는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루카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마치 산짐승에게 물어뜯긴 어린 강아지 같은 눈으로 최의생을 바라보았다. 만약 최의생이 혼인을 하고 하루카를 더 이상 간호사로 쓰지 않기로 하여 이 창고 방에서 내쫓는다면 하루카는 아무 곳도 갈 곳이 없었다. 일본에도 한국에도 아무런 가족도 친지도 없었고, 6년간 살았던 고 대감의 집 원산으로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미 스무 살인 정령기가 되었기 때문에 유일한 길은 일본인의 첩이 되거나 식당이나 일본인 집의 식모살이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청주에는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었고, 이렇게 신변이 확실하지 않고 가족이 없는 여자는 그 당시 어떤 일을 당해도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었다.

최의생은 하루카를 돌려세워 얼굴을 보고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작고 마른 하루카를 자신의 품에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 약속합니다. 비록 부모님이 정해주시는 여인과 혼인을 하지만 당신을 평생 반드시 지켜주겠소. 내 곁에 머물러만 있어 주시오.”

두 사람은 서로 한 몸처럼 끌어안고 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최의생이 하루카의 긴 생머리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옆에 있어 줘서 고맙소.”

그날 그렇게 공식적으로 최의생의 중매가 들어오고 혼인에 대한 구체적인 양가 부모의 합의가 오가기 시작하면서, 최의생과 하루카가 비밀처럼 만나기 시작한 곳은 청주의 용화사(龍華寺)였다. 두 사람 모두 불교 신자이고 청주 시내와 가까이 있는 용화사는 아무도 두 사람을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없는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청주 시가지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는 용화사는 도시에서 가까우면서도 산사의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찰은 웅장한 산세에 기대기보다는 완만한 구릉 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 주변 민가나 읍내와 완전히 동떨어지지 않은 비밀을 간직하기에 좋은 ‘경계 지대’였다. 읍내에서 용화사로 들어오는 길은 푸른 소나무와 칡넝쿨이 우거진 고요한 오솔길이었다. 항상 일이 끝나면 두 사람은 10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용화사로 향했다. 두 사람이 만나는 곳은 대웅전과 승려들의 거처인 요사채 뒤편이었다. 이곳엔 작고 울창한 대나무 숲이나 오래된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시야가 차단되었다. 댓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몰래 만나는 두 연인은 이곳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대화로 하루를 마쳐야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다음 생에는 다른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로 만나 부부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저는 바람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자유롭게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이 세상을 날아다니며 구름을 몰고 다니는 바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하루카의 얼굴은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성숙하고 단호했다. “바람이 된다면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입니까?”

“강원도 원산입니다. 가서 미희를 한번 꼭 안아보고, 추울 때 따뜻한 바람으로 그리고 더울 때 시원한 바람으로 곁에 있고 싶습니다.”

얼굴조차 한 번 본 적이 없는 딸을 그리워 하는 하루카를 보며 최의사가 위로했다.

“미희는 고 대감이 잘 돌보고 있습니다. 너무나 영특해서 이미 4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마음씨도 고와서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여식으로 크고 있다고 전에 강원도에서 온 한 상인에게 들었습니다.”

하루카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기쁨과 희망의 미소가 퍼져갔다.

그때 사찰을 맴돌며 산책하던 스님이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을 보고는 이 둘에게 다가왔다.

“나무관세음보살.”

하루카가 스님을 보고는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숙였다.

“나무관세음보살.”

스님이 하루카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과 동시에 얼굴 전체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감지하고는 말했다.

“인생의 가장 큰 기쁨과 가장 큰 슬픔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여인을 무심천 미륵칠불이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스님이 두 사람의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와, 무심천 너머를 먼 눈으로 바라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곳 용화사의 부처님들이 어떻게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스님이 대웅전 안쪽, 어스름한 불빛 속에 거대하게 솟아있는 석불들을 가리켰다.

“불과 삼십여 년 전만 해도, 저분들은 저기 흐르는 무심천 차가운 진흙 바닥에 몸을 누이고 계셨지요. 억겁의 시간 동안 물길에 깎이고 모래에 덮인 채, 세상의 빛을 잊고 계셨던 게요.”

하루카가 젖은 눈을 들어 스님을 보았다. 자신의 처지가 마치 물속에 잠긴 돌덩이 같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스님은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지요. 고종 황제의 후궁이신 엄비 마마의 꿈결에 일곱 분의 부처님이 한꺼번에 나타나셨습니다. 온몸이 강물에 젖어 서늘한 기운을 내뿜으며 마마께 청하시기를, ‘우리가 무심천 늪바닥에 빠져 고통받고 있으니, 우리를 구해 안치해 준다면 이 나라와 왕실을 보살피겠노라’ 하셨지요.”

“꿈속의 부처님이 정말로 물속에 계셨던 건가요?”

최의생이 신비로운 듯 물었습니다.

“그렇다마다요. 마마의 명을 받은 청주 군수가 무심천 변을 샅샅이 뒤지니, 놀랍게도 진흙더미 속에서 저 거대한 석불 일곱 분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을 것 같던 저 무거운 몸들이 마법처럼 물 밖으로 나오신 게지요. 엄비 마마께서는 사재를 털어 이곳에 절을 세우시고, 장차 올 미륵의 세상을 기원하며 용화사(龍華寺)라 이름 붙이셨습니다.”

스님은 잠시 말을 멈추고 하루카의 떨리는 어깨를 바라보았다.

“여인이여, 저 부처님들을 보십시오. 수백 년을 어두운 물속에서 숨 죽이며 기다렸기에 지금 저토록 단단하고 장엄한 빛을 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그대의 가슴에 맺힌 눈물도, 훗날 누군가에게는 저 미륵불처럼 단단한 위로가 될 것입니다.”

하루카는 스님의 말에 다시 한번 합장하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무심천의 차가운 물속에서도 결코 마모되지 않았던 석불의 미소가 마치 자신의 이름 없는 삶을 지탱해 주는 기둥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스님이 하루카를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일곱 개의 불상이 일곱 개의 얼굴이 되었고 일곱 번의 죽음이 일곱 번의 삶이 되었군요. 여인이여, 당신이 이곳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부처님의 뜻이니 삶을 이끌어 나갈 길도 열어 주실 것이요.”

하루카가 놀라 스님을 보며 말했다.

“스님,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여인이여, 당신은 사람의 삶을 구하는 칠불상의 축복을 입은 영혼이요. 당신이 이곳에 온 것은 누군가를 구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정교하고 힘있어 보이는 하루카의 손을 유심히 보며 말했다.

“혹시 일곱 개의 얼굴을 누군가에게 새겨준 기억이 납니까?”

하루카가 더욱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미희를 출산하기 바로 며칠 전, 무당 청아가 자신에게로 와서 자신이 딸을 낳을 것이며 이 상황에서 일곱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 위해 일곱 개의 얼굴을 새긴 조각들이 필요하다고 말해 자신이 칠두상을 새겨 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스님,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이곳에 오기 전에 일곱 개의 얼굴을 새겨 어린 무당에게 주었습니다.”

“그 두상은 한 사람을 일곱 번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일곱 여인의 목숨을 구하는 자비를 받은 조각입니다. 바로 이곳의 미륵칠불이 여인들의 삶을 구하기 위해 당신에게 영감을 주신 것이지요. 미륵칠불이 당신을 여기까지 부른 것이니 평화를 가지고 사십시오.”

그렇게 말하고는 합장을 한 후 스님은 다시 유유히 가던 길을 갔다.

최 의사와 하루카는 부드러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속삭임 속에 말없이 사라져가는 스님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최 의사는 하루카의 손을 잡았다.

“청아에게 새겨준 당신의 조각이 미륵칠불의 영감이었다는 것입니까? 그 일곱 여인 중 하나는 바로 하루카 당신의 삶일 것입니다.”

고요하게 붉은 저녁노을이 물들고 있는 용화사의 마당에는 삶에 대한 희망, 그리고 사랑의 희망이 소리 없는 바람처럼 스쳐 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그렇게 신비로운 옛 전설처럼 조용히 용화사의 미륵칠불 아래에서 서서히 솟아오르고 있었다.


일요일 연재
이전 14화청아의 슈퍼 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