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남자

by Siesta

정년기가 돼서 나에게 딱 맞는 짝을 만나 세상을 멋지게 살아보고 싶은 것은 모든 여인들의 꿈이다. (남자들도 물론 이런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여자 이니깐 여지 입장으로 쓰겠다)


맞선을 보거나 미팅을 하거나 소개팅을 하거나...


내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말.


한국에선 "시집을 잘 간 여자가 가장 대박"이라고 아직도 생각하던 시절이다.


두꺼운 안경에 몸에 맞지 않는 큰 옷을 좋아하던 나는 남자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게다가 얼굴에 여드름까지 두덕두덕 나아 있어서 내가 남성들의 시선을 전혀 끌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얘쁘고 키 크고 날씬하고 상냥한 내 동생과 다르게 나는 뒤에서 보면 남자아이 같은 여자였다.


그날도 최루탄이 대학로에 날아다니던 금요일.


나는 친구가 소개해준 s 대학교 공과에 다니는 학생을 만나기 위해 대학로의 한 벤치에서 땅콩과자를 먹으면서 미팅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을 강의 끝나고 못 먹어서 배가 고파서 땅콩과자하고 바나나우유를 사서 마셨다.


배가 고프면 뱃속에서 유난히 꾸르륵꾸르륵 소리가 나기 때문에 미팅하다가 이런 소리 들릴까 봐 30분 전에 와서 벤치에 앉아서 과자로 요기를 했다.


나의 진정한 친구들은 내가 한번 친구면 평생 친구로 여기는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딱 2명밖에 없는 친구들이지만 항상 내 걱정들을 해 주면서 이렇게 소개팅을 주선해 주었다.

이미 나의 친구들은 대학 2학년에 만난 멋진 남자들과 혼인 이야기도 오가며 사귀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싱글에서 구해야 한다는 소명감에 이렇게 S 대 학생을 소개팅해 주었다.


과자를 다 먹고 수건을 꺼내서 입술을 닦고 손도 닦았다.


남은 부스러기 과자들을 나에게 모여드는 대학로 광장의 비둘기들에게 던져주고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키가 나보다 1cm 정도 더 클 것 같은 한 남자아이가 나타났다.


나는 키가 160cm이다.


이 남자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 숙이 친구분 이세요?"


내가 말했다.


"네"


키는 작지만 또렷또렷한 눈을 가진 이 아이는 나에게 말했다.


" 어디 카페 같은 데 가서 이야기할까요?"


내가 좋다고 하고 같이 대학로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 부모님은 건강하시죠?"

난데없니 이렇게 물었다.


"네?"


" 저는 이렇게 미팅 소개팅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공부만 잘하는 전형적인 S 대학의 이 공대생은 차를 한잔 시켜놓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했다.


" 부모님 모두 건강하세요. 그쪽도 부모님 건강하세요?"


" 아... 네... 그럼 우리 좀 걸어 다니다가 저녁 같이 먹을까요?"


우리는 이런저런 학교 이야기 그리고 정치 이야기 또 대학교 졸업 후에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한 실용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대학로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조금씩 시간이 자나니 이 아이의 말투나 걷는 모습 등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우리는 조금씩 친한 친구처럼 편해졌고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무원 부모님을 가진 이 아이는 평범하지만 "올바른 생각"을 가진 남자였다.


우리는 같이 저녁을 먹고 이 학생이 저녁값을 지불했다.

내가 말했다.


저녁 먹은 것 제가 값아야 하니깐 다음엔 제가 살게요.


이 말에 이 학생은 기뻐하며 말했다.


" 아네... 그럼 또 만나자는 이야기네요. 좋습니다."


그렇게 나는 이 학생과 친구처럼 만나기 시작했다.


열 번쯤 만났을 때 이 친구가 나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 우리 키스해 볼까?"


호기심도 많고 또 예술인을 부모로 둔 나는 원래 이런 실험정신이 강한 여자아이였다.


이 학생은 나를 마치 무슨 괴물 보듯 갑자기 시선이 바뀌었다.


"그런 말은 남자가 먼저 해야 하는 거야... 너 정체가 뭐야?"


"그런 게 어딨어. 남자고 여자고 먼저 말하고 동의하면 하는 거지."


이날 이후로 이 친구는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소개해준 친구의 말로는 애가


'발랑 까진 여자'


이기 때문에 더 만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나는 사실


'발랑 까진 여자'가 무슨 뜻인지 50이 넘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발랑 까진 여자는 솔직한 여자인가, 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여자일까 아니면 이미 성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여자일까 또는 푼수같이 말을 막하는 여자일까?


너무 화가 나서 이 발랑 까진 여자라는 표현의 정의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렇게 나는


"발랑 까진 여자"라는 오명을 쓰고 서울에서 S 대학의 학생에게 보기 좋게 딱지를 맞았다.


그 이후로 나는 더욱더 독일로 유학을 꼭 가야 팔자가 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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