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깜짝 놀라서 어떻게 주체를 하지 못하는 것을 눈치챈 이 교수님은 나를 자신도 놀라서 커다란 파란 눈을 더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가까이서 나를 보는 큰 파란 눈은 찬물을 얼굴에 확 붓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놀란 듯 나를 뚫어지게 보며 물었다
"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어?"
나는 머리를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저 키스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이렇게 독일사람이랑 첫 키스 할 줄은 몰랐어요. "
이 교수님도 쑥스러운 듯 말했다.
"20세가 된 여대생이 키스 한번 못해 봤을 건 생각도 못했어."
내가 말했다.
" 사실 전 별로 한국에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을만한 얼굴을 가진 여자아이가 아니에요. 게다가 돈이 많은 부잣집 여자도 아니고 또 집안에 틀어 박혀서 책 읽거니 집 청소하거나 아르바이트하거나... 그렇다 보니깐 키스 한번 못해 봤네요. 게다가 한국은 이렇게 찻집에서 키스하고 그런 나라가 아니에요. 결혼하고 출산계획 세우고 그러고 나서 키스하는 거예요.... 대부분 사람들이..."
머릿속에선 계속 전에 만나던 S대학생이 나에게 한말 "발랑 까진 여자, 발랑 까진 여자...라는 메아리가 울렸고 카페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별빛처럼 반짝이듯 나에게 쏟아졌다.
내가 너무 떨려서 더듬더듬하는 독일어에 이분도 미안한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너같이 예쁜 아이를 왜 한국남자들이 안 좋아하는 얼굴이라고 해?"
옆에 있던 한 남학생이 한국말로 앞에 앉아있는 늘씬하고 인형같이 생긴 여자친구에게
"서양 남자들은 한국에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희기종 여자들을 좋아한다더니 그 말이 맞나 봐"
그렇게 킥킥 웃으며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는 너무 창피하고 화가 나서 가방을 메고 카페를 뛰어나오려고 했다.
이때 한국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던 이 교수님은 나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같이 가. 잠깐만 기다려 나 이 커피 다 마시고 같이 나가자."
두꺼운 안경에 이마와 볼에는 아직도 여드름 상처가 가득했고 나는 화장품이 너무 비싼 시대였기 때문에 아무런 화장도 하지 않고 학교를 다녔다.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나의 긴 생머리였는데 나는 머리숱이 많고 직모라서 조금만 빗어도 머리가 윤이 많이 낫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서양인들이 머릿결이 고운 동양여자들을 강아지처럼 귀여워하며 쓰다듬고 싶어 한다는 말을 독문학 해석 시간에 한 독일유학을 마치고 온 여자 교수님께 들은 것이 생각났다.
"발랑 까진 여자" "강아지 같은 여자" " 희기종 여자"
나의 머리에는 온갖 나에 대한 비참한 생각들이 오고 갔다.
교수님이 커피를 다 마시고 내 손을 다시 잡고 말했다.
"나가자"
나보다 20살이나 나이가 많은 이 독일남자...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키스를 한 것일까?
나를 정말 좋아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나랑 하룻밤 자 보고 싶은 것일까?
아님 충동적으로 한번 키스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너무 말도 못 알아듣고 외로우니깐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를 지푸라기처럼 잡은 것일까...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하며 어지러웠다.
마치 온 세상이 우리의 적이 된 것같이 이 남자는 내 손을 잡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발길을 빨리 옮겼다.
키가 190이 거의 되는 이 사람의 빠른 걸음에 나는 뛰다시피 하며 발걸음을 맞추다가 말했다.
"숨차요, 좀 천천히 가세요. 어디로 가는 거예요?"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이차이, 문화의 차이 그리고 언어의 차이...
이 남자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이고 나는 이 남자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었던 것일까?
20대와 40대는 인생의 그날그날의 목표부터 다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도 20대는 막연한 것이고 40대가 되면 더욱 구체적으로 되어간다.
게다가 이미 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해 보았을 이 사람과 이제 막 대한민국의 수능시험에서 벗어나 남성이 뭔지 배우기를 시작해야 하는 나와는 "연애"라는 개념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따듯한 파란 눈을 가진 이 분이 싫지 않았고 때로는 아버지 같이 때로는 교수님같이 때로는 연인같이 때로는 나의 학생같이 나를 대하는 시점이었다.
작은 골목으로 들어왔을 때 나를 끌어안고 나와 이빨이 부딪히게 강렬하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점점 더 깊숙이 품에 안겨서 이 사람의 외로움과 삶의 욕망에 응했다.
" 내가 있는 집으로 갈래? 오늘 내 집에서 잘 수 있어?"
나는 이 사람의 품에서 벗어나면서 말했다.
" 안 돼요. 한국은 그런 문화가 아니에요. 어머니가 많이 걱정하셔요... 그리고 여자아이가 남자 교수님 집에 가서 막 자고 그럼 안 되는 문화예요."
실망한 눈으로 나를 다시 끌어안고 말했다.
" 정말 이상한 나라다... 왜 사랑하는 사람들이 같이 있는 것이 어색한 나라지?"
아직도 선을 봐서 시집을 가는 사람들이 연얘해서 결혼하는 경우보다 훨씬 많은 시기였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마광수 선생님의 책이 사회의 이슈가 돼서 이 교수님을 강단에서 몰아낸 그런 사회 분위기였다.
"즐거운 사라" 책 때문에 교도소에 수감이 된 마 교수님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반성문을 쓰고 나오던 시기였다.
남자들의 성적인 본능에 응하는 여자는 죄인취급당하는 사회 분위기였다.
마치 여성은 성적인 본능도 욕구도 없는 듯 "내숭"을 잘 떨어야지 좋은 여자로 인식되는 이상망찍한 사회 분위기였다.
밀당을 잘하는 여자여야 한다는 둥, 가야금 타듯 잘 튕겨야 한다는 둥...
무슨 소리인지 아직도 잘 나는 해석이 안 되는 여성의 성에대한 무자비한 인식들이 통상되는 사회 분위기였다.
" 그럼 너는 네 진심은 어떤데? 만약에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아도 된다면 나랑 같이 있고 싶어? 나하고 같이 밤을 지내고 싶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