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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진 Sep 20. 2024

18. 독 짓는 장인(匠人) 화가

―장욱진의 <독>

 

‘이년! 이 백 번 죽어도 쌀 년! 

앓는 남편두 남펀이디만, 어린 자식을 놔두구 그래 도망을 가? 것두 아들놈 같은 조수놈하구서….’

송영감의 잠꼬대에 놀란 어린 아들이 울면서 아버지를 깨웠다. 꿈에서 깬 송 영감은 아들 당손이를 꼬옥 끌어안았다.

   -황순원 , <독 짓는 늙은이>에서


독 짓기에 평생을 바쳐온 장인이 있었다. 동네에서 ‘송영감’이라고 부르는 그에게 독 짓기는 삶을 유지하는 생존의 방법이자 집념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세월은 야속하기만 했다. 나이가 들어 몸은 예전 같지 않았고, 늦게 얻은 마누라는 나이 어린 제자와 눈이 맞아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어린 아들만 남겨 놓은 채…. 

송 영감은 어린 아들과 살아야 했기에 독 짓는 일에 더욱 집중했다. 하지만 노쇠해진 체력과 배신감으로 그득한 증오 때문인지 제작한 독은 계속 터지기만 했다. 노인의 좌절은 깊어만 갔다.    

 

                            장욱진, <독>, 1949, 캔버스에 유채, 45.1 ×37.7cm 


단순하지만 큰, ‘독’의 초상

장욱진의 <독>(1949)을 보다가 떠오른,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에 읽었던 황순원의 단편소설 <독 짓는 늙은이>이다.  화가의 <독>에서 ‘독 짓는 늙은이’의 반짝거리는 집념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내면에 자리 잡은 그림에 대한 애착과 고뇌가 여실하게 다가왔다. 


장욱진은 일본에 유학한 한국 현대미술의 1세대 화가이다.  해방 후 서구 문명이 밀려드는 가운데 사라져 가는 우리 것을 지키려 했다. 

그의 그림에선 서양미술의 기본인 원근법과 입체감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였을까?  나무와 인물과 산 등의 소재를 평면으로 표현한 단순한 색채와 선은 민화(民畵)의 그것과 정말 많이 닮아 있다. 우리 것의 현대화가 되겠다. 


그는 그림밖에 몰랐다. 아니, 그림밖에 모르는 장인이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타고난 화가임을 자신의 글을 통해 고백하곤 했다.     

‘내게 죄가 있다면 그림 그리는 좌와 술 먹은 죄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림처럼 정확한 나의 분신은 없다. 그림과 술과 나는 삼위일체인 것이다.”(《세대》, 1974년 6월호)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은 술로 휴식하면서, 내가 오로지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은 이것뿐이다.”(《샘터》, 1974년 9월호)   

  

다시 <독>을 본다. 정말이지 구성이 단순하다. 크지 않은 규모(45.1 ×37.7cm)의 그림으로, 중앙에 커다랗고 투박한 모양의 독이 자리 잡고 있다. 흔히 장독대에서 볼 수 있었던 ‘독’이다.(이 독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독 뒤에는 빈 가지만 남은 나목이 서 있다. 나무 뒤로 둥근달이 은은하게 독을 비춘다. 독 앞에는 화가의 분신인 듯, 혹은 친구일지도 모를 까치가 있다. 마치 독과 교감을 나누고 있는 듯하다. 

달과 나무와 까치. 화가의 그림에 언제나 등장하는 주연 배우들이다. 이 배우들의 찰진 연기로, 화가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림 내용은 이뿐이다. 단출하기 그지없다. 평소 ‘나는 단순하다.’라고 했던 화가의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독 짓는 늙은이와 독 짓는 화가

소설 <독 짓는 늙은이>의 주인공 송 영감은 뜨거운 가마 속에서 들려오는 ‘뚜앙 뚜앙’ 독이 터지는 소리를 듣고, 이제 자신은 희망과 존재 의미를 상실했음을 깨닫는다. 그에게 ‘독’은 전통적인 가치의 보루(堡壘)이자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매개체였다. 독 짓는 장인은 스스로 독으로 화신(化身) 하기 위해 천천히 가마 속으로 들어간다.

장욱진은 평생 그림만 그렸다. 그에게 그림은 구원이었고 삶이었다. 그는 ‘독’으로 자신의 내면을 지었다.

<독>에는 장인의 집념과 비장함이 자소상(自畵像)처럼 서려 있다.  


        




<함께 듣는 곡>

Sechs Lieder6개의 가곡, Op.13 No.4 

<Der Mond kommt still gegangen> 달은 고요히 걸어오네. - Clara Schumann


며칠 전 일입니다. 바로 추석날이었지요. 달맞이를 하러  늦은 밤 집을 나섰습니다. 휘영청 둥근달은  집 앞 소나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나무 가지는 동그랗게 팔을 모아 두둥실 달을 품고 있었지요.

나뭇가지 사이에서 그림처럼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달빛.

그 빛은 75년 전 그날 밤으로 잠시 나를 이끕니다. 바람이 서늘한 가을밤, 화가도 나처럼 앞마당을 거닐다 문득 달을 바라보았겠지요. 장독대에는 장을 품은 독들이 보석처럼 반짝반짝했을 겁니다.

달을 보며 화가는 숨이 붙어있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겠노라 맹세를 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180년 전, 한 여인도 달을 보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녀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음악가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이라는 먹구름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했지요.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작곡가나 연주가로 살기보다는 아내와 어머니로 살 것을 당연한 듯 요구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하루에 한 시간도 낼 수 없었던 그녀.


"작곡은 내게 큰 기쁨. 그런 창작의 기쁨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시끄러운 소음이 가득한 생활 속에서 단 한 시간 만이라도 모든 것을 잊고 몰두할 수 있기 때문에"

   -클라라 슈만의 일기장에서


그녀는 음악가 슈만의 아내로 혹은  음악사에서 길이 남을 사랑의 이야기로 알려진 클라라 슈만입니다.

누구보다도 재능이 뛰어난 음악가의 삶을 살고자 했던 그녀. 깊은 밤 그녀가 보았던 달빛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장욱진의 <독>에서 자세히 살펴야 보였던 달처럼  늦은 밤 한가위의 만월은 구름에 가려져 흐릿합니다.

달을 보며 구름에 가려 빛을 잃었던 그녀를 불러봅니다. 

달빛보다  환한 그녀의 예술혼은 그날 그녀에게 은은하게 비추었던 그 빛처럼 아름답습니다.


 

Der Mond kommt still gegangen

Mit seinem gold’nen Schein.

Da schläft in holdem Prangen

Die müde Erde ein.

달은 고요히 걸어옵니다.

금빛의 옷을 입고, 

그 빛에 몸을 맡기고

지친 대지는 잠에 빠집니다.



Und auf den Lüften schwanken

Aus manchem treuen Sinn

Viel tausend Liebesgedanken

Über die Schläfer hin.

그리고 고요한 정적 중에

사랑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부드러운 미풍을 타고 

잠이 든 대지 위에 가득 차오릅니다.




Und drunten im Tale, da funkeln

Die Fenster von Liebchens Haus;

Ich aber blicke im Dunklen

Still in die Welt hinaus.

그리고 계곡아래로  그대의 창문에

불빛이 반짝이는데 

하지만 나는 어둠 속에서 바라봅니다..

고요하게 세상을 향하여.


https://youtu.be/JnoT1BSJHhU?si=MbLLw_sA4aabS3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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