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살 속의 위험
깊은 단잠을 깨운 것은 시끄럽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였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반, 어딘가에서 화재가 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몇 달 전에도 누군가의 조리 실수로 화재 경보가 요란히 울린 적이 있었기 때문에 진짜 대피해야 할 상황인지 아닌지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안내 방송이라도 나온다면 좋을 텐데, 안내 방송은 없었습니다. 아파트의 특성상 불이 번진 후 대피는 쉽지 않기 때문에 우선 상황 파악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에게 혹시 모를 상황에 대피할 준비와 반려묘를 챙겨달라고 부탁하고, 문을 열고 나섰습니다.
엘리베이터 두 대 중 하나는 운행이 중지되었고, 사이렌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보이는 계단을 통해 올라온 관리인이 보여서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정말 불이 난 건가요? 오보인가요?”
“불이 난 것 같아요. “
아저씨도 감지기에서 확인된 호수의 벨을 누르며, 확인 중이었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관리인도 상황 파악 중인가 봐. 우선 나가자. “
아내도 급히 잠옷에 외투만 걸치고 고양이를 데리고 갈 준비를 한 상태였습니다. 크게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에 반려묘는 깜짝 놀라서 울며, 발버둥을 쳤습니다. 이 상태로 나가면, 고양이가 뛰쳐나가며,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고양이를 데리고 나갈 수 있게 띠를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확인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진원지로 보이는 곳에서는 연기도 불길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관리인도 자리를 비운 상태여서 확인할 방법이 없어 경보를 듣고 피신했을 아파트 입구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엘리베이터 1대는 가동 중인데, 정말 화재라면 이용하면 안 될 것 같아 계단으로 내려갔습니다. 입구에는 8명 정도 모여있었습니다. 제 뒤로 한분이 강아지를 유모차에 태우고, 엘리베이터로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화재에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 것도 이상하고, 대피한 사람의 수도 너무 적었습니다. 다들 몸만 간단히 나온 상태였고, 소방서에 문의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몇 분 후 소방서에서 화재경보 오작동이라고 회신 연락을 주어 해프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먼저 안심하라고 전화를 하며, 사람들과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며, 왜 다른 사람들은 내려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5층인데, 혹시 몇 층 사세요? 일부 층만 울린 건가 해서요.”
“5층이요. “
“6층이요.”
“다들 고생하셨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
내리면서 엘리베이터에 눌린 버튼만 확인해도 몇 층인지 바로 알 수 있는데, 너무 놀라서 경황이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많이 놀랐지? “
“아니, 그보다 시일이가(반려묘) 더 놀랐지.“
“관리인이 오보라고 빨리 알려줬어도 이 난리를 안 피웠을 텐데, 이 정도면 사과 방송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
“시간이 늦어서 그렇겠지. 피곤할 텐데 마저 자자. “
다음날도 사과 방송이나 공고문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갑작스러운 사이렌만으로도 이렇게 놀라는데, 요즘은 국가적으로 사이렌이 울리고 있습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도, 언론도 전쟁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북한군의 파병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북한의 오물 풍선은 와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할 수도 있다는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과 한반도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위험이 사이렌을 울리고 있습니다. 화재를 피해 아파트를 벗어날 순 있지만, 전쟁을 피해 나라를 벗어날 순 없는 일입니다.
남북의 긴장 속에 지금이라도 수도권을 피해 남쪽 지방에서 살거나, 이민을 가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합니다. 혼자 산다면,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겠지만, 가족과 떨어져 있는 낮에 무슨 일이 벌어
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뉴스를 보고 안심을 해야 하는데, 더 불안해지곤 합니다.
하루빨리 사이렌이 꺼지고, 평화로운 일상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