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어릴 적엔 게임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가 딱 PC방 문화가 퍼지기 시작할 즈음이었으니, 말해 무엇할까요. 블리자드사의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2', '워크래프트3', 그리고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까지. 당시 PC방은 금연 정책이 시행되지 않을 때라 아저씨들이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매캐한 담배 냄새가 옷에 가득 배는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소리지르며, 모니터 속 게임 세상에 빠져 사는 것이 방과 후의 일상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가 PC방의 태동과 함께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던, 게임들의 황금기였죠.
당시의 게임들은 CD설치 기반이었기에, PC방이 아닌 집에서도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게임 CD들을 구입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습니다.(리니지는 어차피 별도로 요금을 지불해야 게임에 접속할 수 있었으니, 신청하면 설치용 CD가 무료로 배송돼 왔던 것 같습니다.) 당시 스타크래프트 확장팩(브루드워)과 디아블로2 확장팩 CD 발매일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게임 판매사 아저씨에게 매일같이 찾아가 '언제 나와요?'를 물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 것을 보면, 정말로 게임을 좋아하긴 했었나 봅니다. 특히 리니지를 많이 했었는데, 리니지2 출시를 앞두고 플레이 영상을 처음 접했을 때는 정말 그 영상을 백번은 돌려 본 것 같습니다. '와 이건 혁명이다'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네요. (무려 12년전 영상을 유튜브에서 지금 다시 찾아보니, 정말 조악하긴 합니다ㅎ)
초창기 리니지 접속화면_(사진 출처 : 엔씨소프트_리니지M 광고 영상)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게임에서의 과금방식 따위는 걱정의 대상이 아니었죠, 아니 아이템 획득을 위한 과금제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블리자드 사의 스타크래프트나 디아블로와 같이 게임 자체를 판매하는 경우, 게임 CD만 사면 그만인 것이고, 리니지의 경우에도 월 정액(지금 기억으로 29,700원 이었던 것 같은데 맞나 모르겠네요), 그리고 시간제 요금이 별도로 책정되어 있어서 시간에 따른 요금만 지불하면 플레이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소위 '핵'을 이용한 자동사냥의 폐해가 있긴 했고, 게임 계정이나 게임 내 화폐(아데나)를 현금으로 사고 파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긴 했지만, 플레이에 크게 신경쓰일만한 것까지는 아니었죠. 돌이켜보면 당시는 시간과 약간의 돈만 있다면, 게임을 즐기는 데에 충분한 시기였습니다. (20여년 전 PC방의 1시간 가격이 1,000원이었는데, 지금 PC방 가격들은 800원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을 보면, 당시 PC방들이 비싸긴 했었네요... '약간의 돈'은 아니었나 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기숙사에서 지내느라 게임에 집중하기가 힘든 환경이어서(고등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게임과 자연스레 멀어졌는데, 이상하게도 이 시기를 기점으로 게임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것 같습니다. 어릴 적에 너~무도 열심히 한 까닭일까요? 이후 신작 게임들을 접해도 뭐 처음 할 때는 괜찮은데, 딱 거기에 그치는 정도? 두 번은 못하겠더라구요. 그 유명한 '리그 오브 레전드(롤)', '오버워치' 등의 게임들을 친구들의 등쌀에 떠밀려 PC방에서 함께 플레이 해 봐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흥미가 느껴지지 않더라구요. 다들 열광하는 게임들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리니지m' 출시 당시 소개 삽화_(사진 출처 : 엔씨소프트)
그런데 2017년에 리니지1의 감동을 그대로 모바일로 옮겼다는 '리니지m'이 나온다 하더라구요? 'PC에서 느꼈던 그 감동을 폰으로 느낄수 있다니, 당장 해야겠는걸?'이라 생각하며 접속했었는데, 뭔가 제가 아는 리니지와는 많이 달라져 있더군요. 뭐 좀 해보려 하면 추가과금이 필요한 경우가 너무 많았고, 사냥은 왜 또 자동사냥이 거의 기본 세팅인지... 마우스로 컨트롤 해가며 몬스터들을 때리고 도망가고(a.k.a 히트&런)를 반복하며 캐릭터를 육성하던 재미는 온데간데 없고, 과거 핵을 이용한 자동사냥 편법과 모바일 버전에서의 자동사냥 시스템은 별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애정이 있어 1주일 간은 참고 플레이 해 봤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구요, 바로 접었죠. 예전에는 필요한 시간과 정액요금만 있으면 즐겁게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었는데, 이젠 자동사냥과 기괴한 과금방식이 더해지니, '적은 시간과 많은 돈'이 필요한 게임이 되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다른 모바일 게임들도 역시 이와 유사한 BM(Business Model, 즉 과금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한국 게임계는 글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외 게임들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잖아?) 과거 리니지의 추억은, 추억일 뿐이었던 것이죠.
이제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도 게임에 대한 애정이 조금은 남았는지,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는 것은 또 좋아합니다. 얼마 전 게임 영상들을 찾아보다 보니 '리니지w'의 소개 영상이 뜨더라구요? 엔씨소프트의 대장, 우리 '택진이 형' 피셜로는 '마지막 리니지'라는 비정한 심정으로 출시했다는데 글쎄요. 그래픽은 리니지m에 비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사실 평범한 수준이었고,(리니지m의 그래픽 자체가 추억팔이 느낌이라, 좋은 그래픽이 아니었죠) 과금구조가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가 가장 포인트라 생각되더라구요.
'리니지w' 소개 삽화_(사진 출처 : 엔씨소프트)
그리고 26일, 엔씨소프트의 차기작 '블레이드앤소울2'가 먼저 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유저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냉담했죠. '리니지 원툴 돌려막기 회사 어디 안 간다, 과금방식이 어떻게 변화가 없냐?', '이젠 시작부터 과금이 필요하냐?', '설마했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와 같은 유저들의 비난과 조롱 속에 엔씨소프트의 주가도 공교롭게도 폭락하기 시작합니다.
(자료 출처 : 서울경제, 신작 참패에···엔씨소프트 15%↓ '최악의 하루')
시가 -7.29%갭하락을 시작으로, 종가 -15.29%로 마감한 것이죠. 엔씨소프트의 향후 신작 모멘텀이 현재 리니지w 외에는 없다는 점에서, 리니지w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도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옳은 것 같습니다. 너무 심한 과금유도 방식이 문제인 것이겠죠. 요즘의 게임을 거의 제가 직접 하지 않으니 폐해를 잘 알 수는 없지만, 유튜브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영상 몇 개만 찾아봐도 유저들의 분위기를 읽는 데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이건 게임이 아니라, 게임의 탈을 쓴 '도박'이라는 것을요. 시장의 눈은 정확했습니다.
시장의 반응, 그리고 유저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김택진 대표이사의 말처럼 리니지w는 정말로 '마지막 리니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횡보중이지만, 그래도 유례없는 유동성 장세에서 무려 52주 신저가를 기록했으니 말이죠. 그런데 엔씨소프트의 주가가 폭락하는 날, 주가가 폭등하는 다른 게임회사가 눈에 띕니다. 바로 '펄어비스', 게임 '검은사막'으로 유명한 곳이죠. 26일 오늘 펄어비스는 +4.57%로 갭상승하더니, 종가 +25.57%로 마감해 버리네요.(시외단일가에서도 +3.19% 상승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얼마 전 메타버스 관련 테마로 펄어비스의 주가가 급등했던 것은 알고 있었는데, 사실 그땐 유심히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게임회사들이면 한번쯤 메타버스로 엮여서 주가가 뜰 수 있다고만 생각했었죠. 그런데 오늘 펄어비스의 신작 '도깨비(DokeV)'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고 생각이 단번에 바뀌었습니다. 역시 주가가 상승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펄어비스의 신작(예정) '도깨비(DokeV)'_(사진 출처 : 펄어비스)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고 이렇게 설렜던 적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무려 18년 전(도대체 리니지 IP(지적 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하나로 얼마를 우려먹은거야...?) 리니지2의 플레이 영상을 처음 접했을 때의 벅참과 비슷한 느낌이었으니까요. 그간 리니지m, 얼마 전 출시된 '디아블로2 리저렉션' 등의 게임 영상들을 보며 잠깐 설렜던 적도 있지만, 이러한 게임들은 모두 20여년 전의 게임들이 그래픽만 향상되어 재출시 된 것들이니, 사실 추억팔이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지만 도깨비 플레이 영상을 보고 있으니, 이 게임은 제가 알고 있던 한국 게임들과는 그 판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한국에서 본 적 없던 유려한 그래픽과 색감, 오픈월드를 표방하는 높은 자유도와 속도/타격감까지. 뭔가 너무 도깨비를 너무 찬양하는 느낌같긴 한데, 찬양하는 것 맞습니다. 실제 출시 되기 전까지는 그 실질을 알 수 없다 해도, 이 정도의 기대감을 주는 게임을 본 바 없으니, 좋은 점만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식상한 중세 판타지 풍의 온라인 게임이 아닌, '한국'의 모습을 그대로 게임에 옮겨 넣으면서도 이렇게 기대감을 주는 작품이라니요. 설명보다는 영상을 한번 보시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영상 출처 : 펄어비스, 도깨비(DokeV) - 월드 프리미어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 Gamescom 2021)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게다가 요즘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 테마가 화두입니다. 그래서 '네이버 제페토' 등의 메타버스 플랫폼을 사용해 보기도 했으나, 사실 '게임보다 너무 열악한데?'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게임과 메타버스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겠더군요.(산업계와 학계의 통일된 정의가 아직 없고, 온라인 RPG게임도 큰 틀에서는 메타버스라 불러도 의미상 틀리진 않다고 합니다.) 메타버스를 표방하는 여러 플랫폼들의 열악한 구현도를 보며 '게임회사가 메타버스를 하면 더 잘하지 않을까?'라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요즘 게임사들을 눈여겨 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도깨비 플레이 영상을 보는 순간 솔직히 '아... 그냥 얘다' 싶었습니다. 메타버스의 실체에 대해 긴가민가 했던 사람들도 이 영상을 통해, '막연하기만 했던 메타버스가 구현된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시장에서도 '도깨비'의 메타버스 관점에서의 확장성까지 고려하여 펄어비스의 주가에 화답한 듯 합니다. 물론 도깨비의 출시일(미정)이 아직 많이 남았고, 이러한 높은기대감이 펄어비스의 실적에 반영 되기까지도 많은기다림이 필요하기에, 지금의 주가는 무적의 단어 '선반영'으로 설명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현재 시장 상황도 불안불안한 만큼, 지금 높아진 펄어비스의 주가가 오늘 이후로 일정 기간 횡보를 거듭하다 조정을 받을수도 있겠죠. 실적 측면에서도 펄어비스가 당장 엔씨소프트를 추월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앞으로 관심을 갖고 펄어비스를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엔씨소프트의 폭락과, 펄어비스의 폭등이 상존한 오늘, 작은 파장일지라도저는 오늘이 3N(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체제에서 사행성 짙은 게임들을 양산하던 한국 게임계가 바뀌는 분기점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엔씨소프트는 현재 리니지w 외에는 출시 예정인 대형 신작도 없는데, 정말 비장의 수가 없다면 지속적인 주가 하락은 각오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의 반응은 현 게임시장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겠죠.
(자료 출처 : 파이낸셜 뉴스, '신작 효과도 갈렸다… 역풍 맞은 엔씨, 반등 성공한 펄어비스')
게임을 그저 유저들의 과금을 유도하는 비즈니스 수단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유저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플랫폼으로 생각하느냐의 생각의 정도 차이가 오늘 두 게임사의 희비를 가른 것은 아닐까요. 기업의 목적은 물론 영리추구에 있는 만큼, 과금을 통한 영리 추구도 적정선만 유지한다면 괜찮겠지만, 회사 수익의 원천인 유저들에게 게임을 통한 기대와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면,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사업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유저인 저희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벗어난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인데, 무리한 과금으로 현실과 동떨어지지도 못하고, 심지어 즐거움도 얻지 못한다면... 이미 답은 나온 것이 아닐까요?
오늘 뭐 이 글에서 투자를 위한 기업분석을 하고 그럴 목적은 없습니다. 그저 오래 전 애정을 갖고 게임했던 리니지 IP로 대표되는 엔씨소프트의 미래가 암담한 것 같다는 안타까움과, 정말 오랜만에 펄어비스의 도깨비 플레이 영상을 보고 가슴이 뛰었던 희열에 대한 두 가지 감정에 대한 소감을 풀어놓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이 대한민국 게임사들의 판도가 바뀌는 분기점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일기장 마냥 기록해 두고 싶었기도 하구요. 어릴 적 즐겼던 게임들을 만들었던 게임사들이 현재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적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습니다.(여담이지만 미국의 블리자드 사 역시, 사내 성추문 사태로 현재 위기라죠..?) 여러 모로 게임에서의 옛 추억과, 어릴 적 추억에서 벗어나 '투자'의 관점에서 게임사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시선 차이를 체감하게 됩니다.
오늘 펄어비스의 주가가 급등하는 와중에도, 도깨비 플레이 영상을 보고서 홀린 듯 펄어비스의 주식을 '무지성 매매'한 저입니다만... 후회는 없습니다ㅎㅎ 정찰병 수준으로 매수한만큼, 향후 '펄어비스'라는 회사에 대해서도 좀 더 탐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무리한 과금체계에서 벗어나, 본연의 목적인 게임에서의 '즐거움'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