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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드레 Sep 14. 2021

'증명사진'을 다시 찍는다는 것은

[생각이 많아지면, 글을 씁니다] 증명사진을 다시 찍으며

  오랜만에 사진관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이 사진관을 찾는 목적은 저마다 다양하겠죠. 요즘 유행하는 바디프로필 사진을 찍으며 혹독한 체중감량과 자기절제를 거친 자신의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함일수도, 커플사진 혹은 우정사진을 찍으며 서로에 대한 사랑과 우정을 예쁜 사진들로 남기기 위함일수도, 혹은 가족사진을 찍으며 가족 간의 돈독한 정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함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사진들은 보통 사진관에 '혼자' 방문하여 촬영하는 일이 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중심이 되는 바디프로필 사진 역시, 보통은 운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 같이 사진관에 방문하여 촬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음을 생각하면 말이죠.



혼자 사진관을 방문하게 되는 목적은 당장은 두 가지 정도가 생각납니다. 하나는 여권사진을 찍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증명사진'을 찍기 위함이죠. 여권사진이야 대개 공항 출입국관리소 직원분들이 어느 정도 쓱 보고 대조하는 정도로만 사용되고 끝나지만, 증명사진은 그 무게가 조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내가 '잘 보여야'하는 곳들에 제출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인 까닭입니다. 말 그대로 나를 '증명'하기 위한 목적이니 말이죠. 그래서 증명사진을 찍기 위한 목적으로 사진관을 방문할 때는 다른 용도의 사진을 찍을 때와는 달리, 그 발걸음의 무게감이 조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오랜만에 사진관을 찾는 제 마음은 좀 남달랐습니다. 저 역시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을 찾은 것이니까요.




  예전에는 증명사진을 찍을 때 그냥 간단하게 티셔츠만 입고 방문해도, 정장을 입은 모습으로 합성을 시켜주기도 해서 이번에도 그럴까 했는데(합성을 해 주는지의 여부는 사진관마다 조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조금 귀찮더라도 정장 상의를 들고서 사진관에 방문했죠. 뭔가 오랜만이기도 하니 좀 더 제대로 찍고 싶은 생각이었나 봅니다. 사실 취업 이후 증명사진을 찍을 일도 전혀 없었으니까요. 아니 어쩌면 이제는 나이가 들어 외형이 많이 변하지 않는 이상, 증명사진을 굳이 다시 찍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언제건 제가 속한 곳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한번 들고 나니, 제 마음을 다잡기 위한 수단으로 증명사진을 다시 찍자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라구요. 아니 어쩌면 생각이 달라졌다기 보다는, 현실에 안주해선 안 되겠다는 평소의 오랜 생각이 돌연 분출되어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증명사진을 찍자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빠르게 실행으로 옮겼고, 이전과 비교할 때 조금은 달라진 제 모습이 담긴 작은 증명사진들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증명사진을 찍을 때 사진기 앞에서 왜 그렇게도 표정이 굳는 것인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아니 뭐 애초에 사진 찍을 때 표정이 잘 굳는 편이긴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단순히 '사진기' 앞에 앉아 있다고 저의 표정이 굳는 것은 아닐테죠. 사진 작가님이 증명사진 촬영을 하시며 그렇게도 표정을 풀어주시려 애 쓰는데도 불구하고 조금은 굳은 표정의 사진이 결과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증명사진을 찍는 저는 사진기 그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며 표정이 굳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출처 : 연희동 사진관)

사진 속 보일 듯 말 듯한 옅은 미소가 담긴 굳은 표정은, 스스로를 다시 어딘가에 내 보이기 직전, 내면으로부터 비롯된 '긴장감' 때문은 아닐까요? 머리와 옷차림을 단정히 한 스스로를 엄격히 다잡으며 말이죠. 작은 의자에 바른 자세로 앉아 최선의 미소를 지으며 사진기의 렌즈를 바라보는 순간은, 앞으로 나를 평가하게 될 '면접관'의 앞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에 들게 하곤 합니다. 밝은 플래시에 찡그려지는 표정은, 면접관의 날카로운 질문에 대한 고뇌 정도로 표현할 수 있으려나요. 미소를 띈 증명사진 한 장 건지기가 이토록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건가 봅니다.




  증명사진은 시험응시, 인턴, 취업 등 참 많은 결정의 순간들에 항상 저와 함께 해 왔습니다. 그간 많은 증명사진들을 찍었고, 사회의 물을 조금은 먹은 지금도 증명사진 촬영을 위한 카메라 앞에서는 여전히 긴장하는 것을 보면, 참 쉽지 않은 사진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3x4cm 크기의 자그마한 증명사진 한 장을 위해 그토록 옷 매무새와 마음을 가다듬는 것은, 어딘가에 나를 '증명'한다는 사진의 목적과, 사진 속 정갈한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에게 주는 약간의 자신감 혹은 안도감 때문이겠죠.


오랜만에 증명사진을 찍으며 저를 되돌아보고, 스스로를 다잡아 봅니다. 지금 제가 속한 자리가 끝이 아닐 것이기에, 증명사진을 통해 한동안 잊고 있던 건강한 긴장감과 다시 마주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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