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몰츠식 성공체험; 자아를 깨워라
그 당시 케빈이라 코넬, 아이비리그 나온 친구가 있었던데 무척이나 똑똑한데 나에게 대항하는 인물이었다. 비쩍 마른 케빈이 내 말엔 늘 비딱한 태도를 보여 왔었다. 해서 난 늘 저 녀석을 잘라야 돼? 말아야 돼?로 늘 고민 중이었는데, 미국인들은 쉽게 잘라대는 해고를 나에겐 어려웠다. 나중에 역대 사업을 한 미국인들과 인터뷰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늘 이런 걸로 나만 고민하고 있다는 줄 알았었다. 사실 그렇지 않았었다. 누구나 인종을 불문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하여튼 케빈은 나의 고민거리였는데 어느 날부터 고분 고분되게 된 이유가 곰사건이었다. 내가 자길 구해 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켄터키는 픽업트럭에 총을 운전수 뒤선반에 긴 총을 가지고 다닌다. 그만큼 사냥을 수시로 즐긴다.
하루는 연후가 낀 날이 있어서 회사에서 간부들만 산타기로 하고 아파라치안 산맥 끝자리 산행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산중턱 올라갔을 쯤에 공교롭게 케빈이 가는 길 앞에 곰이 나타냈다. 이 곰이 자가 가족을 잃고 다니다가 케빈이랑 맞닥뜨린 것이었다. 소리를 얼마나 질러댔는지? 산에 모든 짐승들이 놀랐을 것이다. 놀란 케빈이 하필 나있는 곳으로 도망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사냥 좋아하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아무도 총을 소지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산을 타면 꼭 지팡이를 챙기는 버릇 있었다. 그날 운 좋게 나에게 산밑에서 주어 올라온던 아주 든든하고 기다란 몽둥이를 손에 있었다. 케빈을 쫓아오던 까만 곰이 가까이 보니 사이즈가 새끼 곰은 아니고 중간 정도였는데 곰의 눈엔 독기가 없는 걸로 미루워 보면 아마 곰도 놀래서 쫓아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놈이 내 앞에 바로 5미터 전방에서 데려오다가 갑자기 섰다. 그러더니 모둥일 들고 있는 버티기고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더니 그냥 돌아서 가버렸다. 아마 케빈의 비명소리에 곰도 놀래서 반응한 모양이었다. 곰은 까만 놈과 붉은 놈이 있는데 까만 곰으로 사람을 해하지 않는 곰이고 진짜 무서운 것은 곰은 붉은 곰인데 사람을 해친다고 알고 있었다. 사고는 없었는데 케빈은 곰이 돌아간 한참 뒤까지 사지를 벌벌 떨고 있었다. 쫒던 곰이 갔단 얘기를 해줘도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질 못했다. 그가 오줌을 안 저린 게 다행일 정도였다. 내려갈 때도 다리가 후둘거리다면서 우리 행렬을 몇 번이나 쉬게 했는데 난 이런 케빈을 본 적이 없었다. 평상시 똘똘하기론 둘째가라면 서운해할 케빈이 이 정도로 겁이 있는 줄 몰랐다. 일단 이렇다 저렇다 따지기 전에 일어난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그래서 난 케빈 옆에 붙어서 같이 내려갔다. 그렇게 보호해 주는 것이 케빈한텐 감사했던 모양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케빈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나는 얼떨결에 공장장이 되었고 순순 혈통 미국인 1,000여 명 정도 운영해야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그리고 예상했던 기일보다 앞당겨서 결국 성공시켰다. 나는 그전에도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필리핀, 이태리 그리고 켄터키가 막 끝났고 미국 동부 뉴저지 지역은 아직일 때였다. 필리핀이나 이태리는 셋업만 해놓으면 턴키베이스( Turn-Key Base)였기 때문에 공장을 시범운전 해준 다음 인수자에게 인계만 해주면 되는 것이었는데 켄터키는 운영까지 해야 했었다. 이 운영을 하면서 공성(창업)과 수성(운영)이 얼마만큼 다른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분명 한국사람이고 타고난 DNA에 무슨 일이든지 빨리빨리 하는 게 있었다. 모든 프로젝트는 시간을 넘어서한 적이 없었다. 기간을 앞당겨 마무리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회사은 이런 날 좋아했다. 그리고 이미 말했듯이 뭐든 나는 빨리빨리 일을 해치운다. 해치웠다는 표현이 맞는 표현이었다. 사격장에서 타깃을 맞추어 떨어뜨려 내듯이 했다. 모두일을 예상 완료일 전까지 완벽하고 똑소리 나게 마무리했고 이런 성공들은 회사엔 막대한 이익을 주었다. 그게 또 나를 지탱시켜 주는 커다란 자존감이기도 했다. 맛바람에 게눈 감춘듯한 프로젝트는 어느 경지에 올랐는데 운영에선 생각지도 못한 매복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러니 공성과 수성이 다르듯이 창업을 잘 한대고 해서 반드시 운영도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닌걸 톡톡히 돈과 땀을 흘리면서 배우는 시간이었다.
잘 나가는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이 안전사고율이었다. 우리 회사에선 안전사고율이 말할 수 없이 높았다. 15개의 공장이 있었는데 우리 공장의 안전율 수치가 가장 높았다. 우리 공장이 재무제표상으로 흑자운영을 돌아 섰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장은 보험회사에서 지정한 안전 수율을 못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 보험비용을 빼면 사실 우리 공장은 마이너스경영이었다. 이걸 못 잡으면 난 스스로 옷을 벗어야 할 입장이었다 공장장도 처음이지만 난 이런 한가한 일에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운영이란 개념이 내 머릿속에 정리조차 되어 있지 않아서 그 당시엔 이런 운영일을 하찮게 여기는 한심한 공장장이었다. 굵직굵직한 건 잘하는데, 이런 디테일에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도 그리고 경험도 풍부했던 것이 아니어서 걸쩍지근하게 시간만 소진하고 있었다. 케빈도 곰 사건 이후로 옛날 케빈과 다르게 삐죽거리던 태도가 없었졌다. 그렇다면 나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일을 케빈에게 맡겨 볼까도 생각했다. 일단 그 사무실로 향했다. 결정도 확실하지 않지만 운이라도 띄어 보려 했다. 부탁하는 게 익숙지 못하던 나는 말을 붙였다.
“헤이 케빈 말이지”
“응 뭐~”
“그거 안전사고율이 ….”
“알고 있어 존”
“그거 케빈이 제격일 것 같아 부탁 좀 ……”
이렇게 내가 못한다는 걸 인정하고 도와 달라 해본 적이 없었다. 일을 해결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여서 나의 강한 자존심으로 일을 지연할 수가 없었다. 아내 말고 뭘 해달라고 요청해 본 적도 없지만 미국직장생홀을 하면서 미국인에게 이런 식으로 개인 부탁을 해본 적은 없어서 참으로 체면상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응 알았어 존! 어디 내가 해볼게”
이리도 쉽게 대답이 나올 줄이야. 이 친구가 아직도 곰에게서 자길 구해준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흥 쾌한 대답을 들은 나는 기분이 일단 좋았다. 나도 모르게 마른 체구의 케빈을 포옹해 주었다. 미국인들은 자기 경계선을 철저히 지키다가도 맘이 하나가 되면 포옹하는 것은 서로가 허용되는 일이었다. 그 친구가 나에게 힘을 실어주기 시작하자 내의 프로젝트는 아주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부터 안전수율을 잡지 못했다. 일 을 시키고도 몇 번인가 사람잘못 썼나? 란 생각으로 머릿속에 꽉 차 있었다. 내 예상대로 안전율이 떨어지지 않을 땐 내가 다시 나야 하는 게 않나? 하며 몇 번이나 망설려었는데 케빈과 곰사건 이후부터 좋아진 사이라서 다시 내가 나선 다면 속 좁은 케빈을 영영 내편으로 만들지 못할 것 같아서 입을 꽉 다물고 견디고도 견디였다. 그러고 있는 케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을 보였다.
위험한 s커브
케벤은 직원을 불러서 주기적으로 미팅을 했다. 그리곤 직원들 곁에서 같이 일하면서 모두가 목표를 정확히 숙지했는지 확인 후에 그 과제를 완수토록 격려했다. 나처럼 주문량을 던져 놓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고 케빈은 완전히 코오칭을 했다. 팀원들을 불러 모아서 다시 그들이 희망하는 작전과 목표치를 정했다. 그리고 다시 현장에 투입해서 그들의 역량을 발휘토록 하는 일을 반복시켰다. 새로 세운일이 익숙해질 때까지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반복하는 걸 감독했다. 그리고 팀윜( TeamWork)을 한다면서 자기 내들끼리 운동도 하고 사냥도 다니기도 했고 어느 날은 잡은 사슴고기를 내게 갖다 주기도 했다. 그들이 자기 역량을 스스로 발휘할 수 있게 불만도 풀어 주고 그들이 전략을 스스로 짰다. 만약 돈이 필요하면 승인만 해주고, 전략 싸움은 그들이 했다. 이게 늦은 것처럼 보여도 한번 먹혀 들어가기 시작하니까 이게 시스템이 되어서 누가 건들지 않아도 시스템이 알아서 놀아갔다. 안전사고율이 서서히 떨어지지 시작했고 회사 직원들은 최대 생산했다는 자부심보다 안전율의 숫자가 낮아지는 것이 더 자랑스러워했고 그걸로 하나가 되어 갔다. 그 안전율이 예상했던 수치를 얻을 때마다 회사 안에서 작은 파티를 했다. 그런데 이 방법은 베스트셀러인 “무기가 되는 시스템”의 저자 도널드 밀러가 말한 “관리 및 생산성 간소화”과 흡사했다. 이렇게 세상엔 작가, 밀러 같은 천재들을 책을 통해서 만난다. 이런 이들은 하버드대나 프린스톤대 같은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도 타고난 천재들이었다. 이들이 던 진 한마디는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에게 특히 나에겐 정말 몇 년을 고생해서 배울까말까한 걸 참 너무 쉽게 가르쳐주었다. 다음에 보이는 요점은 "이 핵심은 [도널드 밀러]의 [무기가 되는 시스템]에서 재구성하고 나의 경험을 추가하여 요약한 것입니다."
창업이나 신생프로젝트는 동일하게 처음엔 S를 그린다. S자가 필기체 작은 s자이다. 첨엔 팍 차고 미치듯이 시제품이 판매가 올라갔다가 어느 시간이 지난 선 팍~ 하고 곤두박질하는 커브를 만든다. 창업 초창기엔 얼리 어탑터(Early Adaptor) 고객들이 구매를 하기 때문에 이런 매상이 올라간다. 얼리어탑더(Early Adaptor)고객 들은 늘 새로움 제품이나 기술을 남보다 먼저 사용해야 직성이 풀리는 부류들이어서 새로운 스마트폰이 나오면 새벽매장에 줄을 서는 사람들이 바로 얼리 어답터이다. 문젠 이런 현상이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기희한 현상이지만 매출이 올라가기 때문에 일할 사람이 당장필요하고. 직원을 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설상가상 사람이 더 고용되면 사무실 공간을 좁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사무실을 늘일 수밖에 없다. 이 기희한 현상에 맞혀 투자를 더하기로 맘먹고 돈을 더 집어넣은 순간부턴 얼리어탑더(Early Adaptor)고객이 썰물처럼 빠진다. 얼리어탑더(Early Adaptor)고객이 빠진 바닷가엔 높은 인건비과 비싼 사무실 임대비만 씨뻘간 갯벌처럼 남고, 그때부턴 손가락 빠고 있다가 멸절하는 초단기성 행성이 되는 비즈니스가 비일 비재하다. 그런 그 사이클이 신생프로젝트도 아주 동일했다. 기한 내에 성공해야 하기 때문에 내내 밀어붙치기 식으로 일단 이루어 놓은 후엔 그 후에 발생하는 일에 대책에 관해선 전무했다.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모든 크고 작은 불만, 불평, 부조리, 그리고 비효율적인 운영들이 부상하며 운영단계 진입을 집요하게 막아선다. 그중에 제일 큰 문제가 안정사교율과 과다 지출비용 등 등이 있다. 그러니 다음 정산 운용 시 진입로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엔 다른 방도가 없다. 창업은 인건비나 사무실 임대등 고정비를 지출을 일시적으로 치쏟은 환상적인 매상에 맞추질 말아야 한다. 또 신생프로젝트는 완성한 자가 지휘관 모드에서 다른 모드, 즉 코오칭모드로 바꾸어야 한다. 코오칭모드가 갑자기 불가능했던 난 다른 사람, 즉 케빈 같은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람 바뀌기가 쉽지 않다는 걸 그전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난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면에선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님을 알고 있었고, 또 내가 새 교육을 받아들려서 바뀌는 것보다 실력 있는 사람을 발굴해서 사용하는 것이 더 빨리 일이 진척되는 걸 알았다. 프로젝트, 또는 창업하는 자는 100미터 단거리 주자이다. 즉 100미터 단거리 주자가 마라톤을 뛴다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100미터 뛴 선수가 42.195킬로로 못 뛸 리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오니, 나는 일이 진행하고 있는 중에도 케빈을 멈춰 세우려고 몇 번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다. 그때의 고민은 내가 하던 프로젝트가 개판이 될 때 견디는 곤경만큼이나 힘든 시기였다. 더욱이 그런 경험이 나에겐 없었기에 더 힘들었다. 내가 북 치고 장구 칠 땐 그래도 스트레스라도 해소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치던 북은 던져버리고 장구는 남에게 줘버린 후엔 양반 행세로 다리 꼬고 앉아 참혹한 광경을 목도하기란 엄청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우리 회사 목표 안전사고율에만 주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집착, 안달 남, 딸딸거림 있을 때마다 몰츠박사의 상상을 통해서 그 고통스러운 스트레스에서 그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시간이 좀 지나선 케빈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내가 원하던 안전수율도 얻었다. 아마 케빈을 스톱시겼다면 회사도 엉망이 되고 케빈도 잃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그전에 내가 먼저 해고당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