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세월을 보내는 법
2016년 3월 9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인간 바둑 최고수 이세돌 9단의 대결이 펼쳐졌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진 이 대결에서 이세돌은 3국까지 내리진 후, 4국에서 '신의 한 수'를 두었고, 알파고는 버그를 일으켜 패배한다.
지금은 은퇴한 알파고의 통산 전적은 73승 1패다. 이세돌 9단이 기록한 1승이 알파고를 이긴 처음이자 마지막 승부가 된 셈이다.
아직도 그 장면이 머리 속에 선명하다. 마치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펼쳐진 일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사이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그때의 낯설던 AI가 지금은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죽하면 10대는 시속 10km, 20대는 20km으로 흘러가다가 50대는 50km, 60대는 60km로 나이에 비례해서 가속이 된다는 농담이 있겠나.
과학자들은 이것이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뇌의 작용이라고 설명한다.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수록 뇌는 시간을 압축해 기억하기 때문에 어릴 때는 하루가 길게 느껴지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앞으로 10년,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조직에 속해 있을 때는 회사의 일정과 목표를 따라가다 보면 개인의 시간도 함께 흘러간다. 하지만 나 같은 은퇴자나 프리랜서들은 스스로 계획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시간을 보내게 될 수도 있다. 주변에 길라잡이가 없을 때 간혹 길을 잘못 들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끔 조직 속 사람들을 만나 보면, 조직 밖의 사람들보다 긴장감이 덜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런 데서 연유한다. 각자가 처한 위치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호기심은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 조급함을 초래하기도 한다. 지금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10년 전 알파고의 등장에 충격을 받고 인공지능 분야로 방향을 바꾼 사람들이 있다. '알파고 키즈'라고 불리는 이들인데 현재 AI관련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당시 그들은 자신이 하던 일, 전공, 직장에서 관심을 AI로 돌렸고, 그렇게 흐른 시간은 새로운 인생을 선물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나.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바둑에서나 벌어지는 일이겠지' 하고 말았을 테고, 그렇게 자신의 생업에 충실하다 AI세상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목표가 없이 살아가는 것도 문제지만, 먼 미래의 목표에 과도하게 집착해 일희일비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10년 시간 사이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나타날 것이며, 그 속에서 어떤 우연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지난 10년을 돌아봐도, 그 세월 속에 크고 작은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이 오늘의 현재를 받치고 있다.
이솝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농부가 밭을 갈다가 우연히 금 항아리를 발견했다. 행운의 여신이 나타나 자신에게 감사하라고 말하자 농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그저 밭을 갈고 있었을 뿐입니다.”
결국 행운은 특별한 계획 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의 일상 속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퇴임한 한 임원이 새 명함이 생겼다면서 명함을 건넨다. 명함에는 현재의 직책이 한 줄 적혀 있고 나머지 두 줄은 과거 본인의 직책을 주~욱 나열해 둔 게 눈에 띈다. 과거를 기억하고 싶고, 그 과거가 앞으로 살아갈 날을 받쳐주리라는 믿음이었으려니 한다. 둘 다 이해가 간다.
하지만 과거의 직함은 결국 조용히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과거에 집착하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가급적이면 빨리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준비일지 모른다.
내 노트북에는 보일 듯 말듯한 글씨로 적혀 있는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 있다. 아마도 3년전 쯤 붙여 둔 것 같은데 오늘 다시 눈이 간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