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신들의 정원을 거닐다.
오랫동안 그리워했다. 마음 깊숙히 감추고 있던 첫사랑의 기억처럼. 자바의 여신이 돌아오라고 불렀다 그래도 한동안 잊은척하며 살았다.
십여 년 전 자카르타에 살았다. 종종 발리에 가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훗날 오랫동안 내가 그토록 그리워할 줄.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항상 다른 곳을 바람처럼 스칠 뿐 나의 바람은 그곳을 향하지는 않았다. 심지에 다시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와 반둥은 갔어도 발리는 그냥 스쳤다. 인도네시아는 그런 말이 있다. 살다가 떠난 사람들도 자바의 여신이 부르면 결국 언젠가는 돌아온다고.
그랬을까? 11월부터 발리를 생각했다. 그립다고. 오랫동안 기다려왔다고.
자바의 여신에게 응답하기로 했다.
'그래 만날 결심을 해 보자.'
마음의 우기에 접어든 나는 1월. 우기의 발리를 만나기로 했다. 가기 전까지 곡절은 많았다. 카오스를 거처 코스모스를 통과한 후 피스를 선물하기로 했다.
10시.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했다. 난기류를 만나기는 했지만 일상의 난기류에 비하면 ' 그까짓 거'이다.
어두운 밤 달려들어 랩처럼 감싸는 습기와 칵테일 된 꽃항기와 아몬드류 견과류 향이 아니 코코넛 향인가? 어쨌든 뒤섞인 발리 특유의 달콤한 향이 가득하다.
발리 그리웠다. 오랫동안 감춰둔 첫사랑을 만나듯 나는 발리를 만났다.
하룻밤은 자티코티지에서 머물기로 했다. 12시가 넘은 발리스타일의 숙소였다.
우붓 마야로 가기 전 하룻밤이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기 대 이상이었다.
불을 횐이 밝힌 채 기다리고 있던 자티코티지.
하룻밤 잘 부탁한다. 나는 두 손을 모으며 발리식 인사를 했다.
아침에 오리 무리들이 귀엽게 인사를 한다.
인생은 어차피 제 멋대로인데 그 안에서 잘 살아보자.
오리들을 보며 생각했다.
밤의 풀벌레 소리가 쇼팽의 녹턴 저리 가라였는데 아침의 새소리는 무해한 자연의 왈츠이다.
창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갔다. 아침부터 핑크빛 꽃이 나를 빼꼼히 보며 웃는다. 그래 이거지. 서울은 한파라는데 너는 여전히 해맑은 핑크구나 반갑다. 발리에서는 나도 모르게 자연의 모든 생물, 심지어 사물과도 대화를 하는 수다 쟁이가 된다
꽃을 단 발리의 코끼리 신마저도 귀여운 아침이다.
골목을 돌아 찾아낸 카페에서 커피와 아침으로 락사를 주문했다. 모든 것이 천천히 돌아간다. 시간도 바람도 그리고 나도. 무위도식을 실천해 보기로 한다.
발리의 신들은 귀엽다. 우리의 신들처럼 위협적이도 않고 협박하지도 않고 회계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매일 아침 바치는 플라워바스켓만으로도 기뻐한다. 풀로 만든 바구니 안에 사탕과 약간의 쿠기와 노랑과 분홍의 꽃들이 담긴 아침공물이 계단과 집 앞 그리고 길거리에 즐비하다. 알록달록한 그것 자체로 신성한 기쁨이 찬란한 햇살 아래서 빛난다. 노란 꽃을 좋아하는 발리의 신은 발리의 햇살을 타고 골목골목을 돌며 온종일 기쁨으로 축복한다.
어쩌면 발리는 작은 감사로 가득한 신들의 정원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