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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호 May 05. 2023

내가 극복하고 싶은 3가지

극복하고 싶은 게 3가지뿐일까

나는 잘하는 거보다 못하는 게 훨씬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다재다능한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부럽다.

정확하게는 거침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시키는 것이 부럽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극복하고 싶은 것이 항상 있었고 그중에 인생을 살면서 크게 극복하고 싶은 것이 3가지 정도 있었다. 첫 번째는 극복을 하였고 두 번째는 극복 중이며 세 번째는 앞으로 차차 극복해 나갈 예정이다.


내가 살면서 극복하고 싶은 3가지 중 첫 번째는 독서하는 습관이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기억도 나지 않는 어렸을 때의 나는 책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세상에 책 보다 재미난 것들이 더 많아서였을까. 나와 책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아예 독서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문득 언제까지 독서하는 습관을 회피하며 살 순 없지 않는가. 한번 부딪혀보자. 바꿔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식한 것이 용감하다고 당시 우리 학교 내에 있던 동아리 중 도서부에 지원하였다.

그 당시 내가 도서부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냐면 도서부에 가면 독서를 많이 하는 줄 알았으니 말을 다 했다.

도서부는 말 그래도 독서부가 아니라 도서부였다.

도서부는 교내 학생들이 도서 대출과 반납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 주고 신간 도서 작업부터 서가 정리까지 말 그대로 도서에 관한 일을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곳에 지원을 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 와중에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도서부 부장이라는 직책까지 맡아 더 웃픈 상황이 되었다.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단시간에 독서를 하는 습관을 가지진 못했지만 사이가 멀어졌던 책과 친해지는 기회가 되었다. 밑도 끝도 없는 독서에 대한 거부감으로부터 탈피한 셈이었다. 그러다 대학교 때부터 자발적으로 도서관에 가기 시작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담당 업무로 크게 바쁘지 않은 한 매달 2권씩을 꼬박꼬박 독서를 하였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극복기가 성공한 것이었다.


내가 살면서 극복하고 싶은 3가지 중 두 번째는 영어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진짜 영어를 못한다. 학창 시절 당시 나는 국어, 영어보다 수학을, 사회보다 과학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문과가 아닌 이과 과정을 밟았다. 그때의 나는 언어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고 수학처럼 답이 딱딱 떨어지는 게 더 좋았다.

그런데 이런 내가 지금은 글을 쓰다고 있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일이다.

어쨌든 나는 영어를 너무너무 못하기에 꼭 이걸 극복하고 싶었다.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영어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정도는 됐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너무 높은 기준점을 잡은 줄 안다. 그냥 나의 소망이다.)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한 것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이다. 17년에 구몬영어를 시작으로 20년부터는 전화영어를 일주일에 2번씩 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주 기초적인 문장이 겨우 들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스몰토크 정도는 알아듣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스피킹은 쉽게 실력이 느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울증으로 투병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해던 무기력증과 피로감, 우울증상들이 점차 집중력 저하로 확대되기 시작하면서 집중도를 요하는 업무와 영어공부에도 타격이 왔다.

갈수록 집중력 저하가 심해져서 몸은 그 자리에 있지만 영혼은 집과 회사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 눈 떠있는 유체이탈(?)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업무의 능률도는 떨어지고 10분 동안 하는 전화영어 수업조차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업연기를 하기 시작했고 물론 보강수업은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수업을 이어가 보려고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시간만 때우는 수업 태도가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후 일을 쉬고 나서 떨어진 체력을 회복하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원활한 배변활동하는 데에만 신경 썼다.

그랬더니 일을 쉬고 한 달 만에 몸을 움직이고 집 밖을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컨디션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직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온 게 아니니 계속 휴식을 취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하루를 오로지 쉬는 것만으로 보내는 게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내가 지금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 수업연기를 해놓은 전화영어의 보강수업을 잡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의 집중력이 돌아왔을까. 안 돌아왔으면 그냥 쉬어야지. 돌아왔으면 어느 정도 일까. 한번 해보고 결정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한동안 쉬다가 다시 시작한 수업이다 보니 처음 수업받는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적응을 해야 하는 기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리고 하루 중에 10분만 바짝 집중하면 되니 생각보다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대신 수업을 위한 보충공부를 못해서 아쉬웠다. 그것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언어는 평생 가지고 가는 숙제이자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하루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씩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말하고 싶은 걸 영어로 자유롭게 말할 그날이 올 거라 믿는다.


내가 살면서 극복하고 싶은 3가지 중 마지막은 수영이다.

나는 수영을 아예 못한다. 그래서 물놀이를 가면 꼭 튜브가 있어야 물에 들어갈 수 있다.

누구나 어렸을 적 한 번쯤 계곡에 빠져본 적 있지 않나?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가 평생 간다는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나도 초등학교 6학년 때 계곡 물에 빠진 경험이 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물이 무서울까?

물에 빠질 당시의 나는 튜브 없이 계곡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쑥 하고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아마 계곡의 특성상 바닥이 울퉁불퉁하기에 순간적으로 수심이 깊은 곳으로 빠진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나는 눈을 뜨고 위를 쳐다봤는데 눈앞에서 물이 찰랑찰랑 거리고 있고 발은 땅에 닿질 않고 조금만 내 몸이 떠오르면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나를 누가 잡아당기듯 나의 몸이 물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팔을 휘저어도 나아가지질 않고 친구들마저 내가 물에 빠진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제발 발이 땅에 닿기를 바라면서 팔을 이리저리 저었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발이 땅에 닿자마자 발을 차서 물 위로 올라왔다.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그렇게 집으로 왔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나는 내 발이 닿지 않는 수심에서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는 행위를 하지 못한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수영 못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10명이면 10명 다 수영을 배워. 생존수영은 할 줄 알아야 해.라고 말을 한다. 나도 머리로는 안다. 몸에 힘을 빼야 물 위로 몸이 뜬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선뜻 발길이 수영장으로 향하지를 않는다.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생각한다.

하지만 독서하는 습관처럼, 내 생각을 영어로 말하고 싶어 공부하는 것처럼 수영 또한 언제까지 이러고 살 순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살면서 언젠가는 내가 수영을 극복하기 위해 마주하는 순간이 올 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수영을 열심히 배워서 자유롭게 물속에서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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