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주치의 선생님께 못다 한 말

by 김지호

선생님 갑자기 글을 읽어달라고 해서 당황스러우실 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말로 설명하기에는 힘이 들어서 글로 대신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저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에 많이 지친 것 같습니다.

이번 시즌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저를 이용하려고 마음을 먹고 이용을 하는 것인지 어쩌다 보니 이용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이 되지 않지만 그런 상황들에 또 제가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일에 화가 나지도 않고 분노하지도 않는 제 자신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작년 3월에 건축사 자격시험을 응시하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어쩌다 내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억울하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방치한 제 자신에게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바닥을 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지금까지 하였습니다. 이 일이 좋아서 이 업을 선택하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 일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지 않아요. 제가 느끼기에 제 사랑이 끝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즌마다 받는 스트레스를 스스로 이겨낼 자신도 에너지도 이젠 더 이상 없어요. 이제는 제가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마음의 결정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다음을 준비하지 않고 그만두진 않을 거예요. 완벽하진 않겠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준비할 때까지는 지금처럼 치료받으면서 일상생활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결정을 내렸더니 오히려 모든 게 차분해지고 초연해지는 거 같아요. 덧붙이자면 책을 읽고 글 쓰는 과정은 꾸준히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생각입니다. 그것이 이때까지 제가 해 온 일을 할 때만큼 저를 재밌게 하고 설레게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오랜 시간 꾸준히 해온 일이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계속할 거 같아요.

올해 상반기 대부분의 시간들이 지루하고 심심했습니다. 그 감정을 느끼고 소화시키는 과정이 조금은 생소하고 힘들었습니다. 여전히 감정을 처리하는 과정이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시즌에서도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이려고 했지만 결국 또 스트레스를 받고 잠을 못 자고 술로 풀고 그런 상황에 놓이면서 마음이 많이 무너진 것 같습니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만 그 과정이 여전히 힘듭니다.

그리고 전 남자친구는 완전히 관계를 정리했어요. 더 이상은 질질 끌 수 없어서 완벽하게 정리를 했고 지금은 새로운 이성친구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새로운 친구와의 관계에서는 서로가 많은 위로를 주고받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솔직할 수 있는 관계라서 제가 심리적으로 많이 편한 것 같아요. 제가 이별을 고민하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그러셨잖아요. 헤어지면 외롭지 않겠느냐고 그때 저는 외로움을 피하고자 괴로움을 택하진 않겠다고 했는데 그 선택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저는 외롭지만 그래도 저를 더 이상 힘들게 하는 상황에 놓이게 하고 싶진 않았어요. 부담스러웠던 관계를 정리하고 나니 한결 편해진 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약간 변화한 점이 있는데 제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는 하시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셨던 어머니께서 저를 관찰하시기 시작했어요.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도 제 인간관계에서도 저는 관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저도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고 제가 그 구심점 역할을 함으로써 그날의 그 모임의 분위기가 좋아지는 걸 알고 있고 인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그날의 일정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물론 저도 그 시간들이 즐겁고 재밌긴 하지만, 솔직히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많이 힘들어해요. 때로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순간에 제 에너지가 안 받쳐주면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요. 그런 부분을 어머니가 캐치하셨고 저에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 과정에서 나를 관찰하기 시작함에 큰 위로를 받았어요. 나도 누군가의 사랑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일을 쉼으로 인해서 회사 내에서 저의 이미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엉망인 사람이었는데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가 그렇게까지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나 봐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어떤 분들은 종종 저의 판단력과 사건을 보는 제 시선을 많이 여쭤보시기도 해요.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위로를 받고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존재의 가치를 많이 되찾은 것도 있어요.

이런 일련의 일들 속에서 작년 3월보다는 스스로 많이 단단해짐을 느껴요. 그땐 정말 주저앉고 엉엉 울었다면 지금은 할 말 다하면서 눈물을 또르르 흘리는 정도랄까요.... 여전히 이겨내고 버텨내고 지나가야 할 것으로 이 많겠지만 사람이 좋은 일만 또 나쁜 일만은 일어나지 않나 봐요.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면 다 지나가게 되는 일 같아요. 종국에는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 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을 만나고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지냈었는지 돌아볼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 속에서 저도 몰랐던 저를 많이 발견하게 되었어요. 드라마 '악귀'에서 주인공인 선영이 했던 내레이션이 있어요.

"나는 왜 누굴 위해 스스로에게 가혹했을까.

어둠 속으로 날 몰아세운 얼굴은 나의 얼굴이었어.

내가 날 죽이고 있었어.

그걸 깨닫고 나니 죽을 수가 없었어.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택할 거야.

온전히 나의 의지로 살아가볼 거야."


저도 그런 마음으로 다시 한번 살아가볼게요. 포기하지 않을게요. 옆에서 계속 지켜봐 주세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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