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추석 연휴가 끝났다. 맞다. 연휴가 끝나고 서울로 상행하는 열차 안에서 난 지금 일기를 쓰고 있다. 열차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 충전기와 휴대폰 충전기를 꽂은 채 안락하게.
블로그에 포스팅 하나 하려고 했는데 사진 업로드가 느렸다. 느리다 못해 안 되기까지 하여 블로그는 껐다. 서울로 올라가는 2시간을 어떻게 알뜰하게 보낼까. 아니, 어떻게 빨리 지나가게 만들까 고민하다 그냥 일기나 쓰기로 했다. 이게 시간을 오래 차지하지도 않긴 하지만 나름 시간이 쑥, 가기도 하고
꾸준히 쓰러면 이럴 때를 놓치면 안 되기도 했다. 아침엔 진격의 거인 마지막 화를 보았다. 파이널 전편과 후편을 봤는데 각각 1시간 분량이었다. 그렇기에 아침부터 2시간 러닝타임의 영화를 본 것과 다름 없다. 그리고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한테 들킬까 봐 소리를 최대한 숨 죽인 채 울었다.
최근 <소년시절의 너>를 봤는데 사실 그것보다 더 울었다. <진격의 거인>의 경우 이미 완결까지 봤던 만화인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보고 싶었고 2주 전부터 난 만화에 중독되었다. 사실 만화로는 봤지만 애니로는 그 동안 안 봤기에 어떻게 보면 처음이었다.
좋아하는 만화가 많지만 진격의 거인은 정말 잘 만든 만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헬스 유튜브가 자신의 구독자들 애칭을 조사병단(맞나)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채널명은 혀크예거였나. 만화 주인공 이름이 엘런 예거인 탓인 거 같은데
'심장을 바쳐라'라는 말과 주먹으로 심장을 가리키는 경례 포즈는 멋있다. 그냥 푹 빠져 버렸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봤다. 시조 유미르와 미카사의 선택, 모든 걸 알면서 행한 엘런. 1화부터 깔린 복선과 수거. 완벽한 결말. 전쟁, 인간에 대한 고증과 생각할 거리 등등.
아, 너무 예찬하고 있다. 멈춰야지. 덕분에 최근에 나태해지고 잡일에 집중도 못했는데 이젠 다른 데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밥 먹을 때마다 보던 <진격의 거인>이 벌써 그리워질 것만 같고
태풍이 오고 있었다. 내일부터 예정된 비 소식에 벌써 겨울이 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뭔가 비 내리고 나면 확 추워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여름- 겨울만 존재하게 되는 건 아닐까. 분명 지금은 가을인데 날씨는 여름이고 폭염주의가 뜨고 있으니까
낮에 잠깐 옷을 갈아입고 사진을 찍었다. 어떤 드라마에 단역으로 참여하게 되어서다. 현재모습을 찍어달라는 캐디 말에 빠르게 씻고 환복했다. 잠깐 낮에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옷은 땀으로 흥건했다.
어젠 잠이산에 올랐다. 잠이산은 일제강점기 때 비봉산?으로 이름이 바꼈다고 했다. 아닐 수도 있다. 사실 산 이름이 잘 기억 안 난다. 어쨌든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올랐다고 해도 10분 등산했나. 정상보단 그냥 전망대라고 하는 게 적절할 거 같은데
그곳은 잠자리가 넘치는 곳이라고 했다. 비포장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나오는 험한 길이기도 하고.
그런데 비가 예정된 탓인지 잠자리가 별로 보이질 않았다. 해가 떠야 잠자리가 모인다는 아빠 말에 구름 저편을 봤다. 구름에 가려진 해. 햇볕은 상주만을 쐬고 있었다. 의성까진 닿지 않았고
해를 지켜보다 잠들었다. 30분을 잤나. 가슴팍에 개미가 물었는지 가려웠다. 바위는 따뜻했고 하늘은 어두워졌고 흐릿했다. 몇 시간 뒤면 정말 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도 잠자리 떼도 보지 못한 채 하산했다. 아빠는 내 운을 시험해보자고 했는데
해가 뜨질 않았으니 내 운은 별로인 듯했다. 어째 사주 같은 느낌이다.
돌아가는 길엔 도청에서 샤브향을 들렀다. 안동에서 들릴까 하다가 프렌차이즈니까 똑같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스타벅스에 들리고 다이소에 들리고 저녁으로 샤브샤브를 먹고 귀가했다. 저녁을 먹고나자 비가 내렸고 빗길은 운전하기 별로였다. 차선이 보이질 않아 피로도가 쌓였다.
심지어 도로가 살짝 잠기기까지 해서 강제 수중양륙을 즐기며 오기도 했다. 물이 차있는 걸 보지 못한 탓에 갑자기 차가 잠기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운전하는 나뿐만 아닌 부모님까지 놀래켰다. 아빠는 쌍라이트를 켜라고 호통쳤다.
상경 길엔 가방이 두둑하다. 장바구니엔 반찬이 가득하고. 청량리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러 가는 길은 약 5분 정도 걷는다. 짐이 많으면 그 길이 험난하다. 막차를 타고 올라가기에 걸음을 지체했다간 버스를 놓치기도 한다. 그렇기에 분주히 걸어야 한다. 평일이야 막차를 놓치진 않겠지만
유튜브 구독자는 480명이 됐다. 이번 달 안에 500명을 찍겠다는 목표에 희망고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남은 10여 일 동안 과연 20명의 구독자가 생길 것인가.
이번 추석엔 고향 친구들을 만났다. 1년 만인가. 신기했다. 하나는 간호사가 됐고 하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하나는 퇴사해서 취준 중이고. 나는 뭘 했을까. 각자의 근황 얘기 중 한 친구가 내게 물었다. 대학원 졸업 후 계획은 뭐냐고.
없다고 나는 답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뭐라도 있을 거 아니야?
나는 마땅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게. 난 왜 대학원을 가려고 했을까. 그냥 뜨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랬는데. 뭔가.. 나만 빼고 다들 계획이 있는 거 같았다. 어떻게 살아갈지 궁리하는 거 같았고. 살아갈 방법이 있는 거 같았다. 난 .. 없는데..
드라마 단역 건은 어제 연락 받았다. 잠이산에 올라가는 길에 캐디한테서 톡이 왔다. 작년 <스터디그룹>을 진행했던 캐디였기에 이름이 낯익었다. 페이는 20인데 지방 촬영 건이었다. 지방을 오가는데 20만원을 주면 남는 게 없는 슬픈 현실이지만
할 수밖에 없었고 일이 들어왔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도 5회차 다 나가면 100이네. 그중 60-70은 교통비, 숙비, 식비로 사라지겠지만. 일이 들어와서 내가 다행이라고 하자, 아빠는 내가 불쌍해 보였던 거 같다.
나도 내가 불쌍해서 할 말이 없었다.
내일은 스케치코미디 촬영을 간다. 어디 스케치코미디인진 나도 모른다. 안 알려줘서. 홍대에서 1-2시간의 짧은 촬영을 하는데 하는 이유는 하나다. 5만원을 주니까. 5만원이면 나쁘지 않지. 주말엔 인천을 간다. 인하대 학생들 단편영화 촬영인데 이건 무페이다. 하는 이유? 음..
이젠 사실 모르겠다. 옛날엔 포폴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현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감? 연습? 모르겠다. 그냥 다다익선이라 생각하고 한다. 영상은 많을수록 좋다. 더군다나 나는 장발에서 머리를 자른 상태이기에 예전 영상들을 쓰기가 어려웠다.
쓰다 보니까 많은 걸 쓴 거 같다. 열차 안에서 쓰는 일기가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