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보험금 청구 사건
2006년부터 변호사업무를 했으니 만으로는 18년이 넘었다. 여러가지 사건이 기억나지만 가끔씩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당시 소속 변호사로 어느 생명보험사를 대리하고 있어서 많은 보험 사건들을 했다.
보험금 청구 사건이었다.
보험상품은 상해보험 관련이었는데 초등학교를 들어가지 않은 여자 아이가 부엌에서 장난을 치다가 뜨거운 물이 쏟아져 아래배부터 하반신에 화상을 입고 보험사에 상해보험금을 청구한 사안이었다.
약관조항이 애매하여 보험사가 해당 화상이 보험금 지급청구에 해당되지 않는다(화상의 정도에 따라 보험금이 달리 책정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자
소송을 제기한 사안이었다.
소장 첨부 서증(당시는 전자소송 시행 전이라 상대방이 제출한 준비서면이 흑백으로 상대방에게 송달되어 사진이 잘 보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을 통해 딸아이의 화상 사진을 보았지만 보험사를 대리하고 있는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해당 화상의 정도가 약관 기준에 못미친다는 점을 주장하였고 아마도 대형병원에 사실조회도 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조회 전인지 후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재판부가 변론준비실에서 변론준비기일을 잡았는데
예기치 않게 원고측(아버지)이 어린 딸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서면상의 사진으로만 보다가 애기가 화상입은 것을 직접 보니 재판장과 상대방 변호사가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확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는게 아닌가..
꾸역꾸역 눈물을 참으며 내내 무표정하려고 애썼다.
오래된 기억이라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이후 사실조회가 원고에게 불리하게 회신(즉 화상 정도가 약관상의 기준에 다소 미치지 못한다는 취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 후 재판부에서는 청구한 보험금의 절반으로 화해권고를 하였고
상대방도, 우리 보험사도 이의하지 않아 사건이 종결되었다.
우리 측도 충분히 이의할 수 있고 판결로 가면 원고의 청구가 기각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이런 사건이야 말로 조정에 적합한 사건이었으리라).
주말에 둘째 아이가 어디서 놀라가 얼굴이 조금 쓸려 흉터 생기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는데
문득 위 사건 생각이 났다.
15년 이상이 더 지났으니 아마도 대학생도 더 되었을 것 같다. 그 꼬마였던 아이는 지금 잘 지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