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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제 May 28. 2023

[도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않은 이유.

[02] 나를 싫어하는 집단에서 깨달은 것들 ㅣ 이방인이 겪어야 했던 것

나는 그대로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당시 나의 상황에서는 그 학원을 계속 다니는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그 당시의 나에겐 그 학원을 다니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동선이나 시간적으로도요. 죽이되든 밥이되든 내가 지금 회사를 다니는 한 이 학원을 다니는것이, 뒤늦게 춤을 접하게된 나에게 가장 많이 춤을 접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만두고싶은 마음을 묵살해버렸습니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여기서 배워야한다는 결론이 나오자 내가 신경쓸 가짓수들이 훌쩍 줄어들었습니다. Y를 포함해 그곳을 꽉 잡고있는 고인물들이 나를 견제하든, 배척하든, 뒷담을 하든, 조롱을 하든 더이상 신경쓰이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나는 그들보다 못한 실력과 부족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왜 나를 견제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전보다 수업에 더 잘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취미반 수업을 듣는데도 몸의 움직임이 달라져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장의 순간들을 느끼는 빈도가 증가하니 그곳을 그만두기는 더욱 어려워져갔습니다. 


Y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변했습니다. Y가 나에게 모욕을 주고싶을 때 가장 자주 하던 말들이 있습니다. "착한 척 한다." , "가식적이다.", "가증스럽다." 등등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나의 장점들을 비난거리로 포장하고 있던 것 입니다. 나는 이 사실도 이 학원을 그만둘 때 쯤에야 깨달았습니다. Y가 나를 싫어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나에 대한 질투심과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란 것을요. 그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계속되는 괴롭힘에 나도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Y가 점점 선을 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친구들을 데려와 나를 둘러싸고 조롱했지만 내가 반응이 없자 점점 더 수위를 올린 것 입니다. 수업을 기다리던 빈 시간에서 이뤄지던 조롱이 점점 수업을 하는 중에도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안무를 알려주고 그것을 내가 따라하면 Y가 선생님보다 큰 목소리로 "으!" 비난의 의성어를 표출해댔습니다. 그녀와 친했던 전공생들은 그녀가 혐오의 의성어를 보이면 키득거리면서 비웃기 일쑤였습니다. 게중에는 그나마 인성이 있고 나의 시선에서 가장 춤을 잘 춘다고 생각했던 전공생 한명만이 Y에게 눈치를 주곤 했습니다. 수업을 듣는 인원이 많을 때면 3-4명씩 조를 짜준 다음, 오늘 배운 안무를 나눠서 시켜보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내가 포함된 조의 차례가 오면 제각기 흩어져있던 그들이 내 근처로 몰려들었습니다. 나의 춤을 면밀히 관찰한 후 조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그럴 때면 그들의 장난감이 된 기분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나의 몸짓을 우습게 따라하면서 내 귀에 비웃음이 들리도록 티를 냈습니다. 나는 그들을 춤 경력자이자 선생님으로써 존중했지만 그들은 나를 인간으로도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내가 그들보다 5-6살이 많다는 사실이 억울했습니다. 내가 그들과 또래였다면 나의 조롱이 이루어지는 그자리로 걸어가 싸울 수 있었을 것 같거든요. 그들보다 연장자인 나는 매순간 꾹 참고 모른 척 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내 안에 쌓이던 스트레스가 외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뒷통수에 원형탈모가 생겨버린 것 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의 주변사람들이 그 학원 주소를 대라며 나를 협박했습니다. 학원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나도 이렇게 계속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도 태도를 달리 했습니다. 그녀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는 것부터 그만뒀습니다. 우습게도 나의 달라진 태도를 느낀 Y가 그때부터 먼저 다가와 나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나는 인간이란 생물이 참 웃긴 존재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어느순간부터 학원에 있을 땐 바닥을 보면서 걸어다녔습니다. 전문반 사람들과 남자 원장님이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눈빛들을 차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앞 장에서 그들은 그런 내모습을 눈치를 본다며 조롱해댔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나는 바닥을 쳐다보며 걷는 것도 그만뒀습니다. 말 걸면 죽여버리겠단 눈빛으로 고개를 똑바로 들고 다녔습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다정함을 건네는 것을 그만뒀습니다. 그러자 웃기게도 매번 나의 인사를 코앞에서조차 못 들은척 무시하던 남자원장님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거나 말을 걸었습니다. "하제씨, 안녕하세요.", "밖에 덥죠?", "회사에서 바로 오시죠?". 나는 남자원장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나한테 말을 거는 줄 알았습니다. 그들의 달라진 태도가 우스우면서도..역겹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때부터 춤이란 분야에 몸 담아온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특히 입시반 고3부터 실용무용학과 재학중인 대학생 사람들에게요. 그들은 남을 조롱하는 것에 익숙하고 철저한 강약약강의 세계이며, 타겟을 지정하여 주눅든 모습으로 만들어놓고 즐기는 문화가 있다고요. 그 타겟들이 변경되는 과정을 두 눈으로 목격했고 내가 그 타겟으로 지정돼 보았기 때문에 이 문화를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화였습니다. 나는 그들과 섞이길 거부하기 시작했고, 그들과 일상대화나 스몰토크를 나누는 것 또한 최대한 거절했습니다. 내 생각을 그들에게 말해주는 것 또한요. 그들은 언제나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지만 그것이 나를 조롱하기 위해 정보를 캐내는 것임을 알아차린 후부터 나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내 생각을 듣고 나를 좋아하는 전문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나를 조롱하는 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한동안 Y패거리들은 달라진 내 태도에 당황한듯 보였습니다. 그들이 자주 조롱거리로 일삼았던 다정한 눈빛을 더이상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과 눈이 마주칠때면 웃어주는대신 무미건조하게 쳐다보았거든요. 나와 1대1로 마주할 때는 가면을 쓰고 친한 척을 했던 몇명은 놀라서 말을 더듬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목격하면서 나는 내가 그동안 인간의 본능에 대해 너무 순진한 시각으로 살았다는 것에 반성을 했습니다. 그들이 당황해하거나 말거나 나는 그들을 피하느라 듣지 않았던 수업들을 듣기 시작했고 최대한 집중했습니다. 남자원장님이 진행하는 수업을 듣게된 것 입니다. 나는 이 수업을 들으면서 이전 편에서 언급한 나의 '부재' 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 수업이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수업이란 걸 깨달았고 정말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러자 남자 원장님의 태도도 새롭게 변했습니다. 그가 더이상 나를 조롱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피드백을 주고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적극적으로 답해주었습니다. 때로는 이참에 댄서로 전향하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러자 잠잠했던 Y의 질투가 또 시동을 걸었습니다. 내가 눈을 뜨는 방식과 다정한 말투, 친절한 태도 등으로 조롱할 때 그녀의 의견에 동조해주는 전문반 사람들이 줄어든 상태였어요. 그녀가 조롱의 재료로 삼았던 태도들을 내가 그만뒀으니, 그녀는 이제 나의 춤에 대해 물고 늘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Y가 왜그렇게 나에게 집착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여전히 나는 그저 수업을 열심히 듣는 취미반일 뿐이었어요. 이때의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이 춤을 전문적으로 시작하고싶어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케이팝 위주의 수업을 들어왔던 나는 내가 이제 더이상 케이팝 춤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전에는 케이팝 안무를 따라하기도 바쁘고 정신이 없었습니다만, 다른 장르를 들여다 볼 여유가 생긴 것 입니다. 나는 케이팝 동작들에 재미를 못 느끼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전문반 사람들과 함께 들어야하는 수업들로 가득찬 일주일을 보내야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매우 기빨리는 일이었고, 인간의 본능에 대한 정보가 많은 상태였기에 생각만해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제 그 학원을 그만둘지말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표면적으로라도 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나의 '부재'를 채우는 것과 그들로 인해 발생하는 나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포함한 삶의 질에 대해 저울질 해봤을 때, 나는 나의 스트레스 관리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 학원을 다니는 동안 원형탈모가 7번 재발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학원을 그만둘 타이밍을 적극적으로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이직이 예정되어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때 춤을 잠시 내려놓기로 결정했습니다. 남들의 시선에선 성인취미반인 사람이 더이상 수업을 안듣는구나 했겠지만 나에게는 꽤 중대한 결정이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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