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남는' 것을 '뒤처짐'이라 부르는가

- 로컬에 남는다는 자부심에 대하여

by 토양지기 Soil Keeper

우리는 늘 새로워져야 한다는 말속에서 산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속도를 늦추면 고립될 것처럼 느껴진다.

로컬을 이야기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방소멸, 인구유출, 청년유입이라는 말이 문제의 전부인 것처럼 반복된다.

그래서 해법도 늘 비슷해진다.
더 잘 홍보하고, 더 세련되게 포장하고, 더 많은 사람을 불러오자는 이야기다.

그것도 안 되면 아예 지역을 묶어보자는 말이 나온다. 규모를 키우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고, 덩치를 키우면 문제가 덮일 것 같다는 기대다.

하지만 그렇게 커진 이름 안에서 사람들의 일상은 정말 조금이라도 나아졌는지,
나는 그 질문이 늘 빠져 있다고 느껴왔다.


마케팅은 사람을 움직이기 위한 기술이다. 관심을 끌고 선택을 유도하고 결정을 빠르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가 던지는 질문도 늘 같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오게 할까?"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으로 보일까?"

하지만 로컬은 사람을 불러오기 전에 이미 사람들이 살아온 자리다.

로컬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가 아니라, 이미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로컬의 질문은 "왜 안 오느냐"가 아니라, 왜 아직도 여기 있는가여야 한다.


로컬을 기술의 언어로만 바라보면 이 질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콘텐츠, 타깃, 전략 같은 말들이 쌓인다.

말은 점점 그럴듯해지지만, 정작 로컬에 사는 사람들의 말은 사라진다. 그 순간, 로컬은 사람의 삶이 아니라 설명해야 할 대상이 된다.

로컬은 원래 설명되지 않아도 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마다 여는 가게, 늘 같은 자리에 앉는 사람, 특별할 것 없는 하루.

우리는 집에서 나를 꾸미지 않는다. 정장을 갖춰 입지도, 잘 보이려 애쓰지도 않는다.

로컬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사는 터전이다.

하지만 그 삶이 쌓여 문화가 된다. 그래서 꾸미는 것은 문화가 아니다. 꾸미는 순간, 그곳은 관광지가 된다


그래서 나는 마케팅의 언어로 로컬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으로 보일까"가 아니라, "왜 여기 남아 있는가"를 묻고 싶었다.

방법이 아니라 언어로, 전략이 아니라 태도로 로컬을 바라보고 싶었다.

이 글에서 내가 보슬비라는 은유를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슬비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우산을 펼칠 만큼 강하지도 않다. 하지만 어느 순간, 땅은 분명히 달라져 있다.

보슬비는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는다. 다만, 버텨도 괜찮다는 신호를 남긴다.

보슬비는 작게 하는 선택이 아니라, 오래 남기 위해 속도를 선택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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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가 말하고 싶었던 보슬비 브랜딩이다.

"이렇게 하세요"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보면 어떨까요"를 제안한 것. 방법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관점을 나누는 것.

지난 글들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랬다.

40년 된 춘천 남성합창단의 목소리, 프랜차이즈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37년의 밀도, 자본이 밀어붙여도 떠나지 않은 시간, 조용히 도시를 바꾸는 고음악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나?, 성공해서 남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기 선택을 계속 의심하지 않고 같은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힘은 성과가 아니라 자기 확신이었다. 자기 확신이란 자만도, 고집도 아니다. 자기 삶을 매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다.

이 글들을 쓰며 내가 가장 많이 받은 반응은 "위로가 됐다"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해법을 원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지켜온 속도가 실패가 아니었다는 확인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나 역시 이 과정에서 위로를 받았다. 이 길이 뒤처진 선택이 아니라, 다른 속도의 선택일 수 있음을 타인의 공감 속에서 확인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로컬의 문제를 성과와 속도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오늘날의 로컬 문제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기서 살아도 괜찮다는 감각이 사회적으로 승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청년을 불러들이기 전에, 이미 남아 있는 삶부터 뒤처짐이 아니라고 말해줘야 한다.

이것이 내가 로컬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누군가를 불러오기 전에, 이미 살아온 삶이 부정되지 않도록 언어를 다시 세우는 일.

나는 그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무엇을 먼저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보슬비는 작게 하는 선택이 아니다. 오래 남기 위해 속도를 선택하는 태도다.

그리고 나는 이 태도가 로컬에서 살아가는 삶을 다시 하나의 선택지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믿는다.

로컬에 남는다는 것은 뒤처짐이 아니라, 자기 삶을 선택했다는 자부심이어야 한다.


[Director's Note|디렉터 노트]

이 글은 해답이 아니라 하나의 기준입니다.

시즌1은 보슬비라는 관점이 기술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 언어임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관점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 그 질문을 남깁니다.

다음 시즌에서는 축제로 들어가려 합니다. 축제는 로컬의 모든 것이 하루 안에 드러나는 현장입니다.

기후, 공동체, 음식, 전통, 정책의 결과가 한꺼번에 드러납니다.

축제를 보면 그 지역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렸는지,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오해했는지가 보입니다.

보슬비는 이제 관점에서 실천으로 옮겨갑니다.
하지만 그 실천은 여전히 방법이 아니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일 것입니다.

— 시즌1을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