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할 것인가, 살게 할 것인가

-로컬은 왜 언제나 숫자로 증명되려 하는가

by 토양지기 Soil Keeper

방문객 186만 명. 압도적이다.

접경지역 인구 2만 남짓한 도시에, 80배가 넘는 인파가 한 달 만에 다녀갔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

지역 사업의 성과를 논할 때, 숫자는 언제나 상석을 차지한다. 역대 최다 방문객 186만, 경제 효과 1천억 원. 홍보하기 좋고, 주민들 설득하기도 완벽하다. 숫자는 빠르고 명확하니까.

그런데 썰물처럼 인파가 빠져나간 뒤의 풍경은 낯설다. 그들이 떠난 자리. 정작 그곳에 남아 오늘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삶은 무엇이 달라졌는가에 대해서는 말이 적다.


유혹의 기술 vs 삶의 기술

축제와 이벤트, 대형 콘텐츠는 사람을 모으는 선수들이다. 짧은 시간, 강한 자극. 사진 찍고, 환호하고 떠난다. 우리는 이걸 '유혹'이라 부른다.

틀린 방식은 아니다. 다만 '머무름'까지는 책임지지 못할 뿐이다.

왔다 간 사람은 있어도, 다시 오는 사람은 드물다. 기억은 남겼을지 몰라도, 생활은 남기지 못했다.

로컬 기획의 대다수가 딱 여기서 멈춘다. 오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라고 하는 확신까지는 주지 못한다.


소나기와 보슬비

나는 종종 비를 생각한다.

소나기는 요란하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적신다. 보슬비는 다르다. 눈에 띄지도 않게 내려, 흙 깊은 곳의 물길을 바꿔놓는다.


지금 로컬은 소나기에 취해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급해서다.

하지만 삶은 소나기로 뿌리내리지 않는다.

사람은 감동해서 남는 게 아니다. 살 수 있겠다고 판단할 때 남는다.

편리함, 관계, 적당한 고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조건들. 이런 보슬비가 쌓여야 비로소 삶이 된다.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


문제는 이 '조건'이 숫자로는 설명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빨래 널 볕이 드는지, 편한 차림에 마음 터놓을 이웃이 있는지는 앞서 말한 186만 명이라는 숫자 앞에서 초라해 보인다.

그래서 늘 뒤로 밀린다. 설계되지 않고, 개인의 의지나 애정에 떠넘겨진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질문이 바뀐다.

"다들 어디로 갔지?". "왜 남지 않았을까."

조건은 만들지 않은 채, 떠나버린 사람들의 끈기를 탓한다. 순서가 틀렸다.


질문을 바꿔야 할 시간

유혹은 성과를 짓고, 조건은 삶을 짓는다. 둘은 닮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건축방식이다.

이제 스스로 물어야 한다.

잠시 오게 할 텐가. 아니면 살아도 괜찮다고 느끼게 할 텐가.

성과를 설명할 것인지, 삶을 감당할 준비를 할 것인지.

로컬의 문제는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설계하고 있는지가 다를 뿐이다.

유혹을 더 쌓을 것인가. 삶을 지을 것인가. 이 선택이 로컬의 내일을 가른다.


[Director's Note|디렉터 노트]

숫자는 빠르게 증명됩니다. 그러나 조건은 그만큼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이 기준을 들고 현실로 들어갑니다. 다음 글 <춘천, 고음악도시는 왜 슬로건으로 멈추는가>에서는, 내가 함께 했던 축제를 돌아봅니다.

축제의 에너지가 왜 일상이 되지 못했는지, 그 구조적 원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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