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소라게 Oct 30. 2021

치위생사 할머니

노인일자리 딜레마

저는 대학병원에서 일을 안 하는 날에는 로컬 치과 클리닉에서 일을 합니다. 클리닉이 금융지구에 있어서 보통 바쁘고 젊은 환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최신 트렌드에 맞춰서 환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병원 인테리어도 화려하고 스태프들도 젊고 활기찬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치위생사들 중에 나이가 아주 많으신 할머니 한분이 계십니다. 실례가 될까 봐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듣는 얘기로는 올해 68 세 라고 했습니다. 이 분께서는 디즈니 만화에나 나올법한 마녀 같은 얼굴에 깊은 주름이 가득하시고, 허리가 구부러지셔서, 행동 하나하나가 굼뜨셨습니다. 그 연세에 치위생사로 일을 하시는 게 대단하시지만 세월의 무게는 젊은 사람들의 수요를 따라가시기에는 너무 벅차 보이십니다.


할머니 치위생사분은 환자들과 동료 스태프로부터 많은 환영을 받지 못하십니다. 연세가 있으셔서 평소에 답답할 정도로 느리시고, 컴퓨터를 잘 사용하지 못하셔서 아주 간단한 컴퓨터 작업도 반복해서 주위에 물어보시는데 자기 일이 너무 바쁜 모두가 도와드리길 귀찮아합니다. 일을 하실 때도 최신형 기계식 스케일러 (Cavitron)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시고 40년 전의 방법으로 손으로 직접 한 땀 한 땀 스케일링을 하는 것을 선호하십니다. 그래서 이분의 스케줄은 다른 치위생사들과 다르게 늘 비어있습니다. 심한 날에는 하루 종일 환자가 한 명만 예약되어 있을 때도 있는데 그것마저 마지막에 예약 취소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이쯤 되면 그냥 은퇴하시고 쉬셔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금전적인 독립을 위해서 계속해서 일을 하시려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는 할머니와 스케일링을 마친 환자분의 치아를 검진하려고 방에 들어왔습니다. 환자는 무언가 불편한 눈치로 저에게 개인적으로 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왠지 환자가 할머니 앞에서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고, 저는 할머니께 제 오피스에 가서 어떤 샘플을 가져다 달라고 둘러대면서 할머니를 방에서 나가시도록 부탁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 방을 나가시자, 환자는 이 할머니가 스케일링을 할 때 손을 떨어서 불안하고 일을 너무 못하셔서 앞으로 이 할머니를 보기 싫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환자의 요청대로 다른 치위생사랑 예약을 해드리고 그날 스케일링 비용은 받지 않았습니다. 치위생사 할머니는 문 밖에서 환자의 대화 내용을 다 들으셨는지 그때부터 어깨가 축 처지셨습니다. 그러고는 저한테 조용히 오셔서 병원 매니저한테 환자가 자신에 대해서 불평한 걸 말할 거냐고 굴욕에 차신 목소리로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아무한테도 말씀 안 드릴 테니 개의치 마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고맙다고 말씀하면서도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할머니 치위생사와 예약을 하지 말아 달라는 메모가 달린 차트가 한 개 더 늘어났습니다. 환자들의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저도 빠릿빠릿하고 젊고 에너지 넘치는 치위생사한테 스케일링을 받고 싶습니다. 특히 정교한 일을 요구하는 치과에서는 노인들이 설 자리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원장님과 매니저를 존경합니다. 요즘같 온라인 리뷰처럼 환자들의 평에 민감한 시대에, 환자들의 불평을 감수하시면서도 이 할머니가 계속해서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기회를 주십니다. 나이가 많다고 먼저 선입견을 가지는 것보다는 노인분들께서도 계속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스럽고 배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을 하셨을 텐데 나이가 많다고 환자들로부터 불평과 거절을 당하실 때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분께서도 40년 전에는 누구든지 원하고 좋아하는 멋진 치위생사이셨을 테니까요.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시장에서 뒤처지는 아픈 경험을 날마다 직면하시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시는 모습을 응원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나이가 들어서 몸이 쇠퇴하고 손자 손녀뻘 되는 환자들이 저를 꺼리는 날이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충실히 살려고 합니다.


[사진출처: https://wsimag.com/science-and-technology/59683-can-aging-be-reversed]

작가의 이전글 암 환자가 치과에 가야하는 이유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