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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say2

별똥별이 떨어지던 밤

by lee nam

어릴 적 우리 마을의 밤은 아주 깜깜했다.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둠이 온 세상을 삼키고 나면, 집집마다 새어 나오는 희미한 등불만이 길을 비춰줄 뿐이었다. 그런 밤이면 친구들과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도,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불현듯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날도 나는 친구들과 늦게까지 마당에서 놀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나섰다. 논밭을 지나 좁은 흙길을 따라가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별똥별 하나가 길게 떨어졌다. ‘사람이 죽으면 불이 나간다’ 던 어른들의 말이 떠올랐다. 별똥별은 금방 사라졌지만, 내 가슴은 쿵쾅거렸다. 혹시 마을에서 누군가 세상을 떠난 걸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 저승 문이 열린 걸까?


그때였다. 길가 풀숲에서 희미한 야광이 어른거렸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반딧불이겠지, 생각하려 했지만, 머릿속에선 어른들이 해주던 귀신 이야기들이 떠다녔다. “혼불은 망자의 영혼이 떠도는 거란다.” 낮에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았지만, 깜깜한 밤길에선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땅을 세게 구르며 일부러 소리를 냈다. 귀신은 소리에 놀라 달아난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 야광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달리기 시작했다. 어둠이 앞을 가려도 상관없었다. 저 멀리 집 앞에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불빛만 보고 내달렸다.


문을 박차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숨을 헐떡였다. 어른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왜 그러느냐”라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여 내가 본 것이 진짜 혼불이었다면,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다시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나는 그때의 어둠이 더 이상 무섭지 않다. 별똥별은 누군가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의 자연현상일 뿐이고, 그때 보았던 야광은 그저 반딧불이나 빛 반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밤, 깜깜한 길을 가슴 조이며 뛰어가던 순간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린 나에게 그 밤은 단순한 밤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과 용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나의 모험이었고, 나는 그 길을 걸으며 나와의 싸움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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