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삶은 늘 바빴다. 여름날의 폭풍처럼 거세고, 몰아치는 한파처럼 시리고 아팠던 순간들도 많았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마치 거대한 바람과 싸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알지 못했다. 그 폭풍이 얼마나 값진 시간이었는지, 한파가 얼마나 단단한 나를 만들어 주었는지를.
이제, 긴 여정을 지나 나는 황혼 역에 고요히 서 있다. 이 역은 목적지가 아니라 쉼표 같은 곳이다. 폭풍우에 젖고 한파에 얼었던 날들 뒤에 찾아온 고요함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무들이 노랗고 붉게 물들어 있다. 햇살은 부드럽고 따스하다. 바람은 더 이상 싸움을 걸지 않고, 마치 내 안의 긴장감마저 풀어주려는 듯 살짝 어깨를 스치며 지나간다. 이곳에서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편히 누리고 있다.
지금의 나는 마치 황금 비단으로 몸을 휘감은 듯한 기분이다. 그 비단은 내가 지나온 날들의 흔적이다. 젊은 날 겪은 폭풍과 한파, 기쁨과 슬픔이 한 올 한 올 엮여 만든 인생의 직물이다. 비단의 광택은 때로 옛날의 기억을 반사한다. 아이들이 태어나 웃음 짓던 순간, 직장에서 밤낮으로 달리며 이루었던 성취들, 때로는 실패에 고개를 떨구었던 일들까지. 그 모든 것이 쌓이고 엮여 지금의 나를 감싸는 따뜻한 황금빛이 되었다.
황혼 역에서의 시간은 느리다. 더 이상 어딘가로 달려갈 필요가 없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까지는 그저 앉아 나를 감싸는 이 고요함을 음미할 수 있다. 젊은 날에는 바람이 몰아치면 단단히 버티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지금은 바람이 불어도 그저 느낀다. 바람도, 햇살도, 흔들리는 낙엽도 다 같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이제는 인생의 계절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게 황혼 역은 끝이 아니다. 이것은 다음 계절로 이어지기 전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지나온 삶을 품고, 아직 남아 있는 길을 준비한다. 비단으로 감싸인 몸은 편안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열린 채로 나를 기다리는 다음 풍경을 상상한다. 폭풍 속에서도, 한파 속에서도 내가 견뎌냈듯 앞으로의 날들도 고요히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황혼 역에 서 있는 지금, 나는 비로소 내가 지나온 모든 날들에 감사한다. 그리고 이 역을 지나 다시 어디론가 나아갈 나 자신을 조용히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