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2학기, 국어 시간에 우리는 <개미와 비둘기>라는 동화를 배우고 있었다. 교과서에는 큰 글자와 그림이 실려 있었고, 선생님은 우리에게 글자와 음을 익히게 하기 위해 범독을 하셨다. “개미가 물속에 풍덩 빠졌습니다. “라는 문장을 “ 개미가 물속에 풍덩 빠져씀니다.”라고 반복하며 따라 읽었다. 그때 개미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그 문장은 쉽게 외워졌다. 그때는 글자와 소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배우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었다.
선생님께서 “개미가 물속에 풍덩 빠져씀니다. “라고소리 내셨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몹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왜 ‘빠졌습니다’가 아니라 ‘빠져씀니다’로 읽는 걸까? 그 차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실 그때의 혼란은 지금도 내 기억에 남는다. 한 문장에서 글자가 다른 방식으로 읽히는 것이 어리둥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 시간이 되자 또 다른 혼란스러운 순간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읍 사무소’라는 단원이었고, 선생님은 교과서를 펴시고 손을 들어 누가 읽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자신 있게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은 “박남, 일어나서 읽어봐. “라고 하셨다. 나는 큰 목소리로 “씀 사무소”라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읽었다.
그 순간 선생님은 “박남, 앉아 있어 봐, 너희들 나를 따라 큰 소리로 읽어. “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 읍사무소‘라고 읽으셨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선생님을 따라 ’ 읍 사무소’라고 읽었다. 나는 왜 같은 글자 ’ 읍을 사회 시간에는 ‘읍‘ 국어 시간에는 ’ 씀’으로 읽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이처럼 국어와 사회 시간이 같은 글자와 문장을 다르게 읽는 상황을 겪으면서, 한국어는 자음과 모음이 결합되어 단어를 이루고, 그 단어들이 문장을 이루기까지 여러 규칙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어른이 되어서야 그때의 혼란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글자와 발음의 규칙을 배우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