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응축과 포착

오지영 《내 마음은 바다에 있어》를 읽다가

by 고시린

아침에 일어나 KBS 1FM을 들으며 퇴적과 습곡으로 만들어지는 지층을 떠올렸다. 시간을 타고 밋밋하게 흐르던 소리들이 누군가에 의해 압축되고 매만져지면서 음악이 된다. 협화도, 불협화도 그렇게 출현한다.


예술은 응축일까, 포착일까.


요즘 그런 생각을 했다. 응축일 거라 생각했다. 음악뿐 아니라, 회화도 또 서사도 시간과 함께 무의미하게 흐르던 감정과 사연을 잡아채고 압축하고 비틀어야 나오니까.


테이블에 뒀던 오지영의 《내 마음은 바다에 있어》(북노마드)를 며칠 만에 펼쳤다가 황급히 생각을 바꿨다. 사람의 일에, 사랑과 이별의 일에 예민한 이 작가는 연인의 순간을 포착했고, 포착만으로 그 순간은 빛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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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던 오피스텔 앞에는 주인이 혼자 운영하는 작은 선술집이 있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자주 인생을 논하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언쟁으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늘 손을 잡았다. 잔뜩 마신 알코올을 핑계 삼아 사랑을 속삭였고, 취기를 이유 삼아 서로를 안았다.

_오지영, 내 마음은 바다에 있어,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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