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시간 속에서 [디카시052]
나는 아직
세상을 모릅니다.
그래서
엄마의 얼굴이
세상의 첫 번째 모양입니다.
아빠의 웃음이
세상의 첫 번째 소리입니다.
거실은 넓은 바다입니다
나는 누워서
천천히 몸을 돌리며
물결처럼 흔들립니다.
고개를 들면
세상이 조금 더 열리고
빛이 나를 향해 내려옵니다 .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말 듯
모든 것이 멀고도 가깝습니다.
식탁은
여전히 높은 산이지만
숟가락 하나가
내 입으로 길을 찾아옵니다.
작은 입 안으로
따뜻한 세상이 들어옵니다.
방은
포근한 동굴입니다.
불이 꺼지면
엄마의 목소리가
별처럼 나를 감쌉니다.
나는 아직
이름보다 느낌이 먼저입니다.
엄마는 따뜻하고
아빠는 단단하고
집은 나를 품고 있다는 것
그것만은 압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누운 자리에서
두 눈을 크게 뜨고
천천히
세상의 처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김병종 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단아(旦兒)’라는 호는
'이른 아침에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뜻이라 합니다.
그 맑고 처음 같은 시선으로 평생 그림을 그리겠다는 마음,
그 말이 유난히 깊이 와닿았습니다.
작가님의 그림을 마주하며
문득 제 손자의 눈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비칠까 궁금해졌습니다.
그 마음을 따라
저도 조용히 그림을 따라 그려보았습니다.
자연을 닮은 나무와 풀, 그리고 새,
동백꽃잎을 떠올리게 하는 문양 속에
하나의 눈을 그려 넣었습니다.
마치 세상을 처음 만나는 아이의 시선처럼
순하고 낯설고 따뜻한 느낌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이제,
태어난 지 갓 6개월이 지난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 한 편을 적어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