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아래, 어머니를 부르다

장모님을 추모하며 [디카시 053]

by 올제

(1절)

해마다 사월이 오면

꽃잎은 다시 피어나고

바람에 흩날리는 길 위에

우리는 또 모여 앉습니다

따뜻한 봄빛 사이로

어머니 웃음이 번지고

말없이 바라보는 하늘엔

그리움이 내려앉습니다


(후렴 전)

손을 잡고 걷던 그 길

아직도 여기 있는데

부르면 대답할 것만 같아

조용히 이름을 불러봅니다


(합창)

벚꽃은 팝콘처럼 터지고

우리의 웃음은 번져가고

그 사이 어머니는

별빛 되어 함께 걷습니다

사월의 이 햇살 아래

사랑은 더 깊어지고

우리는 여전히

어머니 품 안에 있습니다


(2절)

여수의 바다 바람 속에

꽃잎은 더 곱게 날리고

가족의 작은 이야기들이

파도처럼 이어집니다


당신이 남긴 온기로

우리는 서로를 안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 사랑을 나눕니다


(후렴 전)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인

따뜻한 그 이름 하나

가슴 깊이 불러보면

눈물이 꽃이 됩니다


(합창)

벚꽃은 팝콘처럼 터지고

우리의 웃음은 번져가고

그 사이 어머니는

별빛 되어 함께 걷습니다


사월의 이 햇살 아래

사랑은 더 깊어지고

우리는 여전히

어머니 품 안에 있습니다


(브리지)

보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늘 곁에 계신 걸 아니까

우리의 웃음 사이마다

당신이 숨 쉬고 있으니까


(마지막 후렴)

벚꽃이 다시 피어나는 날

우리는 또 모일 테지요

그 자리 어머니는

늘 같은 미소로 계십니다


사월은 끝내 지나가도

사랑은 남아 흐르고

우리는 영원히

어머니의 봄으로 살아갑니다


남쪽지방에는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4월 초 벚꽃을 보면

가슴이 설레기도 하지만

돌아가신 장모님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장모님 기일을 맞이하여

장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은 노래를

하나 만들어 아내와 함께 벚꽃길 구경하면서 감상하였습니다.

< 벚꽃 아래, 어머니를 부르다. made with suno music >

쌍계사 벚꽃길 조성 공적비에 보면, 1928년 화개면 초대 김진호(金鎭灝) 면장이 취임하면서 2년 넘게 산을 자르고 골을 메워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도로를 개설했다고 적혀있다.


또 화개교를 개통해 그 기념으로 군내 유지들의 성금을 모아 홍도화 200여 그루와 벚나무 1200그루를 심었다고 기록돼 있다.


오늘날 하동을 대표하는 관광 자원이 된 이 길의 시작이 한 공직자의 열정과 주민들의 협력에서 비롯되었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이정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