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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의 집 May 01. 2022

한국인의 문제적 언어 패턴 - 감정 덮어 씌우기

한국인의 문제적 언어 패턴#4 - 감정을 덮어 씌우는 어머니





<상황 4>


어머니(가명 이현숙, 약 76세)와 딸(가명 김희진, 약 38세)이 안과에 왔다.


희진은 진료를 하러 왔고 딸은 번호표를 뽑은 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 내부에는 환자가 많이 있었고 희진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시간이 흐른 후)


간호사 : 김희진 님 시력 검사실로 들어오세요


희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사실로 향한다.


그러자 갑자기 어머니, 현숙은 딸에게 카드를 내밀며 큰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이현숙 : 야, 카드 갖고 가!(다급한 명령조)


(현숙의 목소리가 은근히 컸기 때문에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과 모든 간호사들의 시선이 희진과 현숙에 쏠렸다. 딸이 커다란 잘 못을 한 것처럼 어머니가 말을 해서 사람들이 조금 놀랐으나 별 일이 아니었으므로 몇몇은 다시 시선을 거두었고 몇몇은 계속 딸과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


희진 : 정신없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 어머니가 내밀고 있는 카드를 갖고 간호사 쪽으로 갔다.


간호사 : 아, 손님 카드는 필요 없으세요.


희진 : 다시 급하게 어머니에게 카드를 건넨다. 시력 검사실로 향한다.



희진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심한 욕을 한 것도 아니고 크게 꾸짖은 것도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살짝 나빠지고 경미한 수준의 수치심이 들었다.




<상황 분석>


이 경우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자신의 타인에게 덮어 씌우는 언어 패턴으로, 주로 신경증을 앓고 있는 부모가 자신의 자식에게 많이 구사한다.


이러한 언어 패턴은 일상생활에서, 집 안이든 밖이든 불시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며 상대방의 기분을 은연중에 나쁘게 만들거나 상대방을 잠시 동안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 있다.


이 언어 패턴은 자신의 감정을 자신이 온전히 소화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타인에게 전가하는, 덮어 씌워버리는 양상을 띤다.


우선 타인에게 감정을 전가하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에 책임지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타인이 나와 동등한 상대이거나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전가시켜도 괜찮지만, 자신이 보호해야 할 자식에게 전가를 시키는 것은 어른으로서 취해야 할 적절한 스탠스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강자 거나 대등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보이지 않고 오직 자신보다 약한 대상, 자신의 아들이나 딸에게만 표현한다는 점에서 다소 문제가 있고 상대방은 미묘하게 억울한 감정이 들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방과 원활한 소통을 만들어갈 수 없는 언어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계속 자신의 감정을 덮어 씌우는 언어패턴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어렸을 때 원가족으로부터 자신의 감정을 수용받지 못한 상처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위의 상황을 자세히 복기해보자.


우선 어머니는 시력 검사실로 가는 아무 잘못도 없는 딸에게 "야, 카드 갖고 가!"라고 다급하게 말하면서

[너, 지금 카드를 놓치고 가는 잘못을 했다]는 상황 맥락을 형성하였다.


딸의 차례가 되어 간호사가 안내를 했을 뿐인데, 어머니는 "자기의 딸이 어떠한 결례를 저지를까"에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어머니 스스로가 "사회적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라는 상황 맥락 속에 있었다는 것이며 사실 일상 생활 속에서는 이러한 맥락에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자신의 원가족으로부터 사회적 처벌을 많이 받으며 자라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실수와 결례를 지적당하는 상황이 자신에게 매우 큰 고통이므로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까지  "자기의 딸이 어떠한 결례를 저지를까"를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사회적 처벌을 안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상 맥락의 목표가 된다.

왜냐하면 사회적 처벌을 받는 것이 개인의 무의식에 큰 타격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어머니는 자신의 딸에게도 자기가 생각하는 "가장 나쁜 것(사회적 처벌)"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딸에게도 항상 "사회적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라는 감정의 맥락 속에서 소통을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깜빡해서 카드를 안 갖고 가는 작은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일뿐더러 결국 카드는 들고 갈 필요가 없었으므로 딸이 큰 잘 못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머니가 형성한 [너, 지금 카드를 놓치고 가는 잘못을 했다]는 맥락은 그저 어머니 자신이 갖고 있는 수치심과 불안한 감정(기의)의 기표화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는 평소에 사회 공포와 경미한 정도의 범불안이 있어서 항상 "사회적 규칙"에 무의식적으로 신경이 쏠려 있는 사람이라,

아무도 카드가 필요하다 하지 않았는데 카드를 갖고 가야 한다는 규칙과 너는 규칙을 어겼다는 사회적 판단('사회적 규칙을 지키지 못했다')을 대뜸 딸에게 강요한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형성한 맥락 속에서 딸은 <창피한 잘 못을 한 수치스러운 사람>이 일시적으로 되어버렸다.


물론, 아주 일시적인 상황이었지만, 딸은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이 '수치스러운 잘못을 했다는 누명'을 덮어씌워야했다.

그래서 허겁지겁 다시 어머니가 들고 있는 카드를 가지러 간 것이고, 불안할 필요가 없음에도 마음에서 불안감이 생겼기에 덩달아서 다급하게 행동한 것이다.  


어머니가 형성한 대화 맥락에는 수치심과 불안감이 담겨 있어 딸을 <창피한 행동을 한 사람>이라는 대상으로 설정되기 때문에 딸은 졸지에 아무런 잘못을 안 했는데도 어머니의 수치심과 불안감의 원인 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언어 패턴을 자주 구사하는 어머니를 두게 되면 자식은 의기소침하고 자신감 없는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위와 같은 상황이 아주 가끔만 발생한다면 모르겠지만, 한 사람의 언어 패턴은 개인의 일상 속에서 수시로 반복되기 때문에 이러한 언어 패턴으로 형성된 맥락에서 딸은 항상 "잘못을 한 사람"의 역할을 떠맡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딸은 "잘못을 한 사람"의 역할을 떠맡음으로써만 어머니의 불안감을 달래줄 수 있다.

그것이 어머니 자신만의 '감정 해소법'이자, 딸에게는 어머니가 원하는 딸로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은 어머니가 자신을 "잘못을 한 사람"으로 몰아 자신의 감정을 덮어 씌울 때마다 이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자기 스스로 어머니의 감정 전이의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이렇게 딸과 어머니 사이에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불공정한 교환'은 평생 동안 누적이 되어 심한 경우 딸의 마음속에 '표현할 수 없는(기표화될 수 없는) 한(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딸은 가끔 어머니에게 화를 내기도 하는데,

(자신의 기표화되지 못한 기의를 기표화시키기 위해서. 기의는 기표화되지 못한 상태로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자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딸의 분노에 언제나 깊은 공감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언어 패턴을 기반한 소통 양식은 어머니로부터 딸에게 전승되고 또 딸이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어 자식에게 전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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